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Supper by Leonardo da Vinci, 1498

최후의 만찬 – 예수의 발은 1652년에 사라졌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발은 볼 수 없습니다. 1652년 수도사들이 이 벽에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뚫으면서 화면 아래쪽 가운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몇몇 제자의 발이 그때 없어졌고, 그 뒤로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레오나르도가 고른 것은 사건이 아니라 반응입니다.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한 직후, 열두 명이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몇 초입니다.

제자들은 세 명씩 네 무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놀라 몸을 젖히는 사람, 벌떡 일어서는 사람, 두 손을 벌리며 자신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 옆 사람에게 되묻는 사람. 손과 몸이 물결처럼 이어지며 화면 전체에 파동을 만듭니다.

중세 회화에서 이런 장면은 정적으로 그려졌고, 유다는 대개 식탁 반대편에 홀로 앉아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유다를 다른 제자들 사이에 섞어 놓았습니다. 찾아내야 하는 구성입니다.

유다를 찾는 법

예수의 왼쪽, 관람자 기준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 무리의 맨 앞에 앉은 인물입니다. 세 가지 표지가 있습니다.

돈주머니. 오른손에 작은 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은 서른 냥입니다.

뒤로 젖힌 몸. 다른 제자들이 예수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동안 그만 뒤로 물러나며 그늘에 잠깁니다. 얼굴에 빛이 닿지 않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엎어진 소금통. 그의 팔꿈치 앞에 소금이 쏟아져 있습니다. 소금을 엎는 것은 오래된 불길함의 표지였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유다의 왼손이 접시를 향해 뻗어 있고, 예수의 오른손도 같은 방향으로 뻗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배반하리라는 복음서의 구절이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벽에 남은 못 자국

이 화면의 원근법은 소실점이 하나입니다. 천장의 격자, 벽의 태피스트리, 창의 선이 모두 한 점으로 모입니다.

그 점은 예수의 오른쪽 관자놀이입니다. 르네상스 해부학에서 감각들이 모이는 자리, 곧 공통감각의 위치로 여겨지던 지점입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그 자리에 실제로 못을 박았습니다. 못에 실을 묶고 방사형으로 당겨가며 식탁의 양 끝, 바닥의 선, 천장 격자의 세로 기둥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그 못 자국이 지금도 벽에 남아 있습니다. 1978년 시작된 복원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오백 년 전 화가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가 물리적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빛의 방향도 계산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광원의 방향은 실제 식당 왼쪽 창에서 들어오는 빛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벽화가 방의 연장처럼 보이도록 만든 장치입니다.

이 그림이 겪은 일들

레오나르도는 프레스코를 쓰지 않았습니다. 프레스코는 젖은 회반죽 위에 빠르게 그려야 하고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천천히 작업하며 고쳐 그리기를 원했고, 그래서 마른 벽에 템페라와 유채를 얹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표현력은 얻었지만 내구성을 잃었습니다.

박락은 그의 생전에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초에 이미 손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1499년 — 완성 이듬해 식당이 침수되었습니다.
  • 1652년 — 문을 내면서 예수와 제자들의 발이 사라졌습니다.
  • 1726년 — 미켈란젤로 벨로티가 유화로 결손부를 메우고 전체에 니스를 발랐습니다. 이후 이백 년 동안 여러 차례 덧칠이 반복됩니다.
  • 1796년 —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 식당을 마구간과 건초 창고로 썼습니다. 병사들이 제자들의 얼굴을 향해 물건을 던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1800년 — 홍수로 식당에 물이 이 주 가까이 고였고, 벽 전체에 두꺼운 녹색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 1847년 — 한 영국인 저술가는 이 작품을 두고 다시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며 대부분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적었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예술품이라고 불렀습니다.
  • 1943년 8월 15일 밤 — 연합군의 폭격으로 식당의 천장과 동쪽 벽이 무너졌습니다. 이 벽만 남았습니다. 전쟁 초기에 관계자들이 모래주머니로 감싸 두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진에는 폐허 한가운데 홀로 선 벽과 그 위의 그림이 찍혀 있습니다. 무너진 부분은 1947년에 복구되었습니다.

21년의 복원

1978년부터 1999년 5월 28일까지, 피닌 브람빌라 바르칠론이 이끈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38,000시간이 들었습니다.

방법은 일본 종이에 용제를 적셔 표면에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백 년에 걸친 니스와 덧칠을 한 겹씩 걷어냈습니다. 너무 손상되어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은 수채로 옅게 채웠습니다. 원작인 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결과는 논쟁을 불렀습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의 원래 물감층은 전체의 약 42퍼센트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것으로 여겨지던 여러 인상적인 세부가 후대의 덧칠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실물은 도판보다 훨씬 흐리고 조용합니다. 이 점은 미리 알고 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인쇄물에서 보던 선명한 화면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하여

레오나르도(1452~1519)는 토스카나의 빈치 마을 근처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베로키오 공방에서 수련했습니다. 1482년 무렵 밀라노로 옮겨 루도비코 스포르차 아래에서 십칠 년을 일했습니다. 이 벽화는 그 시기의 작품입니다.

1499년 프랑스군이 밀라노를 점령하면서 그는 도시를 떠났습니다. 『모나 리자』를 시작한 것은 그 뒤인 1503년경 피렌체에서입니다. 두 작품은 다른 시기, 다른 도시의 산물입니다.

그가 완성한 회화는 스무 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몇 달씩 붓을 들지 않다가 어느 날 나타나 몇 번 칠하고 돌아가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벽화는 이후 서양 회화에서 군상 구성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여러 인물을 무리로 나누어 배치하는 방식도 이 계보 위에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도 이 구도는 끝없이 인용됩니다. 달리와 워홀이 다시 그렸고, 영화와 광고와 밈이 반복해서 빌려 씁니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폭발시켰지만, 그 소설이 제시한 해석은 미술사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옛 식당에 있습니다. 벽화이므로 옮길 수 없고, 오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 사전 예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공식 예매처는 vivaticket입니다. 성수기에는 두세 달 전에 마감됩니다.
  • 한 회차 입장 인원은 25명 안팎, 관람 시간은 15분입니다. 습도와 온도를 지키기 위한 조치입니다.
  • 입장 전에 밀폐된 통로를 몇 개 지나며 공기를 교환합니다. 늦으면 입장할 수 없습니다.
  • 맞은편 벽에는 조반니 도나토 다 몬토르파노가 그린 『십자가 처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등지고 서 있느라 보지 못합니다. 15분 중 2분은 뒤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인근에 스포르체스코 성과 브레라 미술관이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백 년이라는 시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구도나 표정이 아니라 결손입니다. 발이 없고, 물감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화면의 상당 부분은 복원가가 채운 수채입니다. 그런데도 이 벽은 폭격에서 살아남았고, 예수의 관자놀이에는 화가가 박은 못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 Il Cenacolo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약 1495~1498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밀라노.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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