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Dancer of Fourteen Years by Edgar Degas, 1881

열네 살의 작은 무용수

1881년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이 조각은 유리 진열장 안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유리 진열장은 예술품이 아니라 해부 표본과 민족지 표본을 넣는 물건이었고, 밀랍은 작품이 아니라 습작과 표본의 재료였습니다. 관람객이 마주한 것은 조각이 아니라 전시된 개체처럼 보였습니다. 비평가들이 격렬하게 반응한 이유의 절반은 소녀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가 놓인 상자에 있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 제작 연도: 1878~1881년 (밀랍 원본). 청동 주조는 사후인 1922년부터
  • 재료: 안료를 섞은 밀랍, 점토, 금속 골조, 밧줄, 쓰던 붓, 사람의 머리카락, 리본, 면 보디스, 튀튀, 천 발레 슈즈, 나무 받침
  • 높이: 약 99 cm (실물의 약 3분의 2 크기)
  • 미술 사조: 인상주의 (Impressionism)
  • 원본 소장처: 워싱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청동 주조본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여러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드가는 이 조각을 1880년 전시에 내놓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해 진열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듬해에야 그 안에 소녀가 들어섰습니다.

재료부터 문제였습니다. 19세기 조각의 재료는 대리석과 청동이었습니다. 밀랍은 해부학 모형과 인류학 표본, 그리고 조각가가 본을 뜨기 위한 중간 단계에 쓰는 재료였습니다. 그 위에 진짜 옷을 입히고 진짜 머리카락을 붙이자, 관람객 눈에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형이나 마네킹, 혹은 표본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소녀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드가는 그녀를 이상화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팔다리, 살짝 나온 배, 주름진 스타킹, 고르지 않은 피부. 비평가들은 그녀를 못생겼다고, 반쯤 얼빠졌다고, 범죄자 같다고, 짐승 같다고 썼습니다. 얼굴 생김새로 범죄성을 판별할 수 있다는 당시의 유사과학이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그 비평들은 오늘 읽으면 작품이 아니라 비평가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는, 드가가 오래전에 회화의 관습을 흔들었듯 이번에는 조각의 전통을 무너뜨렸다고 썼습니다.

드가는 이 작품을 다시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전에 공개된 유일한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역사적 배경

모델은 마리 반 괴템입니다. 1865년 6월 7일, 당시 빈민가였던 몽마르트르에서 벨기에 이민자 부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세 자매 가운데 둘째였고, 어머니는 세탁부였습니다. 세 자매 모두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이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작은 쥐(petits rats)’라고 불렸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집 출신이었고, 발레는 예술이기 이전에 생계였습니다. 훈련은 가혹했고, 급여는 적었으며, 후원자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무대 뒤를 드나드는 구조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드가가 평생 그린 발레는 무대 위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뒤편이었습니다.

마리는 1882년 결석을 이유로 오페라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조각은 남았고 사람은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자세를 보시기 바랍니다. 두 손을 등 뒤로 모으고,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턱을 치켜든 채 눈을 감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발레 4번 자세에 가깝지만 동작 중이 아니라 쉬는 중입니다. 오만해 보이기도 하고, 지쳐 보이기도 하고, 순종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다음은 재료의 충돌입니다. 딱딱한 표면과 실제 직물이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튀튀는 시간이 지나면 낡고 교체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튀튀는 여러 차례 새로 만들어졌고, 오르세에서는 오페라 의상실이 그 작업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영구히 남도록 만든 조각에 계속 갈아입혀야 하는 옷이 달려 있는 셈입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눈은 거의 감겨 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황홀인지 피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드가는 여기서 감정을 특정하지 않았고, 그 빈자리를 당대 비평가들은 자신들의 편견으로 채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의 리본입니다. 청동 주조본에도 실제 리본이 매여 있습니다. 금속으로 뜬 조각에 천을 묶는다는 것 자체가, 드가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드가 드가에 대하여

에드가 드가(1834~1917)는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상주의 전시에 여러 차례 참여했지만 스스로를 인상주의자로 부르지 않았고, 사실주의자에 가깝다고 여겼습니다. 야외의 빛보다 실내의 인공조명과 움직이는 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발레, 경마, 카페, 세탁부. 그가 반복해서 다룬 소재들은 모두 몸이 특정한 방식으로 훈련되거나 소모되는 장면입니다. 말년에 시력이 나빠지면서 그는 점점 조각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사후 작업실에서 150점 가까운 밀랍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그가 세상에 보여준 것은 이 한 점뿐이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드가가 죽은 뒤 상속인들은 밀랍 조각들을 청동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1922년부터 에브라르 주조소에서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작품의 청동 주조본은 자료에 따라 스물두 점에서 스물여덟 점 사이로 집계됩니다. 오르세,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이 각각 한 점씩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평가의 역전입니다. 1881년에 이 작품을 거부하게 만든 요소들, 곧 실제 옷과 머리카락, 미화되지 않은 몸, 표본 같은 제시 방식이 바로 20세기에 이 작품을 선구적으로 만든 요소들입니다. 다른 재료를 조각에 결합하는 방식은 이후 아상블라주와 설치로 이어졌습니다.

마리 반 괴템의 삶은 이후 소설과 연구, 무대 작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남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가 된 셈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정리해야 합니다. 드가가 직접 만든 밀랍 원본은 파리가 아니라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드가의 밀랍들은 오랫동안 파리의 주조소에 남아 있다가 1950년대에 뉴욕 크뇌들러 화랑에서 공개되었고, 폴 멜런이 한꺼번에 사들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이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루브르의 조각 담당자는 주조 과정에서 밀랍이 이미 상했다고 보았고, 미술관에는 튼튼한 청동 전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에서는 옷을 입지 않은 나체 습작 판본도 원본 옆에 함께 전시됩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은 청동 주조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튀튀와 리본이 갖춰져 있고, 드가가 의도한 인상은 그대로 전달됩니다. 다만 ‘원본을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가시면 어긋납니다.

오르세 방문 시 참고하실 사항입니다.

  • 휴관일은 월요일이며, 목요일은 야간 개장을 합니다.
  •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합니다. 성수기에는 사실상 필수입니다.
  • 전시실 배치는 종종 조정되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같은 미술관에 드가의 회화와 파스텔, 그리고 모네의 『수련』을 비롯한 인상주의 대표작이 모여 있습니다.
  • 최상층 카페의 큰 시계 너머로 파리 시내가 보입니다.

이 조각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이입니다. 열네 살. 그 나이의 몸이 유리 상자 안에서 관찰당하고, 얼굴 생김새로 인격을 판정당하고, 이듬해 결석을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드가는 그 상황을 고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화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사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보지 않기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지: Little Dancer of Fourteen Years – Edgar Degas (1881).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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