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nker by Auguste Rodin, 1902

생각하는 사람 – 이 이름은 주조공들이 붙였다

이 조각의 이름은 로댕이 붙인 것이 아닙니다. 원래 제목은 『시인』이었고, 『지옥의 문』 상단에 앉아 자신이 쓴 지옥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단테였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은 주조 공장의 노동자들이 붙였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로렌초 데 메디치 상, 이탈리아어로 ‘일 펜세로소’라 불리던 그 작품과 닮았다고 본 것입니다. 로댕은 그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
  • 원제: 『시인(Le Poète)』
  • 구상: 1880~81년, 높이 약 70cm, 『지옥의 문』의 일부
  • 확대판: 1904년, 높이 약 180cm
  • 기법: 청동 주조
  • 미술 사조: 낭만주의로 분류되지만, 로댕은 통상 근대 조각의 출발점으로 다뤄집니다
  • 소장: 주조 작품이므로 단일 원본이 없습니다. 대형 청동 주조본은 전 세계에 28점이 있으며, 파리 로댕 미술관 정원의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것이 원본인가

이 작품에는 ‘원본’이라고 부를 단 하나의 물건이 없습니다.

1880년 로댕은 파리에 세워질 장식미술관의 청동 문 제작을 의뢰받았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소재를 가져온 이 작업이 『지옥의 문』입니다. 그 문의 상단, 인방 위에 앉은 인물이 이 조각이었습니다. 높이는 70센티미터, 문 전체에 등장하는 이백 명 넘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888년 로댕은 이 인물만 따로 떼어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1904년, 실물보다 큰 크기로 확대한 판본을 살롱에 냈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후 시민들의 모금이 시작되었고, 프랑스 정부가 이 조각을 사들여 1906년 팡테옹 앞에 세웠습니다. 파리시에 주는 선물이라는 명목이었습니다. 로댕 미술관 정원으로 옮겨진 것은 1922년입니다.

오늘날 대형 청동 주조본은 전 세계에 28점이 있습니다. 그중 로댕이 직접 감독한 것은 열 점 안팎입니다. 나머지는 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로댕 미술관이 제작한 것들입니다. 이 점에서 드가의 『열네 살의 작은 무용수』와 같은 상황입니다. 주조 조각에서 ‘진품’이 무엇인지는 회화에서와 다른 문제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로댕 자신이 이 조각을 설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이유는 뇌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찌푸린 눈썹과 벌어진 콧구멍과 다문 입술로, 그리고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으로, 꽉 쥔 주먹과 오므린 발가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 조각의 핵심입니다. 사유를 표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발가락을 보십시오. 오므리고 있습니다. 손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의 비대칭도 여기서 나옵니다. 오른쪽 팔꿈치가 오른 무릎이 아니라 왼쪽 허벅지에 얹혀 있어 상체가 비틀립니다. 편안한 자세가 아닙니다.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자세입니다.

얼굴은 아래를 향해 있어 정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약간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비로소 표정이 드러납니다.

이 인물은 누구인가

가장 오래된 답은 단테입니다. 『지옥의 문』이 『신곡』에서 나왔고, 이 인물은 그 문 위에서 자신이 묘사한 지옥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론이 있습니다. 이 인물은 벌거벗고 있는데, 『신곡』에서 단테는 시종일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은 근육질인 반면 단테의 체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을 아담으로 보는 견해, 혹은 로댕 자신의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습니다.

로댕이 인물을 벌거벗겨 놓은 것은 미켈란젤로의 전통을 따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지성을 나타내는 영웅적 나체입니다.

자세의 출처도 밝혀져 있습니다. 로댕 미술관은 두 작품을 지목합니다. 카르포의 『우골리노』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로렌초 데 메디치의 좌상입니다.

오귀스트 로댕에 대하여

로댕(1840~1917)은 파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에콜 데 보자르 입학 시험에 세 번 떨어졌고, 정규 교육 대신 실무와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미켈란젤로를 직접 보고 조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매끄럽게 다듬은 이상화된 형태 대신, 표면에 손자국과 거친 질감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청동 표면이 빛을 고르지 않게 반사하면서 살아 있는 피부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입니다.

대표작으로 『칼레의 시민들』, 『키스』, 그리고 끝내 완성되지 못한 『지옥의 문』이 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자세는 오늘날 ‘고민하는 사람’을 뜻하는 시각적 기호가 되었습니다. 광고, 만화, 정치 풍자화가 실루엣만으로 의미를 전달합니다.

조각사에서 로댕은 브란쿠시와 자코메티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특별한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는 로댕 자신의 무덤입니다. 파리 근교 뫼동에 있는 그와 아내 로즈 뵈레의 묘 위에 이 조각의 주조본이 서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1970년 클리블랜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3월 24일 새벽 한 시경, 클리블랜드 미술관 앞에 서 있던 주조본 아래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받침대가 부서지고 다리 아랫부분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로댕이 직접 감독한 열 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미술관은 복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그 조각은 부서진 채로 미술관 앞에 서 있습니다. 손상 자체를 작품의 역사로 남긴 것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파리 7구 로댕 미술관 정원에 대표적인 주조본이 있습니다. 실내가 아니라 야외에 있어, 날씨와 시간에 따라 청동의 색이 달라집니다.

  • 휴관일은 월요일입니다. 개관 시간과 요금은 변동되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정원만 관람하는 별도 티켓이 있습니다. 이 조각과 『칼레의 시민들』, 『지옥의 문』은 모두 정원에 있으므로, 시간이 없다면 이 선택지가 효율적입니다.
  • 『지옥의 문』을 반드시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 상단에 이 인물의 원래 크기 판본이 앉아 있습니다. 70센티미터짜리 그것과 정원의 180센티미터짜리를 같은 날 보면, 이 조각이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 지하철 13호선 바렌 역에서 도보 5분입니다. 오르세 미술관과 가깝습니다.

파리가 아니어도 볼 수 있습니다. 대형 주조본은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모스크바, 도쿄 등에 있습니다. 다만 주조 시기와 감독자에 따라 표면 처리와 상태가 다릅니다.

이 조각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불편함입니다. 이 사람은 편하게 앉아 있지 않습니다. 몸은 비틀려 있고, 근육은 긴장해 있고, 발가락은 오므라들어 있습니다. 로댕이 표현한 것은 생각하는 상태가 아니라, 생각이 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미지: Le Penseur – 오귀스트 로댕, 1904년 확대판.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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