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꽃
1890년 1월 31일 파리에서 태어난 아기는 이 그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부모는 그림을 아기 침대 위에 걸었고, 어머니 요는 두 달 뒤 빈센트에게 편지를 써서 아이가 그 꽃나무를 유난히 오래 바라본다고 전했습니다. 그 아기는 빈센트 빌럼 반 고흐였습니다. 그리고 여든여덟 해 뒤, 그가 세운 미술관에 이 그림이 걸립니다.
기본 정보
- 작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 제작 시기: 1890년 2월, 생레미드프로방스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73.3 × 92.4 cm
- 미술 사조: 후기 인상주의
- 소장처: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1890년 1월 31일, 테오는 형에게 편지를 보내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립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말한 대로 형의 이름을 따서 짓겠다고, 그리고 이 아이가 형만큼 단호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빈센트는 곧바로 붓을 들었습니다. 고른 소재는 그가 가장 좋아하던 것,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뻗은 꽃가지였습니다. 아몬드나무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중해에서 아몬드는 2월에, 다른 어떤 나무보다 먼저 꽃을 피웁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입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린 곳은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이었습니다. 스스로 들어간 곳이었고, 그 안에서 그는 발작과 회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마친 직후, 그는 가장 길고 심한 발작 가운데 하나를 겪습니다. 몇 주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새 생명을 그린 화면과 그 화면을 그린 사람의 상태 사이에는 이런 간격이 있습니다. 그는 반년 뒤 세상을 떠납니다.
역사적 배경
꽃 피는 나무는 반 고흐에게 반복되는 주제였습니다. 1888년 2월 그는 눈 내리는 아를에 도착했는데, 2주 만에 날씨가 바뀌면서 과수원이 일제히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그 봄에만 열네 점 남짓의 꽃나무 그림을 그렸습니다. 『꽃 피는 과수원』 연작입니다. 이듬해 생레미에서도 같은 소재를 다뤘습니다.
이 작품은 그 계보의 마지막이자, 유일하게 특정한 사람을 위해 그려진 것입니다.
구성에는 일본 판화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반 고흐는 우키요에를 열심히 수집했고, 히로시게의 판화를 유화로 옮겨 그린 적도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그가 가져온 것은 세 가지입니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잘려 나가는 구도, 가지를 감싸는 굵고 뚜렷한 윤곽선, 그리고 원근도 지평선도 없이 평면적으로 놓인 색면입니다. 나무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가지만 화면 앞으로 끌어당기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시점. 우리는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지평선이 없고 땅도 보이지 않습니다. 화면에는 하늘과 가지만 있습니다. 발 딛고 선 자리가 지워져 있어서, 보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무늬 안에 놓입니다.
파랑. 하늘은 균일한 청록빛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구름도 그러데이션도 없습니다. 이 단조로운 색면이 있어야 가지의 검은 윤곽과 꽃의 흰빛이 살아납니다.
붓질. 반 고흐 하면 떠오르는 두껍고 소용돌이치는 붓자국이 여기에는 거의 없습니다. 화면은 훨씬 차분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자기 감정을 쏟아낸 화면이 아니라, 남에게 주려고 만든 물건입니다.
가지의 방향. 가지들은 화면 네 귀퉁이로 뻗어 나가 프레임 밖에서 계속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면은 나무의 일부만 잘라낸 것이고, 나머지는 관람자의 상상에 맡겨져 있습니다.
꽃. 꽃잎 하나하나에 수술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발작 사이의 짧은 시기에, 이 정도의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그림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가로 활동한 기간은 십 년이 채 되지 않지만 2,100점 가까운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동생 테오였습니다. 테오는 화상으로 일하며 형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했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오늘날 한 예술가의 내면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이 태오 부부에게 보낸 선물이라는 사실은 그 관계의 성격을 압축합니다.
그의 아를 시기 작품인 『해바라기』와 『침실』을 이 그림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점이 보입니다. 세 작품 모두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습니다. 해바라기는 고갱이 쓸 방을 위해, 침실은 그 집에서의 삶을 위해, 그리고 이 그림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를 위해.
유산과 영향
테오와 요는 이 그림을 아기 침대 위에 걸었습니다. 1890년 3월 29일 편지에서 요는 시숙에게 이렇게 씁니다. 아이가 삼촌의 그림들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보는데, 특히 우리 침대 위에 걸린 꽃나무에 유난히 끌린다고.
그해 7월 빈센트가 죽고, 여섯 달 뒤인 1891년 1월 테오도 세상을 떠납니다. 남은 것은 스물여덟 살의 요와 한 살배기 아들, 그리고 팔리지 않은 그림 수백 점이었습니다. 요는 그림을 지켰고, 전시를 조직했고, 형제의 편지를 정리해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반 고흐가 알려진 것은 상당 부분 그녀 덕분입니다.
1925년 요가 죽자 컬렉션은 아들 빈센트 빌럼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는 델프트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였고, 삼촌의 명성과 거리를 두며 조용히 살았습니다. 라런의 그의 집 거실에는 『해바라기』와 이 그림이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62년 그는 컬렉션을 빈센트 반 고흐 재단에 넘겼고, 네덜란드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미술관 건립이 추진됩니다. 반 고흐 미술관은 1973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1978년, 개관 다섯 해 뒤에 여든여덟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탄생 선물로 그려진 그림이,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만든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습니다. 뮈세윔플레인 광장에 면해 있습니다.
사전 온라인 예약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현장 구매는 대기가 길고, 시간대 지정 입장제로 운영됩니다. 개관 시간은 계절과 요일에 따라 달라지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이른 시간이 가장 한산합니다.
한 가지 정정할 점이 있습니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별이 빛나는 밤』이 없습니다. 그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입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대표작은 이 그림 외에 『감자 먹는 사람들』, 『침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리고 여러 점의 자화상입니다. 『해바라기』는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데 그중 한 점이 이곳에 있고, 다른 판본은 런던 등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같은 광장에 레이크스뮤지엄과 시립미술관이 있어 하루를 묶기 좋습니다. 다만 세 곳을 하루에 다 보는 일정은 권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밝기가 아니라 시점입니다. 반 고흐는 나무를 올려다보는 각도를 골랐습니다. 누워서 위를 보는 사람의 각도입니다. 그 그림은 실제로 요람 위에 걸렸고, 아기는 정확히 그 각도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미지: Almond Blossom – Vincent van Gogh, 1890년,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