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hool of Athens by Raphael, 1511

아테네 학당

이 벽화에는 나중에 덧붙인 부분이 있습니다. 계단 앞 대리석 덩어리에 홀로 기대앉은 인물,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실물 크기 밑그림에는 이 인물이 없습니다. 그 밑그림은 지금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에 남아 있습니다. 기술 조사 결과, 이 인물은 주변이 다 완성된 뒤 새로 바른 회반죽 위에 그려졌습니다. 옆에서 비스듬히 빛을 받으면 그 이음매가 보인다고 합니다.

기본 정보

덧붙여진 인물

1509년 라파엘로는 스물여섯 살이었고, 같은 시기 미켈란젤로는 몇십 미터 떨어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작업 중인 천장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바사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어떻게든 그 천장을 보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완성 단계에 들어간 자기 벽화에 인물을 하나 더 넣기로 합니다. 굳게 다문 입, 무거운 몸,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홀로 무언가를 적는 사람. 미켈란젤로의 얼굴이고, 미켈란젤로의 화풍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인물이 밑그림에 없다는 사실과 별도의 회반죽 위에 그려졌다는 사실은 모두 확인된 것입니다. 벽화라는 매체에서 인물을 추가한다는 것은 회반죽을 다시 바르고 하루 안에 끝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라파엘로는 그 수고를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이 인물은 화면 안에서 유일하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오십여 명은 무리를 이루어 논쟁하고 가르치고 듣고 있는데, 그 사람만 등을 돌린 채 혼자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벽화의 핵심은 두 손입니다.

중앙의 두 인물 가운데 왼쪽이 플라톤, 오른쪽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아래로 폅니다. 그런데 이 몸짓은 추상적인 상징이 아니라 그들이 들고 있는 책에서 나옵니다.

플라톤이 든 책은 『티마이오스』입니다. 우주가 완전한 수학적 형상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논하는 대화편이며, 르네상스에 되찾은 그의 저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은 위를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든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그래서 손바닥은 발밑을 가리킵니다.

두 개의 손이 이천 년에 걸친 서양 철학의 논쟁을 요약합니다. 관념이 먼저인가, 관찰이 먼저인가.

이 방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벽화가 있는 ‘서명의 방’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개인 서재이자 장서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벽에는 그 아래 책장에 꽂힌 책의 분류가 그려졌습니다. 신학, 철학, 시, 법학입니다.

이 작품은 그중 철학의 벽입니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아테네 학당’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벽화 바로 위 천장에는 철학의 알레고리가 그려져 있고, 그 여성 인물이 든 두 권의 책에는 도덕과 자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맞은편 벽에는 『성체 논쟁』이 있습니다. 신학입니다. 방 하나에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이 서로를 마주 봅니다. 이 배치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가장 야심 찬 주장입니다. 아테네의 진리와 교회의 진리가 같은 일의 두 절반이라는 것입니다. 교황의 서재에서 말입니다.

누가 어디에 있는가

중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했다는 견해가 16세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긴 코, 넓은 이마, 곱슬한 수염이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의 초상과 일치합니다. 다만 라파엘로 본인의 기록은 없습니다.

왼쪽 앞. 책에 무언가를 적는 인물이 피타고라스입니다. 옆에서 한 소년이 음정 비율이 적힌 서판을 들고 있습니다.

계단 위. 반쯤 벗은 채 그릇을 옆에 두고 계단에 드러누운 인물이 디오게네스입니다. 모두가 오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누워 있습니다.

오른쪽 앞. 컴퍼스로 바닥에 도형을 그리며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인물이 에우클레이데스입니다. 얼굴은 건축가 브라만테를 닮았다고 전해집니다.

오른쪽 끝. 천구를 든 조로아스터와 지구의를 든 프톨레마이오스가 있고, 그 옆에서 검은 모자를 쓰고 화면 밖을 바라보는 젊은 남자가 라파엘로 자신입니다.

뒤편 벽감. 플라톤 쪽에 아폴론, 아리스토텔레스 쪽에 미네르바 상이 서 있습니다. 시와 지혜입니다.

배경 건축

인물들이 서 있는 이 웅장한 실내는 실재하지 않았습니다. 브라만테가 설계하던 새 성 베드로 대성당의 구상에서 온 것입니다. 당시 그 성당은 막 착공된 상태였습니다.

즉 라파엘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앞으로 지어질 교황청 대성당의 내부에 세워 놓았습니다. 배럴 볼트와 격자 천장, 깊은 소실점은 고대 로마 공공건축의 규모를 재현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건물을 미리 보여줍니다.

라파엘로에 대하여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는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전성기 르네상스의 세 거장으로 꼽힙니다.

이 벽화를 시작할 때 그는 스물여섯이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가 그에게 교황의 서재를 맡긴 것은 상당한 도박이었고, 결과적으로 이 방이 그를 미켈란젤로와 동급으로 만들었습니다.

화면 안에 동시대 인물들의 얼굴을 넣는 방식은 이 시기 회화의 관행이기도 했지만, 라파엘로의 경우 그것이 하나의 선언이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플라톤이고 미켈란젤로가 헤라클레이토스라면, 지금 이 도시에서 일하는 화가들이 고대의 철학자들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유산과 영향

이 벽화는 이후 수백 년 동안 군상 구성의 교과서였습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반복해서 참조했고, 오늘날에도 건축과 영화 미술, 광고가 이 구도를 인용합니다.

더 넓게는 ‘지식의 전당’이라는 개념 자체를 시각화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도서관과 대학이 자신을 표현할 때 여전히 이 이미지를 씁니다.

같은 시기 로마에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습니다. 두 벽화는 몇십 미터 거리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고, 서로를 밀어붙였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바티칸 사도궁의 서명의 방에 있습니다. 프레스코이므로 벽에서 떼어낼 수 없고, 오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으로 볼 수 있으며, 온라인 사전 예약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성수기에는 몇 주 전에 마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람 요령이 하나 있습니다. 박물관은 관람 동선을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끝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라파엘로의 방들에 이를 무렵 이미 다음 방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시기 바랍니다. 이 방은 시스티나보다 덜 붐비고, 인물 하나하나가 실제로 보입니다. 십 분만 서 있어도 헤라클레이토스의 회반죽 이음매, 두 사람이 든 책의 제목, 계단에 누운 디오게네스를 차례로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방의 맞은편 벽에 『성체 논쟁』이 있으니 반드시 돌아서서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벽을 함께 보아야 이 방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벽화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오십 명이 넘는 인물이 이야기를 나누는 화면 한가운데에, 나중에 덧붙여진 한 사람이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라파엘로가 자기 그림을 뜯어고쳐서까지 넣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이미지: The School of Athens – Raphael, 1509~1511년, 바티칸 사도궁 서명의 방.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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