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사냥꾼들
가장 좋은 농담은 그림 왼쪽 끝에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지나치는 여관의 간판은 한쪽 고리가 빠져 비뚜름하게 걸려 있고, 거기 그려진 것은 사슴, 곧 사냥꾼의 수호성인 성 후베르투스입니다. 그 간판 아래로 세 명의 사냥꾼이 여우 한 마리만 메고 돌아옵니다. 브뤼헐은 겨울의 가혹함을 비장하게 그리는 대신, 실패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머리 위에 삐뚤어진 수호성인을 걸어두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Pieter Bruegel the Elder)
- 제작 연도: 1565년
- 기법: 오크 패널에 유채
- 크기: 117 × 162 cm
- 미술 사조: 북방 르네상스 (Northern Renaissance)
- 소장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회화관 브뤼헐 전시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힘은 구성에서 나옵니다. 세 명의 사냥꾼과 개들이 화면 왼쪽 아래 모서리로 들어와 언덕을 내려가고, 땅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떨어집니다. 전경을 지나면 지형이 급격히 꺼지고, 얼어붙은 계곡이 펼쳐지다가 멀리 뾰족한 산줄기에서 멈춥니다. 우리는 사냥꾼들의 등 뒤에 서서 같은 방향을 봅니다. 앞선 나무들이 시선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을 그렸는가에 있습니다. 당시 대형 회화는 대개 신화나 종교, 혹은 후원자의 초상이었습니다. 브뤼헐은 그 크기의 화면을 눈 덮인 마을에 내주었습니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컬링과 비슷한 놀이를 하는 무리, 썰매를 끌어주는 사람들, 물레방아, 다리, 굴뚝에서 오르는 연기가 화면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과 자연이 위계 없이 같은 평면에 놓입니다.
역사적 배경
이 그림은 안트베르펜의 상인이자 은행가 니콜라스 용헬링크의 주문으로 그려졌습니다. 앞서 『바벨탑』을 주문한 바로 그 후원자입니다. 그는 브뤼헐의 작품을 열여섯 점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중세 달력 삽화의 전통을 잇는 『달의 노동』 연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연작은 여섯 점으로, 각 화면이 대략 두 달씩을 담당했습니다. 오늘날 다섯 점이 전합니다. 『눈 속의 사냥꾼들』은 12월과 1월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판단은 추정이 아니라 화면 안의 증거에서 나옵니다. 왼쪽 여관 앞에서 사람들이 잡은 돼지의 털을 불로 그슬리고 있는데, 이는 12월의 전형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용헬링크는 훗날 이 연작을 안트베르펜 시에 넘겨야 했고, 시에서 다시 오스트리아의 에르네스트 대공에게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수집품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남은 다섯 점 가운데 세 점이 빈 미술사 박물관에, 한 점은 프라하 국립미술관에, 한 점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습니다.
1565년이라는 해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무렵 북유럽에는 이른바 소빙기의 혹독한 겨울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강과 운하가 얼어붙는 것은 상상이 아니라 매년 겪는 일이었습니다. 그림 속 두꺼운 눈과 단단하게 언 연못은 관찰의 결과입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사냥꾼들과 개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깨가 처져 있고 걸음이 무겁습니다. 개들은 마르고 갈비뼈가 드러나며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성과는 한 명이 어깨에 걸친 여우 한 마리뿐입니다. 그리고 맨 앞 사냥꾼 앞쪽 눈밭에는 토끼가 지나간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놓친 사냥감이 더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은 여관 앞의 불입니다. 여관의 붉은 벽돌과 노란 불꽃은 흰색과 회색, 잿빛 푸른색이 지배하는 화면에서 유일하게 온도를 가진 부분입니다. 그 불은 장식이 아니라 노동입니다. 사람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돼지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사냥은 실패했지만 마을은 다른 방식으로 겨울을 준비합니다.
여관 간판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쪽 고리가 빠져 기울어진 채 걸린 이 간판에는 사슴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냥꾼의 수호성인 성 후베르투스를 가리킵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냥꾼들 위에 걸린 비뚤어진 수호성인은 브뤼헐다운 조용한 아이러니입니다.
색채도 감상의 축입니다. 화면은 거의 단색에 가깝습니다. 흰 눈과 회청색 하늘, 그 사이를 가르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검은 실루엣, 그리고 가지에 앉거나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이 절제된 팔레트가 오히려 화면에 시적인 정적을 만듭니다. 그 정적 속에서 저 멀리 얼음판 위 작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이 그림이 쓸쓸함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배경의 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플랑드르는 유럽에서 가장 평평한 땅입니다. 그런 곳에 이런 봉우리는 없습니다. 브뤼헐은 1550년대 초 이탈리아를 오가며 알프스를 그렸고, 그 기억을 평야 풍경 뒤에 세웠습니다. 이 계곡은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조립된 세계입니다.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에 대하여
브뤼헐은 1525년에서 15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생지는 확정되지 않았고, 브레다 인근이라는 설과 안트베르펜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판화 출판업자 히에로니뮈스 코크와 협업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탈리아를 오가는 길에 본 알프스는 이후 그의 풍경화 전체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농민 브뤼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실제로 그는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의 지식인들과 교류한 교양 있는 화가였습니다. 1569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 살 안팎이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북유럽에서 풍경화는 독립된 장르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시도서의 달력 삽화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브뤼헐의 『달의 노동』 연작은 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겨울 풍경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이어받은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영화가 이 그림을 불러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1972년 『솔라리스』에서 이 작품을 화면에 직접 담았습니다. 우주정거장이라는 가장 낯선 공간에서 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로 선택된 것이 하필 이 겨울 풍경이었다는 점은, 이 그림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 박물관 회화관에 있습니다. 브뤼헐 전시실에는 이 그림 외에도 『바벨탑』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함께 걸려 있고, 같은 연작에 속한 다른 두 점도 이 미술관에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브뤼헐의 계절이 세 번 지나가는 셈입니다.
미술관은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있고, 지하철 U2와 U3 폴크스테아터 역 또는 U2 무제움스크바르티어 역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개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목요일은 오후 9시까지입니다. 휴관일은 월요일입니다. 다만 6월부터 8월까지는 월요일에도 문을 엽니다. 19세 미만은 무료이고 성인 입장료는 20유로대이며, 온라인 구매가 현장보다 저렴합니다. 요금과 휴관일은 바뀌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개관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이 그림은 크기가 상당해서, 도판으로 볼 때와 실물 앞에 설 때의 인상이 크게 다릅니다. 멀리서 전체 구도를 본 뒤 가까이 다가가 얼음판 위의 사람들을 하나씩 세어보는 순서를 권합니다.
이 그림이 오래 남는 이유는 겨울이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사냥은 실패했고, 개들은 굶주렸고, 수호성인의 간판은 비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을은 돌아갑니다. 누군가는 돼지를 손질하고, 누군가는 얼음 위에서 놉니다. 브뤼헐이 그린 것은 겨울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겨울 안에서 계속되는 일상입니다.
이미지: The Hunters in the Snow – Pieter Bruegel the Elder (1565).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