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 야만인이 하지 않은 짓을 바르베리니가 했다
로마 사람들이 아직도 쓰는 말이 있습니다. 콰드 논 페케룬트 바르바리, 페케룬트 바르베리니. 야만인들이 하지 않은 짓을 바르베리니가 했다는 뜻입니다. 1625년,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의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판테온 현관 천장의 청동을 뜯어냈습니다. 그 금속은 산탄젤로 성의 대포 여든 문과, 성 베드로 대성당 주제단 위 베르니니의 청동 천개가 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 건축가: 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대 문헌에도 이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 건설 시기: 벽돌에 찍힌 연도 표시로 볼 때 서기 115~127년 사이. 통상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기로 봅니다
- 구조: 로마 콘크리트, 벽돌, 석재. 현관에 이집트산 화강암 기둥 16개
- 크기: 돔 내부 지름 43.3m, 바닥에서 오쿨루스까지 높이 43.3m, 오쿨루스 지름 약 9m
- 미술 사조: 고대 미술
- 소재지: 이탈리아 로마 로톤다 광장. 현재 가톨릭 성당(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레스)
이 건물이 남아 있는 이유
로마의 다른 신전들이 무너지거나 채석장이 되는 동안 판테온이 살아남은 데는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기 609년에 성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잔틴 황제 포카스가 이 건물을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넘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즉 이 건물은 폐허가 아니라 이천 년 가까이 한 번도 비어 있지 않았던 공간입니다. 다만 그 안에서 예배받는 대상은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벗겨진 것이 많습니다.
- 663년, 콘스탄스 2세 황제가 돔 바깥을 덮고 있던 금박 청동 판을 떼어 갔습니다. 비늘처럼 겹쳐 얹은 그 판들 때문에 판테온은 로마의 스카이라인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지점이었습니다.
- 1625년, 우르바노 8세가 현관 천장의 청동을 가져갔습니다. 앞서 말한 그 일입니다.
- 내부와 외부를 장식하던 대리석, 주두, 조각상도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덧붙이자면, 이탈리아는 나중에 되돌려받았습니다. 이 건물 안에 이탈리아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묘를 만들 때, 산탄젤로 성의 대포 하나를 녹여 장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백오십 년 만에 청동이 제자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돔
이 돔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무근콘크리트 돔입니다. 철근이 들어가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이천 년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능하게 만든 것은 재료의 배합입니다. 로마인들은 화산재를 섞은 포촐라나 콘크리트를 썼고, 높이에 따라 골재를 바꿨습니다. 아래쪽에는 무거운 트래버틴을, 중간에는 응회암을, 꼭대기에는 가벼운 부석을 넣었습니다. 벽 두께도 아래는 6미터 가까이 되고 오쿨루스 주변은 1.2미터 정도로 줄어듭니다.
천장 안쪽의 격자 홈, 카세톤도 장식이 아니라 무게를 덜어내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지름과 높이가 정확히 같습니다. 43.3미터입니다. 이는 이 공간 안에 지름 43.3미터짜리 완전한 구가 정확히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바닥에 서서 위를 보면 천장이 둥근 이유를 몸으로 알게 됩니다.
오쿨루스
천장 한가운데의 지름 약 9미터짜리 구멍입니다. 유리도 덮개도 없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돔의 정점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이 건물의 유일한 광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빛기둥이 벽과 바닥을 따라 천천히 움직입니다. 거대한 해시계처럼요.
비가 오면 그대로 들어옵니다. 바닥은 가운데가 미세하게 볼록하고, 스물두 개의 배수구가 뚫려 있어 물이 즉시 빠집니다. 고대의 배수 시스템이 지금도 작동합니다.
여행 요령이 하나 있습니다. 소나기가 올 때 판테온 안에 있으면, 오쿨루스에서 떨어지는 물기둥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소나기가 잦습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예상되면 그 시간에 맞춰 가시면 됩니다.
매년 4월 21일 정오에는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정문 위쪽을 정확히 비춥니다. 이날은 로마 건국 기념일입니다.
현관의 기둥
정면에 선 열여섯 개의 코린트식 기둥은 각각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를 깎아 만든 것입니다. 무게는 개당 약 60톤이며, 이집트에서 채석해 백 킬로미터를 끌어 나일강까지 옮기고, 바지선으로 강을 내려보내고, 지중해를 건너 오스티아 항구에 내린 뒤, 다시 테베레강을 거슬러 로마까지 끌고 왔습니다.
정면 비문에는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시절에 이것을 지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기원전 27년 아그리파가 이 자리에 처음 신전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건물은 그것이 아니라 백오십 년 뒤에 다시 지은 것인데, 옛 비문을 그대로 남겼습니다.
지은 사람에 대하여
설계자의 이름은 어떤 고대 기록에도 없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직접 관여했으리라는 추정이 많습니다. 그는 건축에 깊이 관심을 가진 통치자였고, 아마추어 건축가로 묘사한 고대 문헌도 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를 거론하는 견해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연대 자체도 문헌이 아니라 물질에서 나왔습니다. 발굴에서 나온 벽돌에 찍힌 연도 표시가 서기 115년에서 127년 사이를 가리킵니다.
유산과 영향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하기 위해 판테온을 직접 연구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건물을 두고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천사의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파리의 팡테옹, 그리고 세계 각지의 신고전주의 건물들이 이 돔의 후손입니다.
다만 십칠 세기에는 훼손도 있었습니다. 우르바노 8세는 청동을 가져간 것 외에 정면 양옆에 종탑 두 개를 세웠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그것을 ‘당나귀 귀’라고 불렀고, 1883년에야 철거되었습니다. 이 종탑은 흔히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 안에는 라파엘로(1483~1520)가 묻혀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을 그린 화가가, 그 벽화의 배경으로 삼았던 고대 로마 건축의 실물 안에 잠들어 있는 셈입니다.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움베르토 1세의 묘도 여기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로마 로톤다 광장에 있습니다. 지하철역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A선 바르베리니 역에서 트레비 분수를 거쳐 도보 십여 분입니다.
- 입장료: 2023년 7월부터 유료입니다. 2026년 기준 성인 5유로, EU 시민 18~25세 2유로, 18세 미만은 국적과 관계없이 무료입니다. 매월 첫째 일요일은 전면 무료이지만 그만큼 줄이 깁니다.
- 개관: 월요일~토요일 9시~19시, 일요일 9시~18시. 마지막 입장은 폐관 30분 전입니다.
- 미사 시간에는 관람이 제한됩니다. 요금과 시간은 바뀔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른 시간이 가장 한산합니다.
도보권에 나보나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있고, 콜로세움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두 건물을 같은 날 보면 로마 건축의 두 갈래 해법이 분명해집니다. 콜로세움은 아치를 반복해 거대한 외피를 만들었고, 판테온은 하나의 돔으로 내부를 통째로 덮었습니다. 하나는 바깥에서 보는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안에 들어가야 하는 건물입니다.
덧붙이자면,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걸린 팔라초 바르베리니는 이 건물의 청동을 가져간 그 가문이 지은 저택입니다. 판테온의 청동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콜로세움의 석재는 그 저택으로 갔습니다. 로마에서 오래된 건물은 새 건물의 재료였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 오래 남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관광객이 가득 차 있어도, 시선이 오쿨루스로 올라가는 순간 소리가 멀어집니다. 이천 년 전 사람들이 계산한 지름과 높이가 같은 공간이,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Pantheon, 로마, 서기 115~127년경.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