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a by Édouard Manet, 1863

올랭피아

이 그림에는 두 여성이 있고, 둘 다 이름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운 쪽은 빅토린 뫼랑, 훗날 살롱에 자기 작품을 출품한 화가입니다. 오른쪽에서 꽃다발을 들고 선 쪽은 로르입니다. 마네는 수첩에 그녀의 이름과 파리 뱅티미유 거리의 주소를 적어 두었고, 따로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그런데 백 년 넘게 미술사는 앞의 여성만 이름으로 불렀고, 뒤의 여성은 ‘흑인 하녀’였습니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1865년 살롱에서 이 그림 앞에 벌어진 일은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소동이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우산과 지팡이로 캔버스를 찌르려 했고, 주최 측은 경비를 배치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결국 그림을 출입문 위쪽 높은 자리로 옮겨 손이 닿지 않게 했습니다. 안토냉 프루스트는 훗날, 이 그림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오직 당국이 취한 조치 덕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마네 본인은 이 반응에 충격을 받고 스페인으로 떠났습니다.

문제는 나체가 아니었습니다. 그해 살롱에도 누드는 많았습니다. 다만 그 여자들은 비너스이거나 님프였고, 눈을 내리깔거나 옆을 보고 있었습니다. 관람객은 안전하게, 들키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올랭피아는 봅니다. 부끄러워하지도 유혹하지도 않고, 계산하는 눈으로 화면 밖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화면 곳곳의 세부가 그녀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목의 검은 리본, 벗겨지려는 슬리퍼 한 짝, 머리의 난초, 그리고 손님이 보낸 꽃다발. 오르세 미술관의 설명은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비너스가 창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이 화가 난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이 그림은 관람객에게 익명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꽃다발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화면은 말하지 않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관람객입니다.

역사적 배경

흔히 이 작품을 1863년 낙선전과 묶어 설명하는 글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그림입니다. 낙선전에 걸린 것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였고, 그 전시는 낙선한 화가들이 스스로 연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 3세가 허가한 것입니다. 『올랭피아』는 1863년에 그려졌지만 1865년 공식 살롱에 정식으로 입선해 걸렸습니다.

마네는 이 그림에서 전통을 등지지 않았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이 꼽는 참조 대상은 셋입니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고야의 『나체의 마하』, 그리고 앵그르 등이 다룬 ‘하녀를 거느린 오달리스크’라는 주제입니다. 구도도 자세도 모두 미술관에 걸린 명작에서 왔습니다. 다만 신화라는 명분만 제거했습니다.

제목도 마네가 붙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살롱 도록에 이 작품과 함께 실린 시를 쓴 친구 자샤리 아스트뤼크가 지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1860년대 파리에서 ‘올랭피아’는 고급 창부들이 쓰던 이름이었습니다. 당대 관람객에게 이 제목은 곧 직업의 표시였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빛. 마네는 부드러운 명암 단계를 걷어내고 정면에서 강한 빛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몸은 둥글게 부풀지 않고 평평하게 오려낸 것처럼 보입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것을 무능으로 읽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회화가 입체를 흉내 내기를 그만두기 시작한 지점으로 읽힙니다.

왼손. 그녀의 왼손은 몸 위에 단단히 놓여 있습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에서 같은 자리의 손은 부드럽게 늘어져 있어 수줍음으로 읽혔지만, 여기서는 뚜렷한 차단으로 읽힙니다.

고양이. 침대 발치에 등을 세운 검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같은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잠든 강아지, 곧 정절의 상징이었습니다. 마네는 그것을 깨어 있는 검은 고양이로 바꿨습니다. 당시 프랑스어에서 고양이를 가리키는 단어가 지녔던 속된 함의까지 감안하면, 이 교체는 노골적인 신호였습니다.

꽃다발. 종이에 싸인 화려한 꽃다발은 방금 도착한 선물입니다. 로르가 그것을 들고 서서 올랭피아를 봅니다. 올랭피아는 꽃을 보지 않습니다.

로르. 이 그림의 오른쪽 절반은 오랫동안 배경 취급을 받았습니다. 2010년대 이후 연구는 그녀를 화면의 두 번째 인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마네가 그녀를 위해 따로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고, 그 그림에서 그녀는 하녀가 아니라 모델입니다. 이 그림을 볼 때 두 여성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은 화면 밖을, 한 사람은 화면 안을 봅니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하여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파리의 부유한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나,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정통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배운 곳은 루브르였고, 특히 『라스 메니나스』의 벨라스케스와 고야, 프란스 할스를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올랭피아』에 고야가 들어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들에게 방향을 열어 준 인물로 여겨지지만, 인상주의 그룹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공식 살롱을 통해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그 인정이 아주 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881년 살롱에서 2등 메달을 받았고 같은 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습니다. 다만 『올랭피아』에 대한 인정은 그의 생전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끝내 팔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마지막 대작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나란히 놓으면, 그가 이십 년 동안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화면 밖을 보는 여자와, 그 시선을 받게 되는 관람자입니다.

유산과 영향

에밀 졸라는 1867년에 이 그림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언젠가 루브르에 걸릴 작품이라고 썼습니다. 마네는 이듬해 졸라의 초상을 그리면서, 그 뒤 벽에 『올랭피아』 복제화를 걸어 두었습니다.

1883년 마네가 죽었을 때 이 그림은 여전히 팔리지 않은 채 아내 쉬잔에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인 수집가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클로드 모네가 나섭니다. 그는 몇 달에 걸쳐 화가와 수집가들에게 편지를 보내 2만 프랑을 모았고, 그 돈으로 쉬잔에게서 그림을 사서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참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수집가 드 벨리오는 이 일에 세 가지 뜻이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마네를 기리는 것, 그의 미망인을 조용히 돕는 것, 그리고 이 작품을 프랑스에 남기는 것.

그림은 1890년 뤽상부르 미술관에 들어갔고, 루브르에 걸리기까지는 다시 17년이 걸렸습니다. 오르세로 옮겨진 것은 1986년입니다. 살롱에서 우산에 찔릴 뻔한 그림이 국가의 소장품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폴 세잔은 이 구도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그렸고, 그 가운데 한 점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 냈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이 그림은 젠더와 시선의 권력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근래에는 인종과 노동을 논하는 자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센강 좌안, 옛 기차역을 개조한 건물입니다.

휴관일은 월요일이며, 목요일은 야간 개장을 합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합니다. 성수기에는 사실상 필수입니다.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대체로 같은 층에 함께 걸려 있지만, 오르세는 전시실 배치를 종종 조정하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시는 편이 확실합니다. 같은 미술관에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의 대표작이 모여 있어 하루를 잡는 편이 좋습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조금 불편해집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마네는 관람자를 안전한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꽃을 보낸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서는 것은 지금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지: Olympia – Édouard Manet (1863).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비슷한 글

  • 야간 순찰 – 1715년에 가위로 잘려 나간 그림

    우리는 이 그림을 온전히 보고 있지 않습니다. 1715년, 이 작품을 암스테르담 시청으로 옮기면서 두 문 사이 벽에 걸려 했는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위로 네 변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가장 크게 잘린 것은 왼쪽입니다. 잘려 나간 조각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렘브란트 판 레인 (1606~1669) 본래 제목: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 휘하 제2구역 민병대 제작…

  • 일월오봉도

    이 그림은 지금 여러분의 지갑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007년에 발행된 만 원권 지폐 앞면, 세종대왕 초상 뒤에 드리운 배경이 바로 일월오봉도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기록화에서 임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임금 대신 이 그림이 그려지곤 했습니다. 임금이 그 자리에 없어도, 이 그림이 있으면 왕이 주관하는 행사라는 뜻이었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작자 미상 (도화서 화원들의 집단 제작으로 추정) 제작…

  •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재료와 기법, 그리고 해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보티첼리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로 약 2.8미터의 화면이 벽 하나를 거의 채우고 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조개껍데기 위에 선 여신의 모습이지만, 정작 이 그림을 15세기 회화 가운데 예외적인 존재로 만든 것은 그림이 그려진 표면 그 자체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제작 연도: 1484~1486년경 기법:…

  •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이 그림에는 대각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1920년대 중반, 데 스테일을 함께 만든 테오 판 두스뷔르흐가 화면을 45도로 기울이기 시작하자 몬드리안은 그를 떠났습니다. 그에게 수직과 수평은 양식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에 관한 진실이었고, 기울어진 선은 배신이었습니다. 1930년의 이 화면에 사선이 한 줄도 없는 이유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피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 제목: 자료에…

  • 성 마태오의 소명

    화면 오른쪽에서 뻗어 나온 그리스도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신의 손이 아니라 아담의 손입니다. 방향이 뒤집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시스티나 천장에서 아담은 생명을 받고, 여기서 그리스도는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이 인용을 한 화가의 세례명은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안목 있는 관람자라면 곧바로 알아챘을 농담이자 선언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카라바조 (Caravaggio) 제작 연도:…

  • 바벨탑

    브뤼헐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장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탑은 이미 실패한 건물입니다. 어느 층도 수평이 맞지 않고, 아치는 기울어진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으며, 일부는 벌써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래층 기초가 끝나기도 전에 위층이 올라갔습니다. 신이 언어를 흩어놓기 전에, 이 탑은 스스로 무너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피터르 브뤼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