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nday on La Grande Jatte by Georges Seurat, 1886

쇠라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구성, 크기, 점묘법

시카고 미술관에서 이 그림 앞에 서면, 화면 가장자리를 따라 가느다란 점의 띠가 둘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액자 장식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 띠는 쇠라가 직접 물감으로 그린 것이며, 작품의 일부입니다.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1886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뒤에도 작가의 손이 계속 닿았던 그림입니다.

기본 정보

어떻게 구성된 작품인가

먼저 크기

세로 207.6cm, 가로 308cm. 약 2미터 × 3미터로, 성인의 키를 넘는 높이입니다. 쇠라의 전 작품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치수는 감상의 전제가 됩니다. 화면 전체를 시야에 넣으려면 몇 미터 물러서야 하고, 반대로 점 하나하나를 보려면 얼굴을 가까이 대야 합니다. 즉 이 그림은 관람자에게 두 종류의 거리를 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수평과 수직의 골격

화면은 크게 세 개의 수평 띠로 나뉩니다. 앞쪽의 그늘진 풀밭, 중간의 햇빛 드는 잔디, 그리고 뒤쪽의 센 강과 건너편 기슭입니다. 이 세 층에 나무 줄기와 서 있는 인물들이 수직선으로 꽂힙니다.

쇠라가 이 장소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강과 기슭과 하늘이 만드는 수평선, 그리고 나무와 돛과 선 사람이 만드는 수직선이 이미 격자 모양의 구도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라 그랑드 자트 섬은 풍경인 동시에 기성품 설계도였습니다.

인물 배치와 ‘움직이지 않음’

화면에는 약 50명의 인물과 개, 원숭이, 센 강에 떠 있는 여러 척의 보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이 엄격한 옆모습이거나 정면 중 하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스듬한 각도의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 회화의 인물 표현 원칙과 같습니다. 쇠라는 이 양식을 의도적으로 채택했습니다. 한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와 달리, 그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존재감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윤곽이 조각처럼 딱딱해 보이는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입니다.

오른쪽 앞의 양산을 든 여성이 데리고 있는 원숭이에 대해서도 덧붙입니다. 프랑스어 속어에서 암원숭이(singesse)는 당시 매춘부를 가리키는 은어이기도 했습니다. 이 한 마리를 어떻게 읽을지는 연구자마다 견해가 갈립니다.

점묘법: 왜 물감을 섞지 않는가

점의 총 개수는 한 조사에서 약 22만 개로 추정되었습니다.

쇠라가 팔레트 위에서 색을 섞지 않은 이유는 취향이 아니라 광학 이론에 있습니다. 물감은 섞을수록 어두워집니다. 파랑과 노랑을 섞은 초록은 파랑이나 노랑 어느 쪽보다도 어둡습니다. 반면 순색의 점을 나란히 놓고 관람자의 눈 안에서 혼합시키면, 밝기를 유지한 채 중간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나무 그늘의 푸른빛 도는 그림자와 햇빛 드는 잔디의 노란 광채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보색 대비를 계산해 배치한 결과입니다.

액자와 ‘그려진 가장자리’

앞에서 언급한 점의 띠를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쇠라는 1886년 전시에 출품한 뒤에도 이 작품에서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1888년, 그는 캔버스를 한 번 떼어내 나무 조각을 이어 붙이고 다시 팽팽하게 당긴 다음, 가장자리를 따라 점으로 띠를 그려 넣습니다. 작품 본래의 비율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캔버스의 접힌 여백을 펴서 새 틀에 두르는 상당히 번거로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목적은 그림 안쪽의 빛과 바깥쪽 현실 사이에 색으로 된 이행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액자는 작품 바깥의 부속물이 아니라 구성의 연장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실제 액자에도 미쳤습니다. 당시 주류였던 금색 액자 대신 흰 나무 액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쇠라의 다른 작품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의 배경에 그려진 이 작품의 모습에서 추정됩니다. 2022년 시카고 미술관은 제작에 1년을 들인 새로운 흰 액자를 공개했습니다. 작가 본래의 의도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입니다.

제작 과정

완성까지 약 2년, 60점이 넘는 습작이 들어갔습니다. 나무판에 그린 작은 유채 스케치, 소묘, 그리고 본작보다 작은 캔버스에 그린 전체 구상도가 포함됩니다. 낚시하는 여성처럼 반복해서 고쳐 그린 모티프도 있습니다.

1886년 제8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여기서 ‘신인상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전시는 인상주의 전시회로서는 마지막 회가 되었습니다.

쇠라에 대하여

조르주 쇠라는 1859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배운 뒤 슈브뢸 등의 색채 이론에 빠져들었고, 20대 초반에 점묘 기법을 확립했습니다. 1891년 31세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는 아직 26세였습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

본작은 시카고 미술관 유럽 회화 부문에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성격상 거의 대여되지 않기 때문에, 실물을 볼 기회는 사실상 시카고로 한정됩니다.

주소는 111 S Michigan Ave, Chicago이며, Adams/Wabash역에서 도보 5분 거리입니다. 전시실 위치는 개보수로 바뀔 수 있으니 입장할 때 안내 데스크에서 확인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목요일에는 야간 개관이 있어 비교적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그림은 거리를 바꿔 두 번 볼 가치가 있습니다. 먼저 몇 미터 떨어져 전체를, 그다음 가까이 다가가 점을.

참고로 이 그림 앞에 서는 장면은 영화 『페리스의 해방』(1986)에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친구 캐머런이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갈수록 소녀의 얼굴이 점으로 분해되어 가는 컷은, 이 작품의 구조 자체를 영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그림의 내력에는 조금 생각하게 만드는 숫자가 있습니다. 쇠라가 죽은 뒤인 1900년, 이 작품은 800프랑에 팔렸습니다. 그로부터 24년 뒤인 1924년, 시카고의 수집가 부부가 같은 그림을 2만 달러에 사들여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합니다.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 이 그림은 거의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2년을 들이고, 60점의 습작을 쌓고, 완성한 뒤에도 계속 손을 댄 작품의 가치가 정해지기까지, 그의 죽음으로부터 30년 이상이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이미지: A Sunday on La Grande Jatte – Georges Seurat (1886).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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