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dden Shower over Shin-Ōhashi Bridge and Atake by Utagawa Hiroshige, 1857

신오하시 다리와 아타케의 갑작스러운 소나기

이 그림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모릅니다. 화면을 뒤덮은 수천 개의 빗줄기는 히로시게가 새긴 것이 아닙니다. 우키요에는 분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공이 목판에 새기고, 인쇄공이 찍고, 판원이 출판했습니다. 히로시게는 나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각도로 내리는, 일부러 어긋나고 끊어지게 만든 그 가는 선들을 실제로 파낸 사람은 이름이 남지 않은 조각공입니다.

기본 정보

  • 원화: 우타가와 히로시게 (歌川広重, 1797~1858)
  • 원제: 大はしあたけの夕立 (오하시 아타케의 유다치)
  • 발행: 1857년 9월, 판원 우오야 에이키치
  • 시리즈: 『명소 에도 백경(名所江戸百景)』 중 한 점 (자료에 따라 52번 또는 58번)
  • 기법: 다색 목판화, 오반 판형 약 35 × 24 cm
  • 미술 사조: 우키요에
  • 소장: 목판화이므로 단일 소장처가 없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호놀룰루 미술관, 프리어 갤러리 등 여러 기관이 판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제목의 ‘유다치(夕立)’는 여름 늦은 오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뜻합니다. 이 그림은 계절도 시각도 특정된 장면입니다.

비를 표현한 방식이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히로시게가 흰 비라고 부른 이 빗줄기는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내립니다. 진한 검은 선과 그보다 부드러운 회색 선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겹치고, 선들은 일부러 고르지 않고 중간중간 끊어져 있습니다. 목판에 이런 선을 파내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며, 그 결과 화면에서 비는 균일한 무늬가 아니라 실제로 쏟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늘의 어둠은 보카시 기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쇄공이 찍을 때마다 목판 위에서 먹을 손으로 문질러 농담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같은 그림이라도 판본마다 하늘의 어둡기가 다릅니다. 어떤 판본은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고, 어떤 판본은 훨씬 옅습니다. 도판을 여러 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뚜렷합니다.

그리고 이 화면에는 정지된 것이 없습니다. 다리 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셋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한 사람은 삿갓만 쓴 채 다리를 벌리고 버팁니다. 강 위에는 뗏목을 모는 사공이 혼자 있습니다. 그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게 그린 것

이 그림에는 검열을 피한 흔적이 있습니다.

건너편 기슭에 있던 것은 막부의 선박 창고였습니다. ‘아타케’라는 지명 자체가 그 앞에 정박해 있던 1,500톤급 관선 아타케마루에서 온 비공식 명칭입니다. 이 창고는 1855년 안세이 대지진으로 파손되었다가 이 그림이 나올 무렵 복구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막부는 정부와 관련된 대상을 그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히로시게는 그 창고를 화면 왼쪽 끝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남겼습니다. 대신 다리의 형태와 시점만으로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금지된 것을 그리지 않으면서 장소를 특정하는 방법입니다.

역사적 배경

신오하시는 1693년에 놓인 다리입니다. 이름의 ‘신(新)’은 북쪽에 이미 있던 오하시, 훗날의 료고쿠 다리와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스미다강을 건너는 이 다리는 에도 시민의 일상 동선이었습니다.

『명소 에도 백경』은 1856년부터 1858년에 걸쳐 제작된 대형 시리즈입니다. 히로시게는 이 작업을 하던 중 1858년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고, 시리즈는 그의 마지막 대작이 되었습니다.

우키요에는 서민의 매체였습니다. 목판으로 대량 인쇄했기 때문에 값이 쌌고, 누구나 살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대가로 우키요에 화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으로 취급되었고, 히로시게는 이 정도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림으로 큰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감상 포인트

대각선. 다리가 화면을 가로질러 깊이를 만들고, 비는 반대 방향으로 내립니다. 두 개의 사선이 교차하면서 화면에 긴장이 생깁니다.

잘린 구도. 다리는 양쪽 화면 밖으로 이어지고, 사람들도 가장자리에서 잘립니다. 장면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한 부분만 오려낸 이 방식이 훗날 서양 화가들이 가장 열심히 배운 부분입니다.

인물의 계층. 다리 위 사람들의 차림이 다릅니다. 옷을 겹쳐 입고 게다를 신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발도 없이 천 조각을 뒤집어쓴 사람도 있습니다. 소나기는 모두에게 똑같이 내리지만, 그것을 막을 수단은 같지 않습니다.

먼 기슭. 건너편은 비에 뿌옇게 흐려져 있습니다. 원근을 거리가 아니라 대기의 밀도로 표현했습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에 대하여

히로시게(1797~1858)는 에도의 소방 관리 집안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무렵 우타가와 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풍경화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열었습니다.

그의 특기는 날씨였습니다. 비, 눈, 안개, 바람이 그의 화면에서는 배경이 아니라 주제입니다. 대표작으로 『도카이도 오십삼차』와 이 작품이 속한 『명소 에도 백경』이 있습니다.

1858년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는 일본이 개항 조약을 맺은 해이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이 서양으로 흘러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직후부터였습니다.

유산과 영향

빈센트 반 고흐는 1887년 이 그림을 유화로 옮겨 그렸습니다. 다만 그가 보고 그린 것은 원본 판화가 아니라 1886년 5월호 잡지 『파리 일뤼스트레』의 일본 특집에 실린 복제 도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본에 없는 것을 덧붙였습니다. 화면 가장자리에 일본 글자로 된 테두리를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 글자들은 다른 판화에서 베껴온 것으로, 이 그림의 맥락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포니슴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매혹은 진짜였고 이해는 부분적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반 고흐가 일본 판화에서 배운 것들은 『아몬드 꽃』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가는 구도, 굵은 윤곽선, 원근을 지운 평면적 색면입니다. 같은 시기 우키요에의 또 다른 정점인 우타마로의 『당대 세 미인』과 나란히 놓으면,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각각 무엇이 극단까지 밀어붙여졌는지 보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목판화이므로 여러 미술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브루클린, 시카고, 클리블랜드, 호놀룰루, 워싱턴의 프리어 갤러리 등이 판본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종이 작품은 빛에 매우 약합니다. 이런 판화는 상설 전시되지 않으며, 기획전 형태로 제한된 기간에만 공개됩니다. 특정 미술관을 목표로 가신다면 반드시 사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전시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메트로폴리탄을 찾으신다면 아시아 미술 전시 구역에 있습니다. 입장료에 관해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의 ‘원하는 만큼 내기’ 방식은 뉴욕주 거주자와 인근 세 개 주 학생에게만 적용되며, 해외에서 오는 관람객은 정해진 금액을 내야 합니다.

판본마다 상태와 색이 다르다는 점도 기억하실 만합니다. 초기 인쇄본일수록 선이 또렷하고 하늘의 먹이 진합니다. 온라인에서 여러 기관의 소장본을 비교해 보면, 같은 그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비가 아니라 노동입니다. 수천 개의 선을 하나씩 파낸 사람이 있었고, 찍을 때마다 하늘의 농담을 손으로 맞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히로시게의 이름만 기억합니다.

이미지: 大はしあたけの夕立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7년 9월, 『명소 에도 백경』 중.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비슷한 글

  • 댄스 클래스

    드가는 이 그림에서 존재하지 않는 방을 그렸습니다. 배경은 르 펠르티에 거리에 있던 옛 파리 오페라의 연습실인데, 그 건물은 1873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 그림은 그 이듬해에 그려졌습니다.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 장면은 관찰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 재구성한 무대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제작 연도: 1874년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83.5 × 77.2 cm 미술…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이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풍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프리드리히는 삼십 년 동안 엘베 사암산맥을 걸어 다니며 현장에서 스케치를 모았고, 드레스덴의 작업실에서 그것들을 조합해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는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미술사가들은 이 화면 각 부분이 어느 스케치에서 왔는지까지 짚어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1774~1840) 제작 시기: 1818년경, 드레스덴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94.8 × 74.8…

  • 기도하는 손

    이 그림에는 잘린 자국이 있습니다. 두 손은 원래 더 큰 종이의 일부였고, 같은 종이의 다른 쪽에는 위를 올려다보는 수염 난 남자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같은 사도의 얼굴입니다. 누군가 나중에 이 종이를 잘랐고,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묘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에는 뒤러가 거의 모든 작품에 남긴 서명도 연도도 없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 건초 마차 – 205년 만에 처음 고향으로 간 그림

    이 그림은 서퍽을 그렸지만, 서퍽에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컨스터블은 여러 해 여름에 걸쳐 스투어 강변에서 모은 유화 스케치를 들고 런던의 작업실로 돌아가 이 대작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205년 동안 이 그림은 자신이 그린 그 하천 근처에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2026년, 처음으로 갔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 제작 연도: 1821년. 1821년 왕립 아카데미…

  • 가나가와 해변의 큰 파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예술 작품 중 하나인 가나가와 해변의 큰 파도는, 놀랍게도 원래 후지산을 주인공으로 기획된 연작의 한 장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후지산을 압도해버렸고, 그 결과 역사상 가장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Katsushika Hokusai) 제작 연도: 1831년 기법: 목판화 (우키요에) 크기: 25.7 × 37.9 cm 미술 사조: 우키요에…

  • 멜랑콜리아 I

    오른쪽 위 벽에 걸린 4×4 마방진은 장식이 아니라 처방입니다. 르네상스의 점성술 전통에서 4차 마방진은 목성의 것이었고, 우울은 토성이 다스리는 상태였습니다. 목성의 쾌활함이 토성의 어둠을 눌러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뒤러는 우울을 그린 화면 안에 그 우울을 막는 부적을 걸어두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34가 되는 이 숫자판의 맨 아랫줄 가운데에는 15와 14, 곧 제작 연도가 들어 있습니다. 기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