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이 그림의 벽은 원래 파란색이 아니었습니다. 반 고흐는 1888년 10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방의 색을 하나하나 적어두었습니다. 벽은 옅은 보라, 바닥은 색이 바랜 붉은 타일, 침대와 의자는 크롬 옐로, 베개와 시트는 아주 옅은 레몬빛 초록, 침대보는 핏빛 붉은색, 화장대는 주황, 세면기는 파랑, 창문은 초록. 지금 우리가 보는 파란 벽과 초록빛 도는 바닥은 물감이 변한 결과입니다.
기본 정보
- 작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 제작 시기: 1889년 9월, 생레미드프로방스 (두 번째 판본)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73.6 × 92.3 cm
- 미술 사조: 후기 인상주의
- 소장처: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사라진 보라색
이 그림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보는 것이 화가가 그린 것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단서를 남긴 사람은 반 고흐 본인이었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의 수석 보존과학자 프란체스카 카사디오는 이 조사의 첫 실마리를 큐레이터가 아니라 화가에게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1888년의 편지에 벽이 옅은 보라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화면의 벽은 파랗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안료였습니다. 반 고흐가 보라를 만들기 위해 섞은 붉은 계열 안료가 빛에 약해 시간이 지나며 빠져나갔고, 남은 파랑만 보이게 된 것입니다. 바닥의 붉은 타일도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은 초록과 갈색 사이의 색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반 고흐가 이 그림에서 의도한 것은 강렬한 대비가 아니라 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편지에 색이 일을 해야 한다고, 사물을 단순하게 만들어 휴식이나 잠을 암시하게 해야 한다고, 이 그림을 보면 머리가, 아니 상상력이 쉬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보라색 벽과 붉은 바닥의 방은 지금의 파랑과 초록보다 훨씬 따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그린 휴식이 아니라 그 휴식이 백삼십 년 동안 식어간 상태를 보고 있습니다.
세 개의 판본
이 구도는 세 번 그려졌습니다.
첫 번째는 1888년 10월 아를의 노란 집에서 그려졌습니다. 그가 그 집에 들어간 지 한 달 뒤이고, 고갱이 도착하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남쪽의 화실을 만들겠다는 기대로 들떠 있던 시기입니다. 고갱은 도착해서 이 그림을 보고 감탄했고, 반 고흐는 그 사실을 기뻐했습니다. 지금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습니다.
두 번째가 이 작품입니다. 이듬해 아를에 홍수가 나면서 첫 번째 그림이 물에 젖어 심하게 상했고, 그 무렵 반 고흐는 생레미의 요양원에 있었습니다. 그는 손상된 원본을 보고 같은 크기로 다시 그렸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번째 판본이 첫 번째보다 색의 대비가 더 강하고 물감층이 더 두껍다는 점입니다. 잃어버린 방을 기억으로 다시 세우면서 오히려 더 선명해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두 번째를 그린 지 삼 주 뒤에 조금 작은 크기로 그렸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빌레미나에게 줄 선물이었습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세 판본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는 것입니다. 판본마다 다른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세 점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16년 시카고 미술관의 《반 고흐의 침실들》 전시가 유일합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원근. 바닥 판자의 선들이 한 점으로 몰리지 않고, 가구들은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벽면의 각도도 맞지 않습니다. 이것을 불안의 표현으로 읽는 해석이 많지만, 실제 아를의 그 방이 사각형이 아니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만합니다. 노란 집의 이 방은 한쪽 벽이 비스듬한 구조였습니다.
의자 두 개. 침대 하나에 의자는 둘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로 읽히기도 하고, 떠난 사람의 자리로 읽히기도 합니다. 첫 번째 판본을 그릴 때 그는 고갱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두 번째 판본을 그릴 때 고갱은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같은 의자가 두 그림에서 다른 뜻을 가집니다.
벽의 그림들. 초상화 두 점과 풍경화가 걸려 있습니다. 요양원 안에서 그는 자기 방의 벽에 자기 그림이 걸려 있는 장면을 다시 그렸습니다.
비어 있음. 사람은 없고 문은 닫혀 있습니다. 창은 살짝 열려 있습니다. 이 방의 주인은 방금 나갔거나 곧 들어올 참입니다.
역사적 배경
1888년 12월, 고갱과의 갈등 끝에 반 고흐는 자기 귀의 일부를 잘랐습니다. 이후 아를 주민들의 탄원이 있었고, 1889년 5월 그는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갑니다. 이 그림은 그곳에서 그려졌습니다.
즉 이 화면의 평온한 방은 그가 그때 머물던 공간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집을 기억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노란 집은 그에게 처음으로 집처럼 느껴진 장소였고, 그 집에서의 시간은 두 달 남짓이었습니다.
노란 집 자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44년 6월 25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크게 부서졌는데, 고갱이 쓰던 방은 남았지만 반 고흐의 방은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복원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건물은 이후 철거되었습니다. 그 방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1933년에 찍힌 흐릿한 사진 두 장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
반 고흐(1853~1890)는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화상, 교사, 전도사를 거쳐 서른 가까이 되어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화가로 산 기간은 십 년이 채 되지 않지만 유화 약 900점과 소묘 1,100점 이상을 남겼습니다. 동생 테오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 가지 널리 퍼진 이야기는 정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그림을 단 한 점만 팔았다는 말입니다. 1890년 안나 보흐가 『붉은 포도밭』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반 고흐 미술관은 ‘한 점’이라는 숫자를 근거 없는 통설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작품들도 팔거나 교환했습니다. 팔리지 않은 화가라는 서사가 그의 삶을 설명하기 좋았을 뿐입니다.
아를 시기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보면 이 그림의 위치가 분명해집니다. 『해바라기』는 고갱이 쓸 방을 꾸미려고 그린 것이고, 『밤의 카페 테라스』는 같은 도시의 밤이며, 이 그림은 그 집의 안쪽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요양원에서 그린 『아몬드 꽃』은 같은 장소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본 그림입니다.
유산과 영향
이 작품은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회화의 정면 주제로 끌어올렸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실내, 데이비드 호크니의 선명한 색면 실내는 모두 이 계보 위에 있습니다.
2016년 시카고 미술관은 《반 고흐의 침실들》 전시를 열면서 이 방을 실제 크기로 재현해 에어비앤비에 올렸습니다. 하룻밤 10달러였습니다. 같은 전시에서 세 판본이 북미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고, 방의 디지털 복원도 공개되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미시간 애비뉴에 있는 시카고 미술관에 있습니다. 밀레니엄 파크 바로 옆이라 접근이 쉽습니다.
개관 요일과 시간, 입장료는 자주 바뀌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개장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같은 미술관에 쇠라의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있습니다. 시카고 미술관 안내문이 첫 번째 침실의 색채가 쇠라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는 만큼, 두 작품을 같은 날 보는 것은 우연한 조합이 아닙니다.
나머지 두 판본을 보려면 암스테르담과 파리로 가야 합니다. 세 도시에 흩어진 같은 방입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아늑함이 아니라 시차입니다. 반 고흐는 두 달 살았던 집의 방을, 그 집을 떠난 뒤 요양원에서, 기억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칠한 보라색은 우리가 보기 전에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미지: The Bedroom – Vincent van Gogh, 1889년(두 번째 판본), 시카고 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