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Sphinx of Giza by Unknown, 2500 BC

기자의 대스핑크스

스핑크스의 코를 부순 사람에게는 이름과 날짜가 있습니다. 15세기 역사가 알마크리지의 기록에 따르면, 1378년 수피 성직자 무함마드 사임 알다르가 농민들이 스핑크스 앞에 수확을 비는 공물을 바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해 코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처형되었다고 전합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대포로 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덴마크인 프레데리크 루이 노르덴이 1737년에 그린 스케치에 이미 코가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오기 육십 년 전입니다.

기본 정보

  • 제작: 이름이 전하지 않는 고대 이집트 장인들
  • 제작 시기: 기원전 2500년경, 고왕국 제4왕조
  • 기법: 기자 고원의 석회암 암반을 그 자리에서 깎아낸 조각
  • 크기: 길이 약 73m, 높이 약 20m, 폭 약 19m
  • 미술 사조: 고대 미술
  • 소재지: 이집트 기자 고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멤피스와 그 네크로폴리스’에 포함됩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조각은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기자 고원의 석회암 암반을 파 내려가며 그 자리에서 깎아낸 것입니다. 주변에 파인 도랑이 그 흔적입니다. 재료를 옮겨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형태를 꺼낸 셈입니다.

이집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 조각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히 동쪽을 향합니다. 해가 뜨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카프레입니다. 얼굴이 남아 있는 그의 조각상들과 닮았고, 위치가 그의 피라미드와 참배로에 정확히 맞물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쿠푸를 나타낸다는 견해, 형 제데프레라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습니다. 사천오백 년 동안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인데, 누구의 얼굴인지 모릅니다.

원래 모습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완성된 형태가 아닙니다. 세 가지가 사라졌습니다.

색. 표면에 남은 안료의 흔적으로 보아 스핑크스는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붉은색이 남아 있고, 다른 부분에서 노랑과 파랑의 흔적도 확인됩니다. 전체가 칠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우리가 감탄하는 석회암의 담담한 색은 원래의 인상과 전혀 다릅니다.

수염. 파라오의 의례용 턱수염이 붙어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조각은 런던 대영박물관과 카이로에 나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수염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후대에 덧붙인 것인지는 논쟁 중입니다.

우라에우스. 이마의 코브라 장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코가 더해집니다. 남은 것은 형태뿐이며, 그 형태조차 사천오백 년의 풍화를 거친 상태입니다.

역사적 배경

기원전 2500년 무렵 이집트는 고왕국의 절정기였습니다. 기자 고원에는 이미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서 있었습니다. 스핑크스는 그 옆, 카프레의 피라미드 단지에 속하는 위치에 만들어졌습니다.

제작 도구에 대해 한 가지 정정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시기 이집트에는 청동이 아직 널리 쓰이지 않았습니다. 장인들은 **구리** 끌과 도끼, 그리고 돌레라이트 같은 단단한 돌로 만든 망치를 사용했습니다. 청동은 중왕국에 들어서야 일반화됩니다. 구리 도구로 석회암 수만 톤을 깎아낸 것입니다.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얹은 형상은 왕의 힘과 지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이집트 미술에서 스핑크스는 이후 반복되는 형식이 되었고, 규모에서 이 작품을 넘어선 것은 없습니다.

모래에 묻혀 있던 시간

스핑크스의 역사 대부분은 모래 속에서 지나갔습니다. 사막의 모래는 계속 밀려왔고, 몸통은 반복해서 파묻혔습니다.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발굴은 기원전 1400년경입니다.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앞발 사이에 세운 화강암 석비, 이른바 ‘꿈의 석비’에 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왕자 시절 사냥 중에 스핑크스의 그늘에서 잠들었는데,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자신을 덮은 모래를 치워주면 왕위를 주겠다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석비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고, 관람 데크에서 보입니다.

이후에도 로마 시대를 비롯해 여러 차례 모래를 걷어내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는 카비글리아와 마리에트, 마스페로가 부분적으로 파냈고, 몸통 전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은 1930년대 셀림 하산의 발굴에 이르러서입니다.

복원의 역사는 그 자체로 문제이기도 합니다. 신왕국 시대부터 덧댄 석재가 있고, 20세기에도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980년대의 보수는 부적절한 시멘트를 사용해 오히려 손상을 키웠고, 1988년에는 어깨 부분의 석재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감상 포인트

동쪽 정렬. 스핑크스는 정확히 동쪽을 봅니다. 춘분과 추분에 해가 뜨는 방향입니다. 앞쪽의 스핑크스 신전도 같은 축 위에 있습니다.

몸통의 층위. 몸통을 옆에서 보면 가로로 결이 진 것이 보입니다. 암반의 지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며, 층마다 단단함이 달라 풍화된 정도가 다릅니다. 부드러운 층이 더 깊이 파여 있습니다.

머리와 몸의 보존 차이. 머리는 몸통보다 훨씬 잘 남아 있습니다. 머리를 이루는 암석층이 더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머리와 몸이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질학적으로 설명되는 현상입니다.

빛. 이른 아침, 동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얼굴 정면을 때립니다. 스핑크스가 향하도록 만들어진 방향이 곧 가장 잘 보이는 시간입니다.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조각가의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작품은 왕과 신에게 귀속되었고, 만든 사람의 이름을 남기는 관행이 없었습니다.

다만 기자 고원에서는 이 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마을과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라 임금과 배급을 받는 조직된 노동자였고, 부상 치료의 흔적이 남은 뼈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삶의 조건은 상당 부분 밝혀졌습니다.

유산과 영향

스핑크스 형상은 이집트를 넘어 퍼졌습니다. 그리스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되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날개가 있고 여성이며, 수수께끼를 내고 답하지 못하는 자를 죽입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가 수호자였다면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위협입니다.

19세기 이후 이 형상은 ‘고대의 신비’를 뜻하는 기호가 되었고, 영화와 문학과 상업 건축에서 끝없이 인용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스핑크스가 기원전 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몸통의 풍화가 비에 의한 것이라는 지질학적 해석에 근거한 것인데, 이집트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주변 유적의 연대, 도구 흔적, 채석장에서 나온 석재의 사용 관계가 모두 제4왕조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집트 카이로 인근 기자 고원에 있습니다. 카이로 도심에서 차로 삼사십 분 거리이며, 기자 피라미드 단지 입장권으로 함께 볼 수 있습니다.

  • 개장 직후 이른 아침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이 적고, 스핑크스가 향한 방향에서 빛이 들어옵니다.
  • 여름에는 기온이 사십 도를 넘습니다. 3~4월이나 10~11월을 권합니다.
  • 스핑크스만 보는 데는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인접한 스핑크스 신전과 카프레의 계곡 신전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 같은 단지에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 입장료와 개장 시간은 자주 바뀌므로 방문 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기자 고원 인근에 새로 문을 연 대이집트박물관도 일정에 넣을 만합니다. 운영 상황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이 조각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손실입니다. 코가 없고, 수염이 없고, 이마의 코브라가 없고, 색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원래 얼굴에서 여러 겹을 덜어낸 나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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