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브뤼헐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장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탑은 이미 실패한 건물입니다. 어느 층도 수평이 맞지 않고, 아치는 기울어진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으며, 일부는 벌써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래층 기초가 끝나기도 전에 위층이 올라갔습니다. 신이 언어를 흩어놓기 전에, 이 탑은 스스로 무너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Pieter Bruegel the Elder)
- 제작 연도: 1563년
- 기법: 오크 패널에 유채
- 크기: 114 × 155 cm
- 미술 사조: 북방 르네상스 (Northern Renaissance)
- 소장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회화관 소장번호 GG 1026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브뤼헐은 이 주제를 세 번 그렸습니다. 가장 이른 것은 로마 체류 중이던 1552~53년에 상아 위에 그린 소품으로, 지금은 사라졌고 세밀화가 줄리오 클로비오의 소장 목록에만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가 1563년 빈의 이 작품이고, 세 번째는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의 더 작은 판본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로테르담 판본을 빈 작품보다 나중으로 봅니다. X선 조사에서 로테르담 탑이 처음에는 빈 탑과 훨씬 비슷했다가 작업 도중에 바뀐 흔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는 성경 이야기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짐을 사건이 아니라 상태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화면 어디에도 재앙은 없습니다. 크레인이 돌아가고, 벽돌이 올라가고, 배가 항구에 들어옵니다. 실패는 이미 구조 안에 들어 있습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서 석공들의 절을 받는 인물은 성경 속 니므롯 왕으로 해석됩니다. 그 앞에 놓인 돌덩이에 브뤼헐의 서명이 있습니다. BRVEGEL.FE.M.CCCCC.LXIII. 화가는 자기 이름을 왕의 발치, 곧 이 헛된 사업의 주춧돌 위에 새겼습니다.
역사적 배경
이 그림은 안트베르펜의 은행가 니콜라스 용헬링크를 위해 그려졌습니다. 그는 브뤼헐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로, 화가의 작품을 열여섯 점이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566년 그림은 안트베르펜 시의 소유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며, 이후 루돌프 2세의 수집품에 들어가면서 오늘날 빈에 이르는 경로를 밟았습니다.
1563년의 유럽은 격동기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지배 아래 놓인 플랑드르는 정치적으로 팽팽했습니다. 안트베르펜은 유럽 최대의 상업 도시로 급성장하는 중이었습니다. 언어가 뒤섞인 탑이라는 소재에는 당대의 맥락이 겹칩니다. 라틴어로만 전례를 치르던 가톨릭 교회와, 각자의 언어로 성경을 읽으려던 신교 사이의 긴장입니다. 여러 언어를 나란히 실은 안트베르펜의 다국어 성경 출판 사업도 같은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브뤼헐은 1552~53년 로마에 머물렀습니다. 탑의 아치와 로마식 공법이 콜로세움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벽돌 골조 위에 석재를 붙이는 방식은 콜로세움을 비롯한 로마 대형 건축의 전형입니다. 다만 그가 현장에서 콜로세움을 스케치했다는 이야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브뤼헐의 회화 중 어떤 작품에 대해서도 준비 스케치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더 분명한 경로는 판화입니다.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뒤 그는 자신의 판화를 출판하던 히에로니뮈스 코크가 펴낸 로마 명소 연작을 참고할 수 있었고, 실제로 코크 판화의 세부가 두 점의 바벨탑 모두에 들어가 있습니다.
로마와 바빌론을 겹쳐 보는 시선은 당대에 특별한 무게가 있었습니다. 영원하도록 지어진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이 세우는 모든 것의 덧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읽혔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탑 전체의 구조를 보시기 바랍니다. 언뜻 동심원 기둥이 규칙적으로 쌓인 듯 보이지만, 어느 층도 수평이 아닙니다. 탑은 나선을 그리며 올라갑니다. 그리고 일꾼들은 아치를 기울어진 지면에 대해 수직으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아치는 서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몇몇은 이미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래층 기초와 하부가 완성되기 전에 위층 공사가 시작된 흔적도 보입니다.
탑이 자연 지형을 삼키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빈의 탑은 가파른 작은 산을 감싸며 지어졌습니다. 건축물 사이로 바위산이 삐져나온 부분이 지면 가까운 중앙과, 오른쪽 위쪽에서 확인됩니다. 건물이 아니라 산을 깎아내며 자라나는 무언가에 가깝습니다.
탑의 표면에서는 완성된 층과 공사 중인 층이 뒤섞입니다. 브뤼헐은 도르래, 크레인, 발판, 채석과 운반 과정을 백과사전처럼 정확하게 그렸습니다. 그가 이런 공정을 이토록 잘 알았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중단된 그의 마지막 주문은 브뤼셀과 안트베르펜을 잇는 운하 굴착 공사를 기록하는 연작이었습니다.
색채의 대비도 의미를 만듭니다. 탑의 상부는 구름과 안개에 잠겨 흐릿하고, 하부는 따뜻한 황토색과 붉은색으로 또렷합니다. 도달할 수 없는 영역과 발 딛고 선 현실의 경계입니다.
배경에는 항구 도시가 펼쳐집니다. 플랑드르 도시처럼 보이는 이 풍경은 탑의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이자, 이 이야기가 먼 옛날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브뤼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교만에 대한 징벌의 사례로 읽혔습니다. 브뤼헐이 남긴 구약 소재 회화는 이 작품과 『사울의 자결』 둘뿐이며, 두 작품 모두 같은 교훈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다만 이 그림에는 교훈이 하나 더 겹칩니다. 기술자와 석공과 인부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가리키는 것, 곧 인간의 수고 대부분이 헛되다는 감각입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도 니므롯의 탑을 그런 뜻으로 끌어다 썼습니다.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에 대하여
브뤼헐은 1525년에서 15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출생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브뢰헐 마을이라는 설과 안트베르펜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그는 안트베르펜에서 수련했고, 이탈리아를 다녀온 뒤 그곳에서 화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는 농민의 일상, 계절의 변화, 성경의 장면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농부의 춤』이나 『눈 속의 사냥꾼들』 같은 작품은 모두 인간 삶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를 단순히 ‘농민 화가’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대의 인문주의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그 사유를 화면 안에 옮긴 화가였습니다.
1569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아들 피터르 브뤼헐 더 용어와 얀 브뤼헐 더 아우더 역시 화가가 되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갔습니다.
유산과 영향
브뤼헐의 바벨탑 구도는 이 주제를 다룬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모사되고 변주된 원형이 되었습니다. 동시대 화가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도 1560년대와 그 이후에 같은 주제를 여러 차례 그렸고, 16~17세기에는 바벨탑 그림 자체가 하나의 장르를 이루었습니다.
현대에도 이 이미지는 계속 인용됩니다. 인간의 오만과 문명의 붕괴를 다루는 이야기라면 영화든 게임이든 문학이든 어김없이 이 나선형 탑의 실루엣이 등장합니다. 460년 전에 그려진 건축물이 여전히 ‘실패할 것을 알면서 짓는 일’의 시각적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 박물관 회화관에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브뤼헐 작품을 열두 점 소장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그의 유화가 마흔다섯 점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브뤼헐 컬렉션입니다. 이 그림 하나만 보고 나오기에는 아까운 곳입니다.
미술관은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있고, 지하철 U2와 U3 폴크스테아터 역 또는 U2 무제움스크바르티어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개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목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엽니다. 월요일은 휴관이지만 6~8월에는 월요일에도 문을 엽니다. 19세 미만은 무료이고, 성인 입장료는 20유로대이며 온라인 구매가 현장 구매보다 저렴합니다. 요금과 휴관일은 바뀌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바로 맞은편에 자연사 박물관이 마주 보고 서 있어, 두 곳을 하루에 묶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가장 오래 붙들리는 것은 탑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 없는 성실함입니다. 아무도 이 일이 실패할 것을 모릅니다. 브뤼헐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재앙이 아니라 평범한 작업 현장으로 그렸습니다.
이미지: The Tower of Babel – Pieter Bruegel the Elder (1563).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