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금박, 가장자리, 그리고 1908년
1908년 여름, 오스트리아 정부는 빈 쿤스트샤우 전시장에 걸려 있던 키스를 그 자리에서 사들였습니다. 그림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작품이 팔린 뒤에야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이 그림에 대한 어떤 찬사보다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기본 정보
-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 제작 연도: 1907–1908년
- 기법: 캔버스에 유채, 금박·은박·백금박
- 크기: 180 × 180 cm (정사각형)
- 미술 사조: 아르누보 (빈 유겐트슈틸)
- 소장처: 벨베데레 미술관, 빈
금박: 어디에서 온 것인가
클림트는 금색 물감을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 금박을 손으로 직접 붙였고, 일부 구역에는 은박과 백금박도 사용했습니다. 조명에 따라 화면의 성격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한 빛에서는 반사하며 반짝이고,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는 따뜻하고 무광에 가까운 빛을 냅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연도까지 특정할 수 있습니다. 1903년 클림트는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산 비탈레 성당의 초기 기독교 모자이크를 보았습니다. 비잔틴 전통에서 금색 바탕은 신성을 뜻합니다. 물질세계 바깥의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클림트는 그 장치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다만 성인(聖人)이 아니라,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에게 적용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클림트의 아버지는 금 세공사였습니다. 그가 자라며 보아 온 재료가 훗날 그를 대표하는 재료가 된 셈입니다.
실제로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
두 개의 문양, 두 개의 언어
남성의 로브에는 검고 흰 직사각형이 반복됩니다. 여성의 로브는 둥글고 색이 풍부한 꽃 문양으로 덮여 있습니다. 두 문양은 맞닿아 있지만 섞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하나의 황금빛 덩어리로 보이는 형태가, 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장식 체계를 붙여 놓은 것이라는 점은 가까이 가야 보입니다.
자주 간과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클림트의 평생 동반자였던 에밀리에 플뢰게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1908년 당시 유행과 결별한 헐렁하고 문양이 많은 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 이 로브의 형태는 그녀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여겨집니다.
가장자리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꽃밭은 갑자기 끊깁니다. 여성의 발을 보십시오. 발가락이 가장자리 너머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그 뒤로는 땅이 없습니다.
이것은 장식적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는 이 장면을 하나가 되는 순간이 아니라, 둘 중 하나가 몸을 빼기 직전의 순간으로 읽습니다. 여성의 얼굴은 돌려져 있고, 남성의 손 위에 얹힌 그녀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포스터로 익숙한 이미지보다 훨씬 모호한 그림입니다.
머리에 쓴 것
남성은 담쟁이와 잎으로 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포도 넝쿨과 도취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적 도상인 동시에, 비잔틴 이콘의 황금 후광을 연상시킵니다. 이교의 식물과 기독교의 신성이 하나의 머리 장식 안에 겹쳐 있습니다.
1908년의 구입은 정치적 선언이었다
정부가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이해하려면 몇 해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클림트는 빈 대학교를 위해 세 점의 대형 천장화, 이른바 ‘학부 회화’를 제작했습니다. 결과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지나치게 관능적이고, 지나치게 어둡고, 교육기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교육부는 거리를 두었고, 클림트는 결국 그 작품들을 되사들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같은 부처가 쿤스트샤우에서 키스를 2만 5천 크로네에 구입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장품 확보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오스트리아 문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개적인 노선 전환이었습니다. 당시 생존 작가의 작품에 지불된 금액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였습니다.
덧붙이자면 1908년 전시 도록에 이 작품은 『키스』가 아니라 『연인(Liebespaar)』이라는 제목으로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아는 제목은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
이 그림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
키스를 오늘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작품은 보호 시설로 옮겨졌습니다. 클림트의 다른 작품들은 그만큼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1945년 임멘도르프 성 화재로 여러 점이 소실되었는데, 그중에는 앞서 스캔들을 일으켰던 바로 그 세 점의 학부 회화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국가가 거부했던 작품들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사들인 작품은 지금도 걸려 있습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
키스는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 중 오버레스 벨베데레(상궁) 상설 전시실에 있습니다. 1908년 이후 이곳을 거의 떠난 적이 없으며, 최근 수십 년간 대여된 사례가 없습니다.
주소는 Prinz-Eugen-Straße 27, 빈 중앙역에서 도보 약 15분 거리이고 트램 D선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관람 요령 세 가지. 첫째,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매하십시오. 성수기 대기 줄이 깁니다. 둘째, 클림트 전시실은 미술관에서 가장 붐비는 공간이므로 개관 직후나 폐관 무렵이 낫습니다. 셋째, 정면에서만 보지 말고 위치를 옮겨 가며 보십시오. 금박이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화면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작품의 핵심입니다.
같은 전시실에 『유디트 I』도 걸려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많은 사람이 이 두 인물을 클림트와 에밀리에 플뢰게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증거는 없습니다. 클림트는 인물을 특정한 적이 없고, 관련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가 애초에 특정한 연인을 그릴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대부분 가려져 있고, 두 몸은 하나의 황금빛 형태 안으로 사라집니다. 초상화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 빈자리 덕분에 이 그림은 보는 사람 누구에게나 들어맞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작품이 그토록 많은 포스터와 머그컵에 실리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미지: The Kiss – Gustav Klimt (1908).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