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배경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이 그림의 배경은 검은색이 아닙니다. 2018년 마우리츠하위스가 진행한 정밀 조사에서, 소녀 뒤에 초록색 커튼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 천이 접힌 사선과 색의 미세한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반투명한 초록 물감이 수백 년에 걸쳐 물리적·화학적으로 변하면서 사라진 것입니다. 이 발견은 해석을 바꿨습니다. 페르메이르는 관념적인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 안의 실제 사람을 그렸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 제작 시기: 1665년경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44.5 × 39 cm
- 장르: 초상화가 아니라 트로니(tronie)
- 미술 사조: 네덜란드 황금시대
- 소장처: 마우리츠하위스, 헤이그 (1902년 유증)
2018년에 알게 된 것들
2018년 2월과 3월,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그림을 액자에서 꺼내 미술관 안에 특별히 만든 유리방에 놓고 조사했습니다. 관람객이 지켜보는 앞에서였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스포트라이트 속의 소녀’였고, 책임자는 이 미술관의 회화 보존가 애비 반디비어였습니다.
결과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초록 커튼. 앞서 말한 그것입니다.
속눈썹이 있습니다. 갈색 물감으로 한 올씩 그려져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철 성분을 추적하는 형광 X선 분석에서 드러났습니다. 눈썹이 없고 배경이 비어 있다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이 얼굴이 추상화된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 추측이 뒤집혔습니다.
귀걸이에는 걸이가 없습니다. 반디비어의 표현대로, 윤곽선도 없고 귀에 걸 고리도 없습니다. 진주는 그냥 공중에 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몇 번의 흰 붓질과 반사광 두 점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린 순서가 밝혀졌습니다. 페르메이르는 먼저 검은 선으로 구도를 잡고, 얼굴과 상의와 옷깃을 칠했습니다. 파란 두건과 진주는 가장 마지막에 그려졌고, 그다음이 서명이었습니다.
그리는 도중에 위치를 바꿨습니다. 귀의 위치, 두건 윗부분, 목덜미 선이 작업 중에 이동했습니다.
붓의 털이 남아 있습니다. 현미경 조사에서 소녀의 피부 물감층에 페르메이르가 쓰던 붓에서 빠진 미세한 털이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삼백육십 년 전 작업실의 흔적입니다.
이 조사는 최근 이십여 년 사이에 명화에 관한 통념을 뒤집은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닙니다. ‘트로니’라고 불리는 장르에 속합니다. 특정 인물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유형과 분위기를 다루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소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결함이 아니라 장르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순간을 붙잡고 있습니다. 소녀는 정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깨 너머로 막 고개를 돌린 참입니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입니다.
진주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일 만합니다. 이 크기의 자연산 진주는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유리나 광을 낸 주석 모조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것은 어디에도 매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 그림이 겪은 일
1881년, 헤이그의 한 경매에 정체 불명의 낡은 그림이 나왔습니다. 물감층이 들뜨고 표면은 더러웠으며,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낙찰가는 2길더 30센트였습니다. 오늘날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24유로 정도, 빵 한 덩어리 값에 가깝습니다.
산 사람은 아르놀뒤스 안드리스 데스 톰버였습니다. 그는 페르메이르의 희귀한 작품들이 해외로 팔려 나가는 것을 막으려 애쓰던 빅토르 더 스튀르스의 조언을 받고 있었습니다.
세척 결과 페르메이르의 서명이 드러났습니다.
데스 톰버는 1902년 세상을 떠나면서 이 그림을 다른 열한 점과 함께 마우리츠하위스에 유증했습니다. 상속인이 없었습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대하여
페르메이르(1632~1675)는 델프트에서 태어나 그곳을 거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긴 작품은 서른대여섯 점 정도이며, 대부분 왼쪽 창에서 들어오는 빛 아래 놓인 실내 장면입니다.
생전에 그의 명성은 델프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마흔셋에 빚을 남기고 죽은 뒤 이름은 사실상 잊혔습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비평가 테오필 토레뷔르거가 그를 다시 찾아낸 뒤에야 오늘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같은 미술관에 있는 『델프트 풍경』,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우유 따르는 여인』과 함께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최근의 정밀 조사에서 화면 아래 숨어 있던 것이 나왔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에서는 지워진 주전자 선반과 화로 바구니가, 여기서는 사라진 초록 커튼이 나왔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그림이 오늘날의 지위를 얻은 데에는 20세기 후반의 문화적 사건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 작품은 ‘터번을 두른 소녀’ 혹은 ‘소녀의 두상’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의 제목은 20세기 후반에 붙었습니다.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그림에서 착안한 동명의 소설을 냈고, 2003년 스칼릿 조핸슨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명도 이 시기에 굳어졌습니다.
뱅크시를 비롯한 현대 작가들이 이 이미지를 반복해서 변주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에 있습니다. 호프페이버르 연못 옆, 17세기 저택을 개조한 건물입니다.
이 작품은 더 이상 대여 전시에 나가지 않습니다. 보려면 헤이그로 가야 합니다.
- 개관은 월요일 13시부터 18시까지, 화요일부터 일요일은 10시부터 18시까지입니다.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을 권합니다.
- 주말과 성수기에는 붐빕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하며,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 가장 한산합니다.
- 같은 미술관에 페르메이르의 『델프트 풍경』, 렘브란트의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파브리티위스의 『황금방울새』가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가 높습니다.
- 헤이그에서 기차로 15분이면 델프트입니다. 페르메이르가 평생 산 도시이며, 『델프트 풍경』의 시점이 된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그림의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140배까지 확대할 수 있어, 실물 앞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속눈썹과 붓 자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물을 보기 전에 한번 들여다보고 가시면 미술관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게 됩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시선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페르메이르는 얼굴을 먼저 그리고, 옷을 그리고, 마지막에 두건과 진주를 얹었습니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알아보는 두 가지가, 그가 가장 나중에 그린 것입니다.
이미지: Meisje met de parel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665년경, 마우리츠하위스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