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트라케의 니케 – 1950년에 돌아온 빈손
1950년 7월, 사모트라케 섬에서 오른손이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학자들은 니케가 나팔이나 화관이나 리본을 들고 있었으리라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발굴된 27센티미터짜리 손은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들어 올린 것이 아니라, 빈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승리하고 돌아오는 배들을 향해서요.
기본 정보
- 작가: 전하지 않습니다. 로도스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 제작 시기: 기원전 200~185년경
- 재료: 조각상은 파로스산 흰 대리석, 배 모양 받침대는 로도스 라르토스산 회색 대리석
- 크기: 조각상 높이 약 2.44m, 받침대를 포함한 전체 약 5.5m
- 미술 사조: 고대 미술 – 헬레니즘
- 소장처: 루브르 박물관, 파리. 1883년부터 다뤼 계단 위에 설치
손이 알려준 것
이 조각의 머리와 두 팔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른손만은 조각조각 돌아왔습니다.
1875년 오스트리아 조사단이 엄지와 약지의 일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 7월, 뉴욕대학교의 카를 레만이 이끄는 미국 발굴단이 대신들의 성소를 조사하던 중 루브르의 큐레이터 장 샤르보노가 손바닥과 나머지 약지를 발견했습니다. 두 조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오래된 논쟁을 끝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니케가 무언가를 들고 있었으리라 여겨졌습니다. 승리를 알리는 나팔, 승자에게 씌우는 화관, 혹은 리본. 그런데 손은 비어 있었고 손바닥은 위를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이 손은 지금 계단 위 작은 유리 진열장 안에 있습니다. 조각 본체를 보고 나서 반드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그냥 지나칩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머리와 팔이 없다는 사실은 이 조각을 감상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표정을 알 수 없으니 상상하게 되고, 팔이 없으니 동작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 조각은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옷은 젖은 것처럼 몸에 달라붙어 있고, 그 위로 다른 천이 뒤로 흩날립니다. 왼쪽 다리는 앞으로 뻗어 있고, 몸통은 살짝 비틀려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바람을 만든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 보이는 오른쪽 날개는 현대에 만든 복제품입니다. 남아 있는 조각들로 보아 원래의 오른쪽 날개는 왼쪽보다 더 높이 솟아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 조각도 원래는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안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감탄하는 순백의 대리석은 색이 사라진 뒤의 상태입니다.
받침대가 알려주는 것
받침대는 배 모양을 흉내 낸 장식이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 군함 뱃머리의 정확한 재현입니다.
앞쪽에는 전투용 갑판이 있고, 조각상은 그 위에 섭니다. 양옆에는 노를 두 줄로 배치할 수 있도록 보강된 노받이 상자가 있으며, 노 구멍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용골은 둥글고, 흘수선 부근에는 적함의 선체를 부수는 세 갈래 충각이, 그 위에는 두 갈래짜리 작은 충각이 달려 있습니다.
재료도 말을 합니다. 이 받침대의 회색 대리석은 1905년에 로도스 섬 라르토스 채석장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각상 본체의 흰 대리석은 파로스산으로, 당시 조각용으로 가장 높이 평가받던 재료였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집니다. 1891년 샹푸아조가 같은 유적 구역에서 발견한 비문 조각에는 ‘…Σ ΡΟΔΙΟΣ’, 곧 ‘…스, 로도스인’이라는 글자의 끝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근거로 이 기념물은 로도스가 봉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연구자들은 조각상과 받침대가 서로 다른 공방에서 만들어졌으리라고 봅니다.
역사적 배경
이 조각은 사모트라케 섬의 ‘대신들의 성소’에 봉헌되었습니다. 원래 위치가 확인된 드문 그리스 조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소는 언덕에 있었고, 이 조각은 높은 자리에 세워져 멀리서, 아마도 바다에서도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루브르가 이 조각을 계단 꼭대기에 올려놓은 것은 그 조건을 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헬레니즘 조각은 고전기의 정적인 이상미에서 벗어나 격렬한 움직임과 감정으로 향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방향의 정점에 있습니다.
어느 해전을 기념한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후보가 제기되어 있고, 대부분은 로도스가 관련된 승리를 가리킵니다.
발견과 그 이후
1863년, 아드리아노플 주재 프랑스 부영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샤를 샹푸아조가 사모트라케에서 이 조각을 조각난 상태로 발견했습니다. 파편들은 파리로 옮겨져 재조립되었습니다. 날개는 일부만 남아 있어 나머지를 석고로 메웠습니다.
받침대와 뱃머리는 1879년에 추가 발굴로 나왔습니다.
1939년 9월, 2차 대전이 선포되자 이 조각은 받침대에서 내려져 다른 소장품들과 함께 발랑세 성으로 옮겨졌습니다. 나무 경사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당시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1945년 7월, 손상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조각이 보여준 ‘정지된 운동’은 이후 서양 조각이 반복해서 참조한 문제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조각가들이 여기서 배웠습니다.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이름이 살아 있습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이 승리의 여신 이름에서 나왔고, 로고인 스우시는 니케의 날개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롤린 데이비슨이 1971년에 디자인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다뤼 계단 꼭대기에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조각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1883년 이곳에 설치된 이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휴관일은 화요일입니다.
- 온라인 사전 예매를 권합니다. 개관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 2026년 1월부터 비유럽연합 국가 방문객의 입장료가 인상되었습니다. 무료 개방일 정책도 변경되어 왔으므로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오른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단 위 별도의 유리 진열장에 있습니다.
같은 미술관에 『밀로의 비너스』가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팔이 없고, 두 작품 모두 그 결손이 오히려 유명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같은 드농관에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을 함께 보면 흥미롭습니다.
이 조각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없는 부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머리도 팔도 없지만, 이 조각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 돌아온 손은 그 방향을 향해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미지: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기원전 200~185년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