델프트 풍경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 그림의 세부를, 아무도 정확히 어디인지 짚지 못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 그림의 ‘노란 벽 한 조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했고, 소설 속 작가 베르고트는 그것을 보다가 쓰러져 죽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지금도 그 노란 부분이 화면의 어디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벽이 아니라 햇빛 받은 지붕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 제작 연도: 약 1660~1661년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96.5 × 115.7 cm
- 미술 사조: 네덜란드 황금시대
- 소장처: 마우리츠하위스, 헤이그 (1822년 입수, 소장번호 92)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특정한 한순간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화면 안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스히담 문 위에 아주 작은 시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늘은 일곱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을 가리킵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하니 늦봄이나 여름이고, 햇빛이 동쪽에서 들어오므로 아침입니다. 배들은 모두 정박해 있고 돛은 내려져 있으며, 수면은 거의 흔들리지 않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조건들을 종합해 1661년 6월의 어느 아침 일곱 시 반 무렵으로 좁힙니다.
결정적인 것은 구름입니다. 도시의 대부분이 구름 그늘에 잠겨 있는데, 딱 한 곳만 햇빛을 받습니다. 신교회의 종탑입니다. 잠시 뒤면 구름이 흘러가 이 배치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페르메이르가 붙잡은 것은 몇 분짜리 상태입니다.
그 신교회에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창건자 빌럼 판 오라녀의 묘가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어둠에 잠긴 아침, 유일하게 빛나는 곳이 국부의 무덤입니다. 이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역사적 배경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가 미술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델프트는 도자기 ‘델프트 블루’의 산지이자 무역 도시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강 건너에서 도시를 조망하는 형식의 그림이 유행했는데, 이런 그림은 도시의 번영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장르였습니다.
델프트에는 1654년 10월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화약 창고가 폭발해 도시 북동부가 파괴되었습니다. 이 폭발로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델프트 최고의 화가였던 카럴 파브리티위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그해에 그린 『황금방울새』는 지금 이 그림과 같은 미술관, 몇 개의 방 건너에 걸려 있습니다.
다만 이 그림에서 폭발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시점이 남동쪽이고 피해 지역은 반대편이기 때문입니다. 폭발이 남긴 것은 화면이 아니라 상황이었습니다. 1650년 무렵 델프트에는 피터르 더 호흐, 파울뤼스 포터, 얀 스테인 같은 화가들이 잠시 모여들어 ‘델프트 화파’라 불릴 만한 흐름이 있었는데, 폭발 이후 화가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그 공동체는 줄어들었습니다. 페르메이르는 남았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 네 개의 띠. 화면은 네 개의 수평 층으로 나뉩니다. 부두, 물, 도시, 하늘입니다. 하늘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 빛과 그늘. 앞쪽 부두와 도시 대부분은 그늘, 신교회 종탑과 성문 주변은 햇빛. 이 대비가 공간의 깊이를 만듭니다.
- 수면. 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건물과 하늘을 그대로 되비칩니다. 곳곳에 미세한 바람의 결이 있습니다.
- 사람들. 앞쪽에 두 무리가 서서 이야기하고, 성문 앞 부두에 몇 사람이 보일락 말락 걸어갑니다. 인물은 조연입니다.
- 작은 점들. 배의 선체와 성벽을 가까이서 보면 볼록하게 얹힌 작은 흰 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푸앵티예라고 부릅니다. 초기 렌즈가 만들어내는 착란원과 닮아,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문서상 증거는 없지만 그림 표면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사실이 아닌 부분. 페르메이르는 실제 지형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건물의 위치를 조금씩 옮기고, 지붕선을 정리하고, 신교회를 실제보다 두드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화면의 고요함은 관찰이자 편집입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대하여
페르메이르(1632~1675)는 델프트에서 태어나 평생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긴 작품은 서른대여섯 점 정도이며, 대부분 실내 장면입니다. 이 작품과 『작은 거리』만이 야외를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도시 전체를 조망한 것은 이 한 점뿐입니다.
그는 생전에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마흔셋에 세상을 떠났고 많은 빚을 남겼습니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델프트의 후원자 피터르 판 라위번 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고, 이 작품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빛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평범한 실내와 평범한 아침이 그의 화면에서는 정지된 상태가 됩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과 이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부엌 창가와 도시 전체가 같은 논리로 그려졌다는 것이 보입니다. 하나의 광원, 정지한 시간, 그리고 지나치게 조용한 공기입니다.
유산과 영향
이 그림의 이후 역사는 그 자체로 이야기입니다.
1696년 암스테르담 경매에서 판 라위번 유산에 있던 페르메이르 스물한 점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이 작품이 그중 가장 비쌌는데, 낙찰가는 200길더였습니다. 당시 좋은 말 한 마리 값입니다. 이후 백여 년 동안 그림은 개인 소장을 전전했고,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은 잊혔습니다.
1822년, 새로 설립된 마우리츠하위스가 이 그림을 2,900길더에 사들입니다. 국왕 빌럼 1세의 뜻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프랑스 비평가 테오필 토레뷔르거가 마우리츠하위스에서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이 무명 화가의 작품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작업이 페르메이르를 미술사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페르메이르를 아는 것은 이 한 점 때문입니다.
프루스트는 이 그림을 두 번 보았습니다. 1902년 10월 마우리츠하위스에서 한 번, 1921년 5월 파리 죄드폼에서 열린 네덜란드 회화전에서 또 한 번입니다. 두 번째 관람에서 그는 심하게 어지러워했고, 그 경험이 소설 속 베르고트의 죽음 장면이 되었습니다. 프루스트 자신은 그로부터 열여덟 달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에 있습니다. 17세기 저택을 개조한 크지 않은 미술관이며, 그만큼 밀도가 높습니다.
- 주소: Plein 29, 2511 CS Den Haag
- 개관: 월요일 13:00~18:00, 화~일 10:00~18:00 (변동 가능하므로 공식 홈페이지 확인 권장)
- 교통: 헤이그 중앙역에서 도보 약 10분
- 함께 볼 작품: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리고 파브리티위스의 『황금방울새』. 세 점을 한 건물에서 볼 수 있습니다.
- 팁: 주말은 매우 혼잡합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과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합니다.
이 미술관은 2022년에 이 그림 한 점만 놓고 관람객이 홀로 마주하게 하는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적입니다. 배는 묶여 있고, 사람들은 멀리 있고, 바람은 거의 없고, 구름 하나가 도시를 덮고 있습니다. 몇 분 뒤면 사라졌을 상태를 페르메이르는 삼백육십 년 동안 붙들어 두었습니다.
이미지: View of Delft – Johannes Vermeer, 약 1660~61년, 마우리츠하위스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