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re-Dame de Paris by Unknown, 1345

노트르담 대성당 – 그 유명한 괴물들은 중세가 아니다

노트르담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히는 조각은 중세의 것이 아닙니다. 턱을 두 주먹에 괴고 파리를 내려다보는 그 유명한 괴물, ‘스트리주’는 19세기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가 1860년대에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2019년 화재로 무너진 첨탑 역시 중세가 아니라 그가 1859년에 세운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노트르담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십구 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기본 정보

  • 건축: 이름이 전하지 않는 여러 세대의 석공과 장인들
  • 착공: 1163년, 파리 주교 모리스 드 쉴리의 주도
  • 주요 완공: 13세기 중반. 이후 부분 공사가 14세기 중반까지 이어짐
  • 양식: 고딕
  • 규모: 길이 약 128m, 신랑 궁륭 높이 33m, 서쪽 두 탑 69m, 첨탑 끝 96m
  • 소재지: 프랑스 파리 4구 시테섬.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고일과 키메라는 다릅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야 합니다.

가고일은 지붕의 빗물을 벽에서 멀리 뱉어내는 배수구입니다. 기능이 있습니다. 물이 벽을 타고 흘러 석재를 상하게 하는 것을 막습니다.

키메라는 기능이 없습니다. 순수한 장식이며, 남쪽 탑의 회랑 난간에 앉아 있습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것은 대개 이쪽입니다.

그리고 그 키메라들은 1860년대에 비올레르뒤크가 설계해 새로 얹은 것입니다. 중세에는 없었습니다. 악을 쫓는 수호자라는 설명도 후대에 붙은 것입니다. 그가 만든 것은 중세 성당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십구 세기 사람들이 상상한 중세를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

이 사실이 이 건물의 가치를 깎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역사적 배경

12세기 파리는 빠르게 커지고 있었고, 교회는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와 학문의 중심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고딕 양식이 태어났습니다.

이전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무게를 두꺼운 벽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을 크게 낼 수 없었고 실내는 어두웠습니다. 고딕은 그 하중을 첨두아치와 늑골 궁륭, 그리고 건물 바깥의 플라잉 버트레스로 분산시켰습니다. 벽이 무게를 덜 받게 되자 벽을 뚫어 유리를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딕 성당의 빛은 신학의 결과이면서 구조 계산의 결과입니다.

노트르담은 이 기술을 대규모로 적용한 초기 사례입니다. 건물 뒤편 장 23세 광장으로 돌아가면 동쪽 끝의 부벽들이 보입니다. 대부분의 방문객이 정면만 보고 돌아가지만, 이 건물에서 가장 정교한 공학은 뒤쪽에 있습니다.

서쪽 정면 읽는 법

세 개의 문. 각 문의 조각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경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성모의 문, 최후의 심판의 문, 성 안나의 문입니다.

왕들의 갤러리. 문 위를 가로지르는 스물여덟 개의 조각상입니다. 그런데 이 조각들의 머리는 원본이 아닙니다. 프랑스 혁명 때 군중이 이들을 프랑스 왕으로 착각하고 목을 잘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유다 왕국의 왕들이었습니다. 잘린 머리 스물한 개는 1977년 파리 시내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고, 지금은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있습니다.

장미창. 세 개가 있습니다. 서쪽은 지름 약 9.6미터, 남쪽과 북쪽은 약 13미터입니다. 원래의 중세 유리를 가장 잘 간직한 것은 남쪽 장미창입니다. 서쪽과 북쪽은 혁명기의 손상 이후 십구 세기에 교체되었습니다.

1789년과 2019년

이 건물은 두 번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되었고 조각들이 파괴되었습니다. 19세기 초에는 철거 논의까지 나올 만큼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꾼 것이 소설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쓰면서, 무너져 가는 이 건물에 파리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 했습니다. 의도는 성공했고, 그 여론이 비올레르뒤크의 대규모 복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첨탑과 키메라가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4월 15일의 화재는 지붕과 첨탑을 태웠습니다. 석조 궁륭과 장미창은 살아남았습니다. 재건에는 약 8억 4천만 유로가 들었고, 필리프 빌뇌브가 지휘했습니다. 첨탑은 비올레르뒤크의 설계 그대로 다시 세워졌고, 꼭대기에는 잿더미에서 회수된 수탉 성유물함이 돌아갔습니다.

지붕의 목조 구조는 참나무 2,400그루로, 철물을 쓰지 않는 전통 목공 방식으로 다시 짰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다릅니다

2024년 12월 7일 재개관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놀란 것은 첨탑이 아니라 돌의 색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쌓인 촛불 그을음과 화재 잔여물을 세척하면서, 내부의 석재가 거의 흰색에 가까워졌습니다. 화재 이전의 어둡고 무거운 실내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건물처럼 보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이 색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설계자의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중세의 건축 현장에서 개인의 서명은 관행이 아니었습니다.

이 건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어졌습니다. 착공에 참여한 석공은 완공을 보지 못했고, 그 손자 세대가 이어받았습니다. 자기가 살아서 볼 수 없는 건물을 위해 평생 일한다는 조건이 이 시기 대성당 공사의 기본값이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노트르담의 구조적 해법은 샤르트르, 랭스, 아미앵으로 이어지며 프랑스 고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프랑스 역사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여기서 열렸습니다. 이 성당의 실루엣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배경에도 등장합니다. 화약 연기 너머 탑 위에 삼색기가 걸려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파리 4구 시테섬에 있습니다. 메트로 4호선 시테역에서 도보 5분입니다.

본당 입장은 무료입니다. 다만 무료 시간대 예약을 잡는 것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예약은 방문 48시간 전 자정에 열리고, 성수기에는 좋은 시간대가 한 시간 안에 마감됩니다. 예약 없이 가면 성수기 기준 두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 종탑은 2025년 9월 20일 재개방되었습니다. 별도 유료이며 온라인 예약만 가능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수백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갑니다. 새 동선에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세계 최대의 이중나선 목조 계단과, 두 탑을 잇는 새 테라스가 포함됩니다. 이 테라스에서 새로 짠 지붕 목조 구조가 내려다보입니다. 앞서 말한 키메라들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여기입니다.
  • 보물관과 지하 고고학 크립트는 각각 별도 유료입니다.
  • 요금과 개방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자주 바뀌므로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복장이 필요합니다.
  • 미사 시간에는 관광 목적의 입장이 제한됩니다.

가까운 곳에 생트샤펠이 있습니다. 노트르담이 구조의 성취라면 생트샤펠은 유리의 성취입니다. 두 곳을 같은 날 보시기를 권합니다. 루브르도 도보권입니다.

이 건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시간의 층입니다. 12세기의 벽, 19세기의 첨탑과 괴물들, 2024년의 지붕, 그리고 아무도 본 적 없던 흰 돌. 노트르담은 한 시대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시대가 겹쳐 앉은 자리입니다.

이미지: Notre-Dame de Paris.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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