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Beauties of the Present Day by Kitagawa Utamaro, 1793

당대 세 미인

세 여자의 얼굴은 거의 똑같습니다. 일본인이 봐도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도 사람들은 즉시 누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옷과 부채에 각자의 가문 문양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판화의 핵심이 있습니다. 1793년 막부는 니시키에에 일반 여성의 이름을 적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자, 우타마로는 문양으로 그들을 지목했습니다.

기본 정보

누가 누구인가

왼쪽부터 오히사, 도요히나, 오키타입니다.

왼쪽 – 다카시마 오히사. 료고쿠 다리 근처 요네자와초에 있던 찻집 다카시마의 간판 딸이었습니다. 쌀가게 주인의 딸로, 열네 살 무렵부터 가게에 섰습니다. 기모노에 새겨진 세 장짜리 떡갈나무 잎 문양으로 식별됩니다.

가운데 – 도미모토 도요히나. 셋 중 유일한 직업 예능인, 곧 게이샤였습니다. 소매의 앵초 문양이 그녀의 표지입니다. 세 사람 중 가장 두껍고 값비싼 기모노를 입고 있으며, 자세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오른쪽 – 나니와야 오키타. 센소지 경내에 있던 찻집 나니와야의 딸이었습니다. 다른 간판 딸들이 대개 가게 앞에 서 있기만 한 것과 달리 오키타는 직접 차를 날랐고, 응대가 좋아 그녀를 보러 온 사람들로 절 주변이 붐볐다고 전해집니다. 들고 있는 부채의 문양으로 식별됩니다.

이름을 쓸 수 없었던 이유

1790년대 초 도쿠가와 막부는 간세이 개혁을 밀어붙이며 출판물을 단속했습니다. 작가 산토 교덴은 부적절하다고 판정된 작품 세 편 때문에 오십 일간 수갑을 차는 형을 받았고, 그의 출판인 쓰타야 주자부로는 재산의 절반을 몰수당했습니다.

쓰타야는 그 타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1792년 무렵 우타마로를 다시 기용하고, 얼굴을 화면 가득 확대한 새로운 형식의 미인화를 내놓습니다. 오쿠비에입니다. 이 판화는 그 기획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개혁은 계속되었습니다. 막부는 유흥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여성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고, 1793년에는 니시키에에 그들의 이름을 적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이 판화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대신 문양이 있습니다. 당대 에도 사람이라면 떡갈나무 잎을 보고 다카시마의 오히사를, 앵초를 보고 도요히나를 알아봤습니다. 금지령을 어기지 않으면서 누구인지 정확히 전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그림을 볼 때 문양을 지나치면, 이 판화의 절반을 놓치는 셈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세 얼굴은 이상화되어 있습니다. 갸름한 윤곽, 작은 눈, 작은 입. 처음 보면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와 표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우키요에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사실성이었습니다. 하루노부나 기요나가의 미인화가 사실상 하나의 얼굴을 반복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진전입니다.

구도는 삼각형입니다. 세 얼굴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정적인 배치 안에 리듬을 만듭니다. 완전한 대칭을 피한 어긋남이 화면을 살아 있게 합니다.

그리고 배경입니다. 이 판화의 바탕에는 백운모를 곱게 갈아 뿌렸습니다. 빛을 받으면 미세하게 반짝이는 이 처리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 기법이었고, 매끄러운 피부와 머리카락의 결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도판으로는 거의 전달되지 않는 요소입니다.

역사적 배경

우키요에는 ‘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서민의 유흥, 연극, 미인이 주제였고, 목판 인쇄 덕분에 대량으로 찍혀 거리에서 유통되었습니다.

실존 인물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 대량으로 배포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연예인 브로마이드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이 판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며 에도 전역에서 알려졌고, 우타마로 외에도 슌초와 도요쿠니 같은 화가들이 같은 인물들을 그렸습니다.

다만 이 명성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오키타를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 가게 영업이 방해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유명해질 것을 선택한 적 없는 사람들이 유명해진 것입니다.

기타가와 우타마로에 대하여

우타마로(약 1753~1806)는 1790년대 미인화 분야를 대표한 화가입니다. 출생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에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기여는 전신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긴 것입니다. 그 이전의 미인화가 인물 전체를 그렸다면, 그는 얼굴과 상반신을 확대해 표정과 심리를 전달했습니다. 오쿠비에라 불리는 이 형식은 이후 우키요에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1804년,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소재로 한 작품 때문에 막부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오십 일간 수갑을 차는 형이었습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 18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산과 영향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자포니슴이 유행하면서 우타마로의 판화는 서양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평면적인 색면, 대담한 구도, 화면 가장자리에서 잘려 나가는 인물 배치가 그것입니다.

가장 뚜렷한 예가 반 고흐입니다. 그는 일본 판화를 수백 점 수집했고 히로시게의 작품을 유화로 옮겨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몬드 꽃』에서 배경 없이 가지만 화면 앞으로 끌어당긴 구성, 굵은 윤곽선, 원근을 지운 평면적 색면은 모두 이 계보에서 나왔습니다. 드가와 툴루즈로트레크도 같은 원천을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판화가 만든 구조는 지금도 작동합니다. 실존 인물의 얼굴을 상품으로 복제해 유통하는 방식, 곧 스타 시스템입니다. 이백삼십 년 전 에도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보스턴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일본 밖에서 가장 큰 일본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키요에 판화만도 수천 점에 달합니다.

다만 판화는 종이에 찍은 것이고 빛에 매우 약합니다. 특히 이런 초기 판본은 상설 전시되지 않으며, 기획전 형태로 제한된 기간에만 공개됩니다. 이 작품을 목표로 가신다면 반드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전시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헛걸음하기 가장 쉬운 유형의 작품입니다.

같은 판화는 여러 기관이 판본을 나눠 소장하고 있습니다. 목판화는 한 점만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라 여러 벌 찍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판본마다 상태와 색이 다르고, 초기 인쇄본일수록 선이 또렷하고 미카 배경이 살아 있습니다.

이 판화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침묵입니다. 세 여자는 이름을 잃은 채 문양으로만 지목되어, 이백삼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이 유명해지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미지: Three Beauties of the Present Day (当時三美人) – Kitagawa Utamaro, 약 1792~93년.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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