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후지산 – 원래는 붉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원래 붉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목판에서 찍어낸 초기 판본 가운데 훨씬 부드러운 색조의 것들이 있는데, 수집가들은 이를 ‘핑크 후지’라고 부릅니다. 우키요에 연구자 로저 키스는 이 핑크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며 호쿠사이가 처음 의도한 색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아는 강렬한 붉은색은 나중에 값싼 안료로 바꿔 찍은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원화: 가쓰시카 호쿠사이 (葛飾北斎, 1760~1849)
- 원제: 凱風快晴 (가이후 카이세이) – ‘남풍, 맑은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붉은 후지(赤富士)’는 별칭입니다
- 제작 시기: 1830~31년경
- 기법: 다색 목판화, 오반 요코에 판형 약 25.8 × 36.4 cm
- 시리즈: 『후가쿠 삼십육경(富嶽三十六景)』 – 처음 36점으로 기획되었으나 인기에 힘입어 10점이 추가되어 총 46점입니다
- 미술 사조: 우키요에
- 소장: 목판화이므로 단일 소장처가 없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파리 기메 미술관, 프린스턴 대학 미술관 등 여러 기관이 판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판본을 보고 있는가
이 그림에 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판본에 따라 색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초기 판본(핑크 후지). 매우 희귀합니다. 하늘의 파란색이 일부러 고르지 않게 찍혀 있어 화면이 밝아 보이고 구름에 움직임이 생깁니다. 산 정상 둘레에는 프러시안 블루의 후광이 둘러 있어 봉우리가 앞으로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색이 절제되어 있고, 더 비싼 안료가 쓰였습니다.
후기 판본(붉은 후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그림입니다. 하늘은 균일하고 진한 파랑으로 바뀌었고, 인쇄공은 목판을 하나 더 만들어 수평선 위 흰 구름에 옅은 파랑을 덧찍었습니다. 산에는 벵갈라라는 강한 붉은 안료를 썼는데, 이 그림의 통칭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초록색 판도 다시 깎아 숲과 산비탈이 만나는 선을 낮췄습니다.
또 다른 변형. 색 구성이 완전히 다른 판본도 있습니다. 구름이 화면 위쪽에 겨우 보일 정도이고, 하늘은 대부분 평평한 옅은 파랑이며, 위쪽에 가는 회색 띠가 지나고, 수평선을 따라 프러시안 블루가 산비탈까지 올라갑니다.
즉 이 작품에는 정본이 없습니다. 도판을 볼 때마다 색이 다르게 느껴졌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화면에 있는 것은 산, 하늘, 구름, 그리고 아래쪽의 숲뿐입니다. 인물도 사건도 없습니다. 우키요에 전체에서 가장 단순한 구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가장 기상학적으로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후지산이 붉게 물드는 현상은 늦여름에서 초가을, 눈이 녹아 화산암이 드러난 시기에 낮은 아침 해가 비탈에 닿을 때 잠깐 나타납니다. 제목의 ‘남풍, 맑은 하늘’이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볼 수 있습니다. 추상에 가까운 화면이 특정한 기상 조건을 지목하고 있는 셈입니다.
산과 하늘은 각각 세 개의 색조로 이루어져 있고, 두 색조는 서로의 반전에 가깝습니다. 그 대비가 화면 전체를 지배합니다.
색을 만든 사람
산의 색은 아래쪽 초록에서 붉은 주황을 거쳐 정상의 갈색으로 이어집니다. 이 그러데이션은 목판에 새겨진 것이 아닙니다. 보카시라고 하는 기법으로, 물을 먹인 목판 위에 인쇄공이 손으로 먹을 문질러 농담을 만듭니다. 찍을 때마다 사람의 손이 개입하므로 같은 그림이 두 장 나올 수 없습니다.
우키요에는 분업의 산물입니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공이 판을 파고, 인쇄공이 찍고, 판원이 출판합니다. 색을 정하는 것은 통상 화가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시카고 미술관은 이 시리즈에 한해서는 호쿠사이가 색의 사용에 관여했을 것으로 봅니다.
역사적 배경
1830년대 초 에도는 도시 문화가 무르익은 상태였고 목판 인쇄 기술은 정점에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특징짓는 것은 파란색입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새로 들어온 프러시안 블루를 일본에서는 ‘베로아이(ベロ藍)’라고 불렀습니다. 베를린에서 온 남색이라는 뜻입니다. 기존의 식물성 남색과 달리 이 안료는 선명하고 잘 바래지 않았습니다. 이 색이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호쿠사이는 네덜란드 무역을 통해 들어온 소수의 서양 판화와 회화를 연구했고, 그 원근법을 자기 화면에 흡수했습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에 대하여
호쿠사이(1760~1849)는 에도에서 태어나 아흔 가까이 살면서 삼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름을 서른 번 넘게 바꾸었고, 아흔세 번 이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그림에 찍힌 서명은 ‘호쿠사이 아라타메 이이쓰 히쓰’입니다. 호쿠사이에서 이이쓰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표시입니다. 그의 이름 변경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화풍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후가쿠 삼십육경』을 시작할 때 그는 일흔 살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일흔 이후에 나왔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그림과 같은 시리즈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미술 작품입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 전해진 뒤 자포니슴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반 고흐는 일본 판화를 수백 점 수집했고, 그 영향은 『아몬드 꽃』의 평면적 색면과 잘려 나가는 구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 히로시게의 『신오하시 다리의 소나기』와 나란히 놓으면, 두 사람이 풍경에서 각각 무엇을 밀어붙였는지 보입니다. 히로시게는 순간과 날씨를, 호쿠사이는 형태와 구조를 택했습니다.
영향은 인상주의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뮌헨의 청기사파, 특히 칸딘스키도 일본 판화에서 자극을 받았습니다. 형태를 극단까지 단순화하고 색면으로만 화면을 세우는 이 방식은 20세기 추상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목판화이므로 여러 미술관에 판본이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시카고 미술관, 파리 기메 미술관, 프린스턴 대학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등입니다.
다만 종이 작품은 빛에 약해 상설 전시되지 않습니다. 특정 미술관을 목표로 가신다면 반드시 사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전시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메트로폴리탄을 찾으신다면 아시아 미술 구역에 있습니다. 입장료에 관해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의 ‘원하는 만큼 내기’ 방식은 뉴욕주 거주자와 인근 세 개 주 학생에게만 적용되며, 해외에서 오는 관람객은 정해진 금액을 내야 합니다. 개관 요일과 시간은 바뀌므로 함께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관한 한, 온라인 비교가 실물 관람 못지않게 유용합니다. 여러 기관이 공개한 고해상도 이미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핑크 후지와 붉은 후지의 차이, 하늘의 균일함과 불균일함, 숲과 산비탈이 만나는 선의 위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목판에서 나온 그림들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이쪽이 낫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붉은색이 아니라 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이 산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 그림이고, 색이 곧 제목이 된 그림인데도 그렇습니다.
이미지: 凱風快晴 (가이후 카이세이, ‘붉은 후지’) –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0~31년경, 『후가쿠 삼십육경』 중.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