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us de Milo by Unknown, 100 BC

밀로의 비너스 – 루브르가 치운 받침대의 비밀

이 조각과 함께 받침대가 발견되었고, 거기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안티오키아 출신 메니데스의 아들이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받침대는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무렵 루브르는 이 조각을 기원전 4세기의 거장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으로 홍보하고 있었고, 받침대의 글귀는 그 주장을 무너뜨리는 증거였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받침대 명문에 근거해 안티오키아의 알렉산드로스로 추정합니다
  • 제작 시기: 기원전 130~100년경 (헬레니즘)
  • 재료: 파로스산 대리석. 두 개의 큰 덩어리를 허리에서 이어 붙였습니다
  • 크기: 높이 약 204cm
  • 발견: 1820년 4월 8일, 에게해 밀로스섬
  • 미술 사조: 고대 미술 – 헬레니즘
  • 소장처: 루브르 박물관, 파리 – 쉴리관 0층 345호실

사라진 받침대

이야기의 배경에는 나폴레옹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각지에서 약탈해 온 미술품들은 그의 몰락 후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중에 피렌체의 『메디치의 비너스』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전적 여성미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작품입니다. 루브르는 그것을 잃었고, 대신할 것이 필요했습니다.

1820년 밀로스에서 이 조각이 발견되어 이듬해 루브르에 들어왔을 때, 박물관은 이것을 기원전 4세기 그리스 고전기의 거장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래야 메디치의 비너스를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함께 발견된 받침대였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명문이 있었습니다. 마이안드로스 강가 안티오키아 출신 메니데스의 아들 …안드로스가 만들었다. 복원하면 ‘안티오키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됩니다. 그는 헬레니즘 시대, 즉 프락시텔레스보다 이백 년 이상 뒤의 조각가입니다.

그 받침대는 1820년대에 사라졌습니다. 영어권 백과사전은 이를 완곡하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박물관의 정치와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제거되고 ‘분실’되었다고 적습니다.

오늘날 학계는 이 조각을 헬레니즘 작품으로 봅니다. 루브르가 지웠던 증거가 결국 맞았던 셈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팔이 없다는 사실이 이 조각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19세기에 실제로 팔을 복원해 붙인 적이 있는데, 결국 떼어냈습니다. 불완전한 형태가 더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팔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발견된 파편 중에 사과를 쥔 손이 있었습니다. 사과라면 파리스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세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주어진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가 받은 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사과는 ‘멜론’인데, 이 섬의 이름이 멜로스입니다. 말장난이 겹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물이 아프로디테가 맞는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밀로스에서 특별히 숭배되던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라는 설, 승리의 여신이라는 설이 함께 제기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

금속 장신구. 귀와 손목, 머리 부분에 고정용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이 조각은 원래 머리띠와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청동이었을 것이고,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색. 다른 고대 조각들과 마찬가지로 채색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의 순백은 원래 모습이 아니라 남은 것입니다.

이어 붙인 자국. 이 조각은 하나의 돌덩어리가 아닙니다. 상체와 하체를 따로 깎아 허리에서 이었고, 그 접합선은 옷 주름 속에 감춰져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 어깨에는 팔을 따로 만들어 끼운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헬레니즘 조각의 표준적인 제작 방식입니다.

감상 포인트

비스듬히 서서 보십시오.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반대쪽 골반을 올린 자세, 콘트라포스토입니다. 정면보다 살짝 옆에서 볼 때 몸을 관통하는 S자 곡선이 드러납니다.

상하의 대비. 상반신은 매끈하게 마감되어 있고, 하반신을 덮은 천은 깊고 거칠게 파여 있습니다. 이 대비 때문에 살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대리석의 질감을 두 가지로 나눠 쓴 것입니다.

표정. 고요하고 감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이 무표정이 헬레니즘 후기 조각이 고전기의 이상을 되돌아본 흔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발견과 반출

1820년 4월 8일, 밀로스섬의 요르고스 켄트로타스라는 농부가 밭에서 돌을 캐다가 이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헤르메스와 헤라클레스에게 바쳐진 김나시온 유적의 벽감 안이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프랑스 해군 장교 올리비에 부티에가 이를 알아보았고, 프랑스 측은 천 프랑에 이 조각을 확보했습니다. 리비에르 후작이 루이 18세에게 바쳤고, 왕은 1821년 3월 루브르에 기증했습니다.

발굴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프랑스 측 사이에 분쟁이 있었고, 그 혼란 속에서 팔은 끝내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조각은 19세기 이후 서양에서 여성미의 기준으로 소비되었습니다. 시가 칠십 편 이상 쓰였고, 사진과 석고 복제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20세기에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이 이미지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몸에 서랍을 붙인 『서랍 달린 밀로의 비너스』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둘 만합니다. 대중적 인기와 달리 학계의 평가는 훨씬 냉정합니다. 이 작품이 헬레니즘 조각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명성의 상당 부분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1820년대 파리에서 이 조각이 놓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정확한 위치를 알아두시면 시간을 아낍니다. 루브르 쉴리관 0층 345호실입니다. 이 방은 ‘밀로의 비너스 실’이라 불리며 사실상 이 작품 하나를 위한 공간입니다. 2010년부터 여기 있는데, 공교롭게도 1822년에 처음 전시되었던 바로 그 방입니다.

드농관이 아닙니다. 다만 다뤼 계단에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본 뒤 카리아티드의 방 쪽으로 넘어가면 곧 도착합니다. 두 조각을 이어서 보시면 됩니다.

  • 휴관일은 화요일입니다.
  • 2026년 1월부터 비유럽연합 국가 방문객의 입장료가 인상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신다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요금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온라인 사전 예매를 권하며, 개관 직후나 야간 개장 시간대가 한산합니다.
  • 유리 케이스가 없어 사방에서 돌아가며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옆과 뒤에서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조각은 정면 관람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 플래시 없는 촬영이 가능합니다.

한 가지 정정할 점이 있습니다. 『라오콘 군상』은 루브르에 없습니다. 바티칸 박물관 소장입니다. 루브르에서 함께 볼 만한 고대 조각으로는 같은 구역의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 그리고 드농관의 회화 쪽으로 넘어가는 동선을 권합니다.

이 조각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백입니다. 팔이 없고, 장신구가 없고, 색이 없고, 만든 사람의 이름이 적힌 돌이 없습니다. 마지막 것만은 시간이 지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치웠습니다.

이미지: Vénus de Milo, 기원전 130~100년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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