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lling of Saint Matthew by Caravaggio, 1600

성 마태오의 소명

화면 오른쪽에서 뻗어 나온 그리스도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신의 손이 아니라 아담의 손입니다. 방향이 뒤집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시스티나 천장에서 아담은 생명을 받고, 여기서 그리스도는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이 인용을 한 화가의 세례명은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안목 있는 관람자라면 곧바로 알아챘을 농담이자 선언입니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관람자에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화면 안에서 확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탁자 가운데 앉은 수염 난 남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손가락을 자기 쪽으로 돌립니다. ‘저 말입니까?’라는 몸짓입니다. 그런데 지난 이십여 년 사이 다른 읽기가 힘을 얻었습니다. 그 수염 난 남자는 자신이 아니라 옆 사람을 가리키고 있으며, 진짜 마태오는 탁자 끝에서 고개를 숙인 채 동전을 세고 있는 젊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은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순간을 그린 것이 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호함이 의도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라바조는 부름의 결과가 아니라, 부름과 응답 사이의 한 박자를 그렸습니다. 마태오가 일어설지 그대로 앉아 있을지는 화면 밖의 일입니다.

또 하나, 이 그림은 성스러운 사건을 로마 뒷골목의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후광도, 구름도, 천사도 없습니다. 세금을 세는 방에 빛이 들어올 뿐입니다.

역사적 배경

이 연작이 마태오를 다루는 데는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세운 사람이 프랑스 출신 추기경 마티외 쿠앵트렐, 이탈리아식으로 마테오 콘타렐리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세례명 성인을 기리는 공간이었고, 카라바조는 그 벽과 제단에 들어갈 그림을 맡았습니다.

1599년에 시작해 1600년에 좌우 벽의 두 점, 곧 『성 마태오의 소명』과 『성 마태오의 순교』가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맡은 대형 공공 의뢰였고, 공개되자마자 그를 로마에서 가장 논쟁적인 화가로 만들었습니다. 제단화 『성 마태오의 영감』은 그보다 늦은 1602년 작품이며, 그것도 두 번째 판본입니다. 첫 번째 버전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훗날 베를린으로 옮겨졌다가 1945년 소실되었습니다.

배경에는 반종교개혁이 있습니다. 교회는 신자의 감정을 직접 흔들 이미지를 원했고, 카라바조는 그 요구에 예상 밖의 방식으로 응답했습니다. 성인을 이상화하는 대신, 거리에서 데려온 얼굴을 썼습니다.

이 그림이 완성된 1600년 2월 17일, 로마 캄포 데 피오리에서는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되었습니다. 신앙과 권력이 팽팽하던 도시에서, 카라바조는 성경 장면을 술집처럼 그리고 있었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빛의 방향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른쪽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온 빛줄기가 뒷벽을 가로지르며 탁자 쪽 얼굴들에 닿습니다. 이 방향은 우연이 아닙니다. 콘타렐리 예배당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이 하나뿐인데, 카라바조는 그림 속 광원을 그 창과 같은 방향에 맞췄습니다. 그림 안의 빛과 방 안의 빛이 같은 곳에서 옵니다.

그런데 화면 안에 실제로 보이는 창은 닫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쪽, 기름 먹인 천으로 가려진 창이 그것입니다. 일상적인 광원은 차단되어 있고, 방을 밝히는 빛은 다른 데서 옵니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 카라바조는 이 빛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다음은 두 개의 시간입니다. 탁자에 앉은 사람들은 깃털 달린 모자, 더블릿, 칼을 갖춘 16세기 말 로마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오른쪽의 그리스도와 베드로는 맨발에 시대를 알 수 없는 옷을 걸쳤습니다. 한 방 안에 두 시대가 들어와 있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을 그리스도의 팔이 가로질러 잇습니다.

그리스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베드로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어 드러나는 것은 머리와 오른팔, 그리고 맨발뿐입니다. 화면의 주인공은 가장 적게 보이는 인물입니다.

탁자 쪽에서는 안경 쓴 사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눈앞의 사건을 보지 않고 장부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16세기 회화에 안경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카라바조는 이 물건으로 영적인 눈멂을 시각적 근시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입니다. 그리스도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속 아담의 손과 같은 각도로 뻗어 있습니다. 힘없이 늘어진 손가락까지 닮았습니다. 이 인용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지만, 로마의 성직자 관객이 그것을 알아보리라는 계산이 있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카라바조에 대하여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문이 베르가모 인근 카라바조 마을 출신이어서 그 지명으로 불립니다.

이 연작을 그릴 때 그는 스물여덟 살 전후였고, 그때까지는 개인 후원자를 위한 작은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습니다. 콘타렐리 예배당은 그의 경력을 바꾼 전환점입니다. 이후 그는 로마에서 가장 많은 주문을 받는 동시에 가장 자주 고발당하는 화가가 되었고, 1606년 라누초 토마소니를 죽인 뒤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나폴리와 몰타, 시칠리아를 떠돌며 계속 그렸고, 1610년 사면을 기대하며 로마로 향하던 길에 서른여덟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그는 준비 소묘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정도 크기의 복잡한 화면을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바로 그려 나갔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대단히 대담한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연작이 공개된 뒤 로마의 젊은 화가들은 곧바로 카라바조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카라바지스티’라 불리는 흐름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 그의 구도를 이어받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까지, 17세기 유럽 회화의 상당 부분이 이 어둠에서 나왔습니다.

현대에도 이어집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카라바조의 조명이 자신의 영화에 미친 영향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인물의 얼굴 절반만 밝히는 방식은 오늘날 영화와 광고 사진의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그림은 미술관이 아니라 성당에 있습니다.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콘타렐리 예배당, 카라바조가 이 그림을 그려 넣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왼쪽 벽에 『소명』, 오른쪽 벽에 『순교』, 제단에 『영감』이 있습니다.

  • 입장: 무료입니다. 미사 시간에는 관람이 제한됩니다.
  • 조명: 예배당은 어둡습니다. 동전 투입식 조명 장치가 있으며, 1유로 동전을 넣으면 약 2분간 켜집니다. 동전을 미리 준비해 가시기 바랍니다.
  • 위치: 나보나 광장에서 도보 5분입니다.
  • 함께 볼 곳: 도보 5분 거리의 산타고스티노 성당에 카라바조의 『로레토의 성모』가 있고, 포폴로 광장의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는 『성 바오로의 개종』과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이 있습니다. 셋 다 무료이며, 모두 원래 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 시간: 오전 개방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단체 관람객이 몰리면 예배당 앞에서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미술관에서 보는 카라바조와 성당에서 보는 카라바조는 다릅니다. 이 그림은 흰 벽에 걸리도록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예배당,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자연광, 그 방향에 맞춰 그려진 화면 속 빛. 동전을 넣고 조명이 켜지는 이 분 동안, 카라바조가 계산한 조건이 거의 그대로 복원됩니다.

이미지: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 Caravaggio (1600).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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