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창조 – 미켈란젤로는 누워서 그리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이 장면을 열엿새 만에 그렸습니다. 프레스코는 젖은 회반죽 위에 그리는 기법이라 하루에 칠할 만큼씩 구획을 나누는데, 이것을 조르나타라고 합니다. 『아담의 창조』는 열여섯 개의 조르나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신과 주변 천사들을 그리고, 그다음에 아담을 그렸습니다. 지금도 화면에는 그 구획들의 이음매가 남아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 제작 시기: 1511년경. 천장화 전체는 1508~1512년
- 기법: 프레스코, 열여섯 조르나타
- 크기: 약 280 × 570 cm
- 미술 사조: 르네상스
- 소재지: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 천장 중앙부 아홉 장면 가운데 하나
가장 널리 퍼진 오해
미켈란젤로가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서서 그렸습니다. 브라만테가 제안한 매달린 비계를 거절하고 직접 설계한 발판 위에서, 바닥에서 이십 미터 높이에, 고개를 뒤로 젖힌 자세로 작업했습니다.
증거는 그 자신이 남겼습니다. 1509년 무렵 친구 조반니 다 피스토이아에게 보낸 소네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목에 혹이 났고, 배가 턱 밑까지 밀려 올라왔고, 수염이 하늘을 향하고, 등뼈가 활처럼 휘었다고. 그리고 결정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머리 위에 든 붓에서 물감이 계속 떨어져 얼굴을 모자이크 바닥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누워서 그렸다면 물감이 얼굴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소네트에는 그가 직접 그린 삽화가 붙어 있는데, 서서 팔을 위로 뻗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워서 그렸다는 이야기는 1961년 어빙 스톤의 소설과 1965년 영화 『고통과 환희』에서 퍼진 것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핵심은 닿지 않은 두 손가락입니다. 신의 손가락은 뻗어 있고 아담의 손가락은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의 몇 센티미터가 이 그림의 전부입니다. 생명이 아직 건너가지 않은 상태, 곧 일어날 일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사이입니다.
구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중세 미술에서 신은 인간보다 크고 압도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여기서 두 존재는 거의 같은 크기, 거의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의 구절, 곧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는 문장을 시각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둘 만합니다. 이 장면은 천장의 한가운데가 아닙니다. 아홉 개 패널의 정중앙에 놓인 것은 『이브의 창조』입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두 인물의 대비. 왼쪽의 아담은 바위에 기대어 있고 몸에 힘이 없습니다. 오른쪽의 신은 붉은 망토에 감싸여 천사들과 함께 날아옵니다. 한쪽은 정적이고 한쪽은 동적입니다.
망토의 형태. 신과 천사들을 감싼 붉은 형태가 인간 뇌의 시상단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1990년 미국의 외과의사 프랭크 린 메쉬버거가 의학 학술지 『JAMA』에 발표한 해석입니다. 그는 망토의 외곽선을 뇌의 측면 윤곽에, 아래로 흐르는 띠를 뇌저동맥에, 초록색 스카프를 척추동맥에 대응시켰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신 해부를 통해 인체를 연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형태가 의도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궁과 태반 형태로 읽는 해석도 함께 제기되어 있습니다.
신의 왼팔 아래. 젊은 여성이 신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이브로 보는 견해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며, 성모 마리아이고 신의 손가락 아래 아이가 그리스도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아담의 오른팔. 손가락이 아래로 처져 있습니다. 그는 손을 뻗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팔을 들어 올릴 힘이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능동은 신 쪽에만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을 맡겼습니다. 그는 이 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조각가로 여겼고 프레스코 경험도 많지 않았습니다. 브라만테와 라파엘로가 그가 실패하기를 바라며 교황에게 이 일을 맡기도록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원래 주문은 열두 사도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를 창세기 아홉 장면과 예언자, 무녀, 누드 인물상을 포함한 훨씬 방대한 구성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등장인물은 삼백 명이 넘습니다.
사 년의 작업 끝에 천장은 1512년 10월 31일에 공개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완성되지 않은 이 천장을 어떻게든 보았고, 충격을 받아 자기 벽화에 인물을 하나 더 넣었습니다.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한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미켈란젤로에 대하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카프레세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들어갔고,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성장했습니다.
『피에타』와 『다비드』로 이미 조각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상태에서 이 천장화를 맡았습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쓴 표현은 언제나 조각가였습니다.
1564년, 여든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보는 색은 사십 년 된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이 천장은 촛불 그을음과 과거 보수에 쓰인 아교로 덮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알던 미켈란젤로의 색은 어둡고 침침했습니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었습니다. 비용은 일본 니혼TV가 부담했습니다. 세척 결과 드러난 색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밝은 분홍, 연두, 주황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논쟁이 일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때를 벗기면서 미켈란젤로가 마지막에 얹은 마무리 층까지 함께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복원 비용을 댄 니혼TV와 맺은 영상 사용권 계약 때문입니다.
유산과 영향
거의 맞닿은 두 손가락은 오늘날 하나의 시각적 관용구가 되었습니다. 광고, 영화 포스터, 문신, 인터넷 밈에서 끝없이 변주됩니다. 1982년 영화 『E.T.』의 포스터도 그중 하나입니다.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르네상스의 독법에서는 신과 인간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장면이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아담이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장면으로 읽는 시각도 나타났습니다.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 해석 모두를 허용합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바티칸 박물관 관람 동선의 마지막에 시스티나 예배당이 있습니다. 별도 입장은 불가능하며 박물관 티켓에 포함됩니다.
- 온라인 사전 예약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현장 대기는 몇 시간에 이를 수 있습니다.
- 개관 직후나 늦은 오후가 그나마 한산합니다.
-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복장이 필요합니다.
-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계약 때문이며, 경비원이 수시로 제지합니다. 동시에 정숙을 요구하는 안내가 몇 분에 한 번씩 나옵니다. 조용한 명상 공간을 기대하고 가시면 어긋납니다.
- 목이 아픕니다. 벽면 벤치에 자리가 나면 앉아서 올려다보시기 바랍니다.
- 이 장면 하나만 보고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홉 개 패널과 제단 벽의 『최후의 심판』이 함께 있습니다.
같은 박물관 안에 라파엘로의 방들이 있습니다. 동선상 시스티나 예배당보다 먼저 지나가게 되어 있으므로, 『아테네 학당』을 먼저 보고 이곳에 오면 두 벽화가 같은 시기 같은 건물에서 경쟁하며 그려졌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간격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창조된 순간이 아니라 창조되기 직전을 골랐습니다. 아담의 손가락은 아직 힘이 없고, 신의 손가락은 아직 닿지 않았습니다. 오백 년 동안 그 몇 센티미터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Creazione di Adamo – 미켈란젤로, 1511년경, 시스티나 예배당.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