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I
오른쪽 위 벽에 걸린 4×4 마방진은 장식이 아니라 처방입니다. 르네상스의 점성술 전통에서 4차 마방진은 목성의 것이었고, 우울은 토성이 다스리는 상태였습니다. 목성의 쾌활함이 토성의 어둠을 눌러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뒤러는 우울을 그린 화면 안에 그 우울을 막는 부적을 걸어두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34가 되는 이 숫자판의 맨 아랫줄 가운데에는 15와 14, 곧 제작 연도가 들어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 제작 연도: 1514년
- 기법: 동판화 (인그레이빙)
- 화면 크기: 약 24 × 18.8 cm (개별 판본마다 종이 재단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 미술 사조: 북방 르네상스 (Northern Renaissance)
- 소장: 판화이므로 단일 소장처가 없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영박물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 여러 기관이 판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먼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원본이 걸려 있는 미술관’이 없습니다. 뒤러가 새긴 것은 구리판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그 판으로 찍은 종이입니다. 메트로폴리탄만 해도 서로 다른 시기에 들어온 판본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고, 대영박물관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도 판본이 있습니다. 판이 닳으면서 후기 인쇄본은 선이 무뎌지기 때문에, 같은 작품이라도 판본에 따라 인상이 다릅니다.
이 작품이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판화로 불리는 이유는 해석이 닫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 사물들은 저마다 뜻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 더해도 하나의 문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5백 년 동안 철학자와 수학자와 미술사가가 이 한 장을 놓고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고, 그 목록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A4 용지보다 작은 화면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옷 주름, 금속의 반짝임, 다면체의 면과 면 사이의 미묘한 밝기 차이가 오직 새긴 선의 굵기와 간격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역사적 배경
중세와 르네상스의 체액설에서 인간은 네 가지 체액 가운데 하나에 지배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중 검은 담즙에 해당하는 우울질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기질로 꼽혔고, 우울질인 사람은 광기에 빠지기 쉽다고 보았습니다. 우울을 관장하는 별은 토성이었으며, 토성은 돌과 나무를 다루는 일, 농사, 그리고 기하학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에 들어 이 부정적인 기질이 다시 읽혔습니다. 창조적 천재성이 우울질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퍼진 것입니다. 뒤러가 다룬 것은 바로 이 두 겹의 우울, 곧 병이면서 동시에 재능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예술가가 처한 지적 상황의 초상이자, 나아가 뒤러 자신의 정신적 자화상으로 읽힙니다.
제작 연도인 1514년은 유럽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3년 뒤의 일이었고, 인문주의는 독일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으며, 뒤러는 그 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같은 해 5월 그는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일부 연구자는 이 작품에 그 상실이 스며 있다고 봅니다.
이 작품은 1513년과 1514년에 나온 비슷한 크기의 대형 동판화 세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와 함께 19세기 이후 ‘거장 판화(Meisterstiche)’로 불려 왔습니다. 뒤러가 연작으로 기획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세 작품이 중세 스콜라 철학의 세 가지 덕, 곧 도덕적·신학적·지적 덕에 각각 대응한다는 해석이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중앙의 날개 달린 여성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턱을 괴고 먼 곳을 응시하는 이 인물이 우울의 의인화입니다. 얼굴은 그늘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컴퍼스입니다. 기하학, 곧 일곱 자유학예 가운데 예술 창작의 토대가 되는 학문의 도구입니다. 이 인물은 도구를 놓친 것이 아니라 쥔 채로 멈춰 있습니다.
주변에는 대패, 톱, 망치, 못, 자, 도가니, 집게가 흩어져 있고, 벽에는 모래시계와 저울과 종이 걸려 있습니다. 저울은 비어 있고, 모래는 떨어지는 중이며, 도구들은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능력과 재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그것이 이 화면의 주제입니다.
발치에는 개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습니다.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말랐습니다. 개는 예민한 감각과 충직함의 상징이었지만 여기서는 굶주린 채 잠들어 있습니다. 옆의 맷돌 위에는 푸토가 걸터앉아 서판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습니다. 어른은 멈췄고 아이는 아직 쓰고 있습니다.
인물의 허리춤에는 열쇠 꾸러미와 지갑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뒤러 본인이 남긴 메모가 있습니다. 열쇠는 권력을, 지갑은 부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 판화에서 작가가 직접 뜻을 밝힌 사물은 이것뿐입니다.
화면 왼쪽의 기묘한 입체는 ‘뒤러의 다면체’라 불리는 잘린 능면체입니다. 정확한 각도를 두고 수학자들이 오래 논쟁해 왔고, 표면에 희미한 해골이 보인다는 지적도 있어 왔습니다. 그 뒤로 사다리가 화면 밖으로 뻗어 나가는데, 어디에도 닿지 않습니다.
상단에서는 박쥐를 닮은 생물이 ‘MELENCOLIA § I’이라 적힌 띠를 물고 날아갑니다. 그 너머 바다 위로는 혜성이 떠 있고 무지개가 걸려 있습니다. 재난의 징조와 화해의 징조가 한 하늘에 나란히 있습니다.
제목의 ‘I’에 대해서는 결론이 없습니다. 아그리파가 정리한 우울의 세 단계 가운데 첫 단계, 곧 상상력에 지배되는 예술가의 우울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후속작을 염두에 둔 번호였다는 설도 남아 있습니다. 뒤러는 이 주제로 다른 판화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에 대하여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뉘른베르크에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공방에서 익힌 금속을 다루는 감각은 훗날 그의 동판화 기술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두 차례 이탈리아를 여행했고(1494~95년, 1505~07년), 주로 베네치아에 머물며 조반니 벨리니를 비롯한 화가들과 교류했습니다.
뒤러는 목판화와 동판화를 회화에 뒤지지 않는 표현 매체로 끌어올렸습니다. 판화는 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성과를 북유럽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자화상을 독립된 예술적 주제로 세운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멜랑콜리아 I』은 그의 작업 가운데 가장 지적으로 야심 찬 시도로 평가됩니다.
유산과 영향
18~19세기 낭만주의는 이 판화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천재와 우울을 하나로 묶어 보는 시선이 그 시대의 자기 이해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홀로 선 인물이 낭만주의의 대표 이미지가 된 흐름과 이 판화의 재발견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20세기에는 발터 베냐민이 독일 비애극 연구에서 이 작품을 알레고리 이론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대중문화에서도 마방진은 반복해서 인용되며, 댄 브라운의 소설에도 등장합니다. 오늘날 ‘멜랑콜리’라는 단어가 갖는 문화적 무게의 상당 부분이 이 한 장의 판화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판화이므로 여러 미술관에서 볼 수 있지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종이 작품은 빛에 약해 상설 전시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경우 소묘·판화부 소장품이며, 전시 여부는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방문 전에 해당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에서 작품 번호로 검색해 현재 전시 중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영박물관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도 판본이 있습니다. 어느 기관이든 사전 예약을 하면 판화 열람실에서 실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진지하게 보고 싶다면 전시를 기다리기보다 열람 신청이 빠른 길일 수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을 찾는다면 센트럴파크 동쪽, 지하철 4·5·6호선 86번가 역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같은 미술관의 북방 르네상스 회화 구역에서 한스 홀바인과 루카스 크라나흐를 함께 보면, 뒤러가 어떤 세계 안에서 작업했는지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이 판화 앞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우울한 표정이 아니라 정지 상태입니다. 도구는 다 있고, 지식도 다 있고, 벽에는 우울을 막는 부적까지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뒤러가 그린 것은 슬픔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이미지: Melencolia I – Albrecht Dürer (1514).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