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
인왕산은 흰 화강암 산입니다. 그런데 정선은 그 산을 거의 검게 그렸습니다. 대신 안개와 소나무는 종이의 흰 바탕을 그대로 남겨 표현했습니다. 비에 젖은 화강암이 어두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반전은 관찰이 아니라 결정입니다. 흰 것을 검게, 검은 것을 희게 뒤집자 오히려 비 갠 인왕산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겸재 정선 (鄭敾, 1676~1759)
- 제작 연도: 1751년(영조 27), 정선 76세
- 기법: 종이에 수묵
- 크기: 세로 79.2cm × 가로 138.2cm – 정선의 현존작 400여 점 가운데 가장 큰 작품
- 미술 사조: 조선 회화 – 진경산수화
- 지정: 1984년 8월 6일 국보 지정 (옛 지정번호 제216호)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 2021년 기증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제목의 ‘제(霽)’는 비가 갠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은 산이 아니라 특정한 날의 날씨를 그린 것입니다.
그 증거가 화면 안에 있습니다. 산 중턱에서 세 줄기 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인왕산에는 원래 폭포가 없습니다. 일주일 넘게 퍼부은 장맛비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물줄기입니다. 산허리를 감고 위로 번져 가는 물안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선이 붙잡은 것은 몇 시간 뒤면 사라질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색을 뒤집었습니다. 실제 인왕산 바위는 흰빛에 가깝습니다. 정선은 담묵에서 농묵까지 먹을 반복해서 덧칠해 그 바위를 검푸른 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암벽의 중량감을 전달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반대로 안개와 소나무는 칠하지 않고 종이를 비워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에서 가장 밝은 것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부분입니다.
역사적 배경
1751년은 영조 27년, 탕평책으로 정치가 안정되고 문화가 융성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회화에서는 여전히 중국 남종화의 관념적인 산수가 주류였습니다. 산을 그린다는 것은 대개 가 본 적 없는 중국의 산을 그린다는 뜻이었습니다.
정선은 여기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조선의 경관을 직접 보고 그리되, 사진처럼 옮기지 않고 자기 해석을 넣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진경산수입니다. 금강산, 한강 일대, 그리고 서울 근교가 그의 주된 소재가 되었습니다.
인왕산은 그에게 특별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평생 그 근처에 살았습니다. 매일 보던 산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다른 진경 작품과 다른 밀도를 갖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림 속의 집을 둘러싼 이야기
화면 오른쪽 아래, 소나무 숲에 기와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 집이 누구의 집인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정선의 평생지기였던 시인 이병연(1671~1751)의 집이라는 설입니다. 두 사람은 인왕산 자락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고, 시를 보내면 그림으로 답하는 사이였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정선은 위중한 친구가 장맛비 개듯 낫기를 바라며 그의 집을 화면에 넣었습니다. 이병연은 이 그림이 그려지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이것은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정선의 외조부 박자진의 집이라는 설, 그에게 자주 그림을 주문하던 이춘제의 집이라는 설, 그리고 정선 자신의 집이라는 설이 함께 제기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그림에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 그 작은 집 한 채 때문에 사람의 기척이 남습니다.
감상 포인트
위에서부터 보십시오. 화면 상층부를 인왕산 암봉이 가득 채웁니다. 단순하고 대담한 배치입니다. 그 아래로 물안개가 가로 띠를 이루며 번지고, 더 아래에 나무 숲과 집이 있습니다. 시선은 압도적인 바위에서 시작해 안개를 지나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적묵법. 정선은 먹물을 잔뜩 묻힌 큰 붓을 뉘어 위에서 아래로 반복해 그어 내렸고, 그 위에 다시 덧칠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겹겹이 쌓는 방식을 적묵법이라 합니다. 중국 화법을 빌려온 것이 아니라 정선이 자기 필요에 맞춰 발전시킨 기법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한 번에 칠한 검정이 아니라 여러 층이 겹친 검정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흰 선. 검은 암벽 사이사이에 가느다란 흰 틈이 나 있습니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균열입니다. 이 선들이 없으면 상단은 그냥 검은 덩어리가 됩니다.
비워 둔 곳. 안개, 폭포, 소나무의 밝은 부분은 모두 칠하지 않은 종이입니다. 수묵화에서 흰색은 칠하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입니다.
겸재 정선에 대하여
정선(1676~1759)은 한양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났습니다. 호는 겸재입니다. 당대의 시인 이병연, 인물화에 뛰어났던 사대부 화가 조영석 등과 어울리며 안목을 넓혔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진경산수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세운 것입니다. 관념 속 중국의 산 대신 조선의 실제 경관을 그렸고, 전통 수묵과 채색을 이어받으면서 적묵법 같은 자기 필묵법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작으로 『금강전도』, 『박연폭포』 등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일흔여섯 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화면이기도 합니다. 노년의 작품에서 흔히 기대하는 절제나 쇠퇴가 여기에는 없습니다.
유산과 소장의 역사
이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오기까지의 경로는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사입니다.
해방 직후 서예가 손재형이 이 그림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에서 되찾아온 것으로도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후 경제적 사정으로 소장품을 내놓았고, 여러 손을 거쳐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1971년 덕수궁에서 열린 호암컬렉션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의 일로 추정됩니다. 이건희 회장에게 이어졌고, 2020년 10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2021년 유족이 국가에 기증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회화사적으로도 이 작품 이후 조선 화단은 달라졌습니다. 심사정, 김홍도를 비롯한 후배 화가들이 조선의 자연과 일상을 화폭에 올렸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2021년부터 국보와 보물의 지정번호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보 제216호’는 오래된 자료에서 보게 되는 표기이며, 지금은 그냥 ‘국보 정선 필 인왕제색도’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에 있습니다. 상설 전시는 무료입니다.
다만 종이에 그린 수묵화는 빛과 습도에 매우 약해 상시 전시되지 않습니다. 공개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 사이에는 복제본이나 다른 작품으로 교체됩니다. 이 그림을 목표로 가신다면 반드시 방문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현재 전시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헛걸음하기 가장 쉬운 유형의 작품입니다.
지하철 4호선·경의중앙선 이촌역에서 도보 5분 거리입니다. 개관 시간과 야간 개장 요일은 변동이 있으므로 함께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서화관에서 김홍도의 풍속화 등 조선 회화를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웅장함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정선이 붙잡은 것은 비가 그치고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몇 시간이었고, 폭포는 곧 마를 것이었으며, 젖은 바위는 곧 다시 희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라질 상태를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화면에 남겼습니다.
이미지: 정선 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