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해돋이 –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
이 그림이 그려진 시각은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입니다. 추정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2014년 마르모탕 미술관은 천체물리학자 도널드 올슨에게 분석을 의뢰했고, 그는 르아브르의 옛 사진으로 모네가 묵은 호텔 방의 시야를 복원하고, 조수 간만표로 대형 범선이 들어올 수 있었던 날을 추리고, 기상 기록으로 폭풍우가 친 날을 지우고, 마지막으로 화면 속 굴뚝 연기가 휘는 방향으로 풍향을 읽어 날짜를 특정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 제작 시각: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경, 르아브르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48 × 63 cm
- 미술 사조: 인상주의
- 소장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파리 (1940년 기증)
그려진 자리와 시간
모네는 르아브르 그랑키 41-45번지의 아미로테 호텔 방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며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번에, 몇 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이 그림이 해돋이인지 해넘이인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올슨의 분석이 그것을 끝냈습니다. 화면 속 태양의 높이는 일출 후 이삼십 분에 해당하고, 항구의 갑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만조라는 뜻이며, 안개의 상태와 연기의 방향이 특정한 기상 조건을 가리킵니다.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날은 두 개까지 좁혀졌고, 최종적으로 1872년 11월 13일이 선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특정한 아침의 물리적 조건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사십 년 뒤에 역산이 가능할 만큼 정확하게 말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논쟁이 뒤늦게 결론에 이른 사례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최근 이십여 년 사이, 명화를 둘러싼 여러 질문이 새로운 방법으로 답을 찾았습니다. 나머지는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완성된 그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당시 살롱의 기준은 세밀한 묘사와 매끄러운 표면이었습니다. 모네는 그것을 무시했고, 비평가들은 이 화면을 미완성이라고 불렀습니다.
태양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버드의 신경생물학자 마거릿 리빙스턴이 지적했듯, 이 그림 속 붉은 태양의 밝기는 주변 하늘과 거의 같습니다. 흑백으로 변환하면 태양은 사라집니다. 우리 시각 체계에서 밝기를 처리하는 경로와 색을 처리하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 태양은 위치가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마치 맥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네가 이 원리를 알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그렇습니다.
전경의 배들은 몇 번의 거친 붓질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배경에는 공장 굴뚝과 크레인이 안개에 녹아 있습니다. 산업항의 새벽이며, 낭만적인 자연 풍경이 아닙니다.
이름이 붙은 경위
1874년 4월 15일, 모네와 동료들은 사진가 나다르의 옛 스튜디오에서 독립 전시를 열었습니다. 살롱에 계속 낙선하던 화가들이 스스로 만든 전시였습니다.
도록에 실을 제목을 묻자 모네는 이것을 르아브르의 풍경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막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인상’이라고 적으라고 했습니다.
4월 25일, 비평가 루이 르루아가 잡지 『르 샤리바리』에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아카데미 화가와 나누는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쓴 조롱이었습니다. 그런데 화가들은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그림이 겪은 일들
1874년 5월, 수집가 에르네스트 오슈데가 이 그림을 800프랑에 샀습니다.
4년 뒤 그가 파산하면서 소장품이 드루오에서 법원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이 그림의 낙찰가는 210프랑이었습니다. 4분의 1로 떨어진 것입니다. 산 사람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조르주 드 벨리오였습니다. 몇 해 뒤 마네의 『올랭피아』를 국가에 남기기 위한 모금에 참여한 그 인물입니다.
벨리오의 딸 빅토린과 사위가 1940년 마르모탕 미술관에 이 그림을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은 이 작품을 지나치게 파격적이라고 여겨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샹보르 성에 보관되었습니다.
즉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만든 이 그림은 그려진 뒤 칠십 년 가까이 아무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1985년 10월 27일에는 무장한 다섯 명이 마르모탕 미술관에 들이닥쳐 이 작품을 포함한 여러 점을 털어 갔습니다. 1990년 코르시카에서 회수되었습니다.
클로드 모네에 대하여
모네(1840~1926)는 파리에서 태어나 르아브르에서 자랐습니다. 소년 시절 화가 외젠 부댕에게서 야외에서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그림이 고향 항구를 그린 것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평생 같은 대상을 조건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그리고 지베르니의 『수련』 연작이 그 결과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에 닿는 빛의 상태를 그리는 방식이며, 이 그림은 그 출발점에 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인상주의는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그리고 20세기 추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습니다. 세잔, 반 고흐, 마티스가 모두 이 흐름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둘 만합니다. 이 그림이 ‘인상주의를 시작한 작품’이라는 서술은 편의적인 요약입니다. 모네와 동료들은 이 그림 이전부터 같은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었고, 이 작품이 특별했던 것은 그림 자체보다 제목과 그 제목이 불러온 조롱 때문이었습니다. 미술사에서 이름이 붙는 순간이 늘 가장 중요한 순간인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파리 16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있습니다. 지하철 9호선 라 뮈에트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입니다.
휴관일은 월요일입니다. 개관 시간과 요금은 변동이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고, 온라인 예매를 권합니다. 오전 개관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네 작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모네의 아들 미셸이 남긴 유산이 통째로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르누아르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도 함께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대여 전시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그림을 목표로 가신다면 현재 전시 여부를 미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대장식화를 함께 보실 계획이라면 이동 시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두 미술관은 도보 거리가 아니며 지하철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즉흥성이 아니라 정확성입니다. 몇 번의 붓질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이 화면 안에,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각의 조수와 바람과 안개가 들어 있습니다. 백사십 년 뒤에 그것을 역산해 낼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요.
이미지: Impression, soleil levant – 클로드 모네, 1872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