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상하도
이 그림의 제목에 있는 ‘청명(淸明)’ 두 글자가 무슨 뜻인지, 중국 학계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청명절이라는 해석, 변경성 안의 청명방이라는 지명 해석, 그리고 ‘맑고 밝은 시대’ 곧 태평성대를 뜻하는 찬사라는 해석이 나란히 존재합니다. 마지막 해석을 따르면 이 그림의 제목은 『강 위에 평화가 깃들다』에 가까워집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장택단 (張擇端, 1085~1145)
- 제작 시기: 12세기 초, 북송
- 기법: 비단에 수묵담채, 두루마리(핸드스크롤)
- 크기: 세로 약 24.8cm × 가로 약 528cm
- 화면 속 등장 요소: 인물 814명, 배 28척, 동물 60마리, 건물 30채, 수레 20대, 가마 8채, 나무 170그루
- 미술 사조: 송나라 회화
- 소장처: 베이징 고궁박물원
제목과 계절을 둘러싼 논쟁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청명절입니다. 봄에 조상의 묘를 찾는 명절이며, 이 그림은 그 제례가 아니라 그날 도시의 활기를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정전둬와 쉬방다 같은 감정 전문가들이 이 견해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1981년, 허난성 카이펑중학교의 쿵셴이가 미술 잡지 『미술』에 「청명상하도 의문」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화면 속 사물들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쌓아둔 숯, 손에 든 부채, 돌 롤러 같은 것들입니다. 숯을 비축하는 것은 겨울을 앞둔 행동이고, 부채는 이른 봄의 물건이 아닙니다. 여기에 화면에 등장하는 수박, 웃통을 벗은 인부들이 더해집니다. 그는 이 그림의 계절이 봄이 아니라 가을이며, ‘청명’은 절기가 아니라 변경성 안의 지명 청명방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세 번째 해석은 ‘청명’을 맑고 밝은 정치, 곧 태평성대를 뜻하는 말로 봅니다. 이 경우 그림은 특정한 날의 기록이 아니라 황제의 치세를 기리는 헌사가 됩니다.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에는 화면 속 인물들의 복장과 행동을 온열 쾌적성 분석으로 검토해 계절을 추정하려는 연구까지 나왔습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그림이 어느 날을 그린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의 주인공은 왕족도 신선도 아닙니다. 행상, 곡예사, 배우, 구걸하는 사람, 탁발하는 승려, 점쟁이, 의사, 여관 주인, 훈장, 방앗간 일꾼, 대장장이, 목수, 석공, 그리고 온갖 품계의 관리가 등장합니다. 814명이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 성문 바깥으로는 술, 곡식, 중고품, 조리도구, 활과 화살, 등롱, 악기, 금은, 장신구, 염색 직물, 그림, 약재, 바늘을 파는 가게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회화이면서 동시에 12세기 도시 경제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사라지기 직전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변경은 인구 백만이 넘는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습니다. 1127년, 금나라의 침공으로 북송은 이 도시를 잃고 남쪽으로 밀려납니다. 그 뒤 이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보는 방법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원래 유리장 안에 전체를 펼쳐 놓고 보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들고, 한 팔 길이만큼씩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풀어가며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조용한 교외에서 시작해, 나귀 떼가 도성으로 향하고, 강변이 점점 붐비다가, 홍교에서 절정에 이르고, 성문을 지나 시가지로 들어갑니다. 회화라기보다 음악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홍교 장면. 이 그림의 중심입니다. 커다란 배 한 척이 다리 아래를 통과하려는데 각도가 어긋났습니다. 뱃사람들이 급히 돛대를 내리고, 삿대와 밧줄에 매달리고, 한 사람이 다리 쪽으로 줄을 던집니다. 다리 위에서는 수십 명이 난간에 몸을 기울여 소리치며 손짓합니다. 정지한 화면 안에서 몇 초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다리 자체도 주목할 만합니다. 홍교는 물속에 기둥을 하나도 세우지 않고 목재를 엮어 만든 아치 구조입니다. 송대 이후 이 공법은 끊겼고, 오늘날 그 구조를 복원하는 연구는 상당 부분 이 그림에 의존합니다. 회화가 공학의 일차 사료 역할을 하는 드문 사례입니다.
끝맺음. 두루마리는 다소 갑작스럽게 끝납니다. 원래 궁성 구역을 담은 부분이 더 있었으나 소실되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장택단에 대하여
장택단(1085~1145)은 산둥 출신으로, 젊어서 수도로 유학을 갔다가 그림을 배웠다고 전합니다. 그는 건물과 배, 수레, 다리, 성벽, 거리를 정밀하게 그리는 계화(界畫)에 능했고, 자기 양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생애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한 점으로 중국 회화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유산과 모사본
이 그림은 후대에 수없이 모사되고 재해석되었습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한 곳에만 여덟 점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736년의 ‘청원본(淸院本)’입니다. 천메이, 쑨후, 진쿤, 다이훙, 청즈다오 등 다섯 명의 청나라 궁정화가가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 원본보다 길고 색이 화려하며, 무엇보다 그려진 도시가 다릅니다. 청원본이 보여주는 것은 북송의 변경이 아니라 청나라의 쑤저우에 가깝습니다. 같은 제목으로 각 시대가 자기 도시를 그린 셈입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에서는 이 그림을 128미터 길이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인물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낮과 밤이 바뀌는 방식이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원본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있습니다. 자금성 안에 있으며 지하철 1호선 톈안먼둥역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원본은 거의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단에 그린 천 년 된 두루마리이므로 전시 자체가 손상 요인입니다. 공개는 몇 년에 한 번, 특별전 형태로만 이루어집니다. 이 그림을 목표로 베이징에 가시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방문 전에 고궁박물원 공식 웹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하시고, 없다면 상설 전시실의 고해상도 복제본으로 대신하셔야 합니다.
대안이 있습니다. 고궁박물원 공식 웹사이트는 초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화면에서 확대하면 노점의 간판 글씨와 인물의 손동작까지 보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그림을 세부까지 뜯어보기에는 온라인이 실물보다 낫습니다. 원래 손에 들고 한 구간씩 보도록 만들어진 그림이므로, 화면을 좌우로 밀며 보는 방식이 오히려 본래의 감상법에 가깝기도 합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서는 청원본을 비롯한 후대 판본을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소음입니다. 814명이 저마다 말하고 팔고 싣고 밀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1127년에 멈췄고, 도시는 함락되었으며, 남은 것은 그날이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다섯 미터짜리 비단입니다.
이미지: 『청명상하도』 중 변경 성문 부분 – 장택단, 12세기 초,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전체 두루마리의 일부입니다.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