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오봉도
이 그림은 지금 여러분의 지갑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007년에 발행된 만 원권 지폐 앞면, 세종대왕 초상 뒤에 드리운 배경이 바로 일월오봉도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기록화에서 임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임금 대신 이 그림이 그려지곤 했습니다. 임금이 그 자리에 없어도, 이 그림이 있으면 왕이 주관하는 행사라는 뜻이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작자 미상 (도화서 화원들의 집단 제작으로 추정)
- 제작 시기: 조선 후기. 현존 유물마다 다르며, 여러 점이 전합니다
- 기법: 비단에 채색, 병풍 형식
- 다른 이름: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 미술 사조: 조선 미술
- 소장: 단일 유물이 아닙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으며, 경복궁 근정전을 비롯한 궁궐 정전에는 어좌 뒤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왕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그림
일월오봉도에 관해 오래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이 병풍만 놓여 있을 때 그것은 아직 완성된 그림이 아니며, 그 앞에 임금이 앉아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증거가 조선의 기록화에 있습니다. 궁중 행사를 그린 그림에서 화가들은 임금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임금이 앉을 자리에 일월오봉도를 그렸습니다. 정조 9년인 1785년에 제작된 『을사친정계병』에서도 정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 그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이 그림은 왕의 배경인 동시에 왕의 대리물이었습니다. 사람은 바뀌지만 그림은 바뀌지 않습니다. 왕권이 특정 인물이 아니라 자리에 속한다는 생각이 이 배치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병풍은 왕을 따라다녔습니다. 임금이 공무로 궁을 나설 때는 해당 장소에 미리 만들어 두거나 쓰던 것을 가져갔습니다. 왕이 죽으면 함께 묻었습니다.
화면 읽는 법
해와 달. 오른쪽에 붉은 해, 왼쪽에 흰 달이 동시에 떠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배치입니다. 그리고 달은 초승달이 아니라 보름달입니다. 이 점이 일월오봉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징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음양오행으로 읽는 해석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해를 임금, 달을 왕비로 보는 해석도 함께 전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이 그림이 우주의 질서를 압축한 도식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다섯 봉우리. 어느 산인지 화면은 말하지 않습니다. 통상 다섯 명산, 곧 가운데 삼각산, 동쪽 금강산, 서쪽 묘향산, 남쪽 지리산, 북쪽 백두산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화면 속 산의 형태는 중국 회화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실제 한국의 산과 대응하지 않습니다.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관념 속의 지형입니다.
폭포와 물결. 두 줄기 폭포가 봉우리 사이로 떨어지고, 화면 아래는 물결로 채워집니다.
소나무. 좌우에 두 그루씩, 붉은 줄기의 소나무가 앞쪽에 서 있습니다. 불변과 장수의 상징입니다.
대칭. 화면은 좌우로 정확히 대칭입니다. 이 엄격한 대칭이 그림 전체에 정적이면서 장엄한 인상을 만듭니다. 앞에 사람이 앉으면 그 사람이 대칭의 축이 됩니다.
도상의 출처
이 그림의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유력한 설이 있습니다.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시경』의 「천보(天保)」 편입니다.
「천보」는 임금이 오래 살기를 축원하는 시로, 산과 언덕, 해와 달의 이미지를 잇달아 불러내며 왕의 영속을 기원합니다. 중국의 화보 『정씨묵원』에는 이와 유사한 구성의 그림이 「천보구여(天保九如)」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조선이 이 도상을 받아들여 왕실 전용의 형식으로 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왕은 하늘의 뜻을 땅에서 대행하는 존재로 규정되었습니다. 하늘의 두 빛과 땅의 다섯 봉우리 사이에 왕이 앉는 배치는 그 규정을 그대로 공간으로 옮긴 것입니다.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화가의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화서는 국가가 운영한 공식 화원 기관으로 왕실의 행사와 기록화를 담당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개인의 개성은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해진 도상을 정확히 반복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러 점의 일월오봉도가 서로 매우 비슷한 이유입니다. 화가가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이 그림의 조건이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도상은 조선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만 원권 지폐가 가장 일상적인 예이고, 청와대와 대통령실 등 국가 의전 공간에도 걸려 왔습니다. 왕조가 사라진 뒤에도 이 그림이 국가 권위의 표지로 계속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반복해서 인용됩니다. 좌우 대칭, 제한된 색, 단순한 형태의 조합이 현대 그래픽 언어와 잘 맞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조선 회화의 다른 흐름과 나란히 놓으면 이 그림의 성격이 더 분명해집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특정한 날의 특정한 산을 그린 것이라면, 일월오봉도는 어느 날도 아니고 어느 산도 아닌 것을 그렸습니다. 같은 세기에 한쪽에서는 진경이, 다른 한쪽에서는 관념이 최대치로 밀어붙여지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일월오봉도는 한 곳에 있는 한 점이 아닙니다. 여러 점이 남아 있고, 볼 수 있는 방식도 두 가지입니다.
박물관에서.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안에 있으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장품이 있습니다. 다만 비단에 그린 병풍은 빛에 약해 상설 전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방문 전에 각 기관 웹사이트에서 현재 전시 여부와 개관 시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자리에서. 경복궁 근정전 어좌 뒤에는 지금도 일월오봉도가 서 있습니다.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쪽이 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훨씬 낫습니다.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는 병풍이 하나의 회화로 보이지만, 정전 안에서는 어좌와 천장과 기둥과 함께 하나의 장치로 보입니다.
세 궁궐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근정전, 인정전, 명정전을 차례로 보면서 어좌 뒤를 확인하면, 같은 그림이 공간의 규모에 따라 어떻게 달리 쓰이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비어 있음입니다.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고, 산은 움직이지 않고, 소나무는 시들지 않습니다. 그 앞자리만 비어 있습니다. 조선은 오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사람을 바꿔 앉혔고, 그림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조선 후기.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