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 Meninas by Diego Velázquez, 1656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거울, 뒷벽의 그림, 그리고 1734년의 화재

스페인 회화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 마르가리타 공주의 왼쪽 뺨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것이 아닙니다. 1734년 알카사르 궁전 화재로 안료가 크게 손실되었고, 궁정 화가 후안 가르시아 데 미란다가 거의 전체를 다시 칠했습니다. 『라스 메니나스』는 그림 자체가 수수께끼일 뿐 아니라, 우리가 오늘 보고 있는 화면 역시 원래 그대로가 아닙니다.

기본 정보

화면에 있는 사람들

먼저 누가 어디에 있는지 정리하면 이후의 이야기가 훨씬 명확해집니다.

  • 중앙 — 마르가리타 공주. 당시 다섯 살이었습니다.
  • 공주 양옆 — 두 명의 시녀(meninas). 궁정 관리의 딸들로, 한 사람은 무릎을 굽혀 물을 담은 그릇을 내밀고 있습니다.
  • 오른쪽 — 두 명의 궁정 난쟁이와 커다란 마스티프. 어린 소년이 개의 등에 발을 올리고 있습니다.
  • 뒤쪽 — 보호자 역할의 수녀와 호위 관리.
  • 왼쪽 — 벨라스케스 본인. 커다란 캔버스의 뒷면 앞에 서 있습니다.
  • 안쪽 문간 — 왕실 시종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 커튼을 젖히고 계단 위에 서 있습니다.
  • 뒷벽 거울 —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

장소는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전 1층의 큰 방입니다. 흔히 ‘벨라스케스의 화실’이라고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왕세자 구역의 주실이며 평소 그림 작업에 쓰이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뒷벽에 걸린 두 그림

이 작품에서 가장 덜 알려진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두운 뒷벽 위쪽에 큰 그림 두 점이 걸려 있습니다.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당시 궁정 소장품 목록 덕분에 무엇인지 밝혀져 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사위이자 조수였던 후안 바우티스타 마르티네스 델 마소가 그린 모사본으로, 왼쪽은 루벤스의 『미네르바와 아라크네』, 오른쪽은 요르단스의 『아폴론과 판』입니다.

두 그림의 공통점을 보십시오. 하나는 인간 아라크네가 직조 솜씨로 여신 미네르바를 능가했다가 벌을 받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 경연에서 아폴론에게 도전한 상대가 대가를 치르는 이야기입니다. 둘 다 인간이 신과 예술로 겨루는 신화입니다.

당시 이 두 우화는 예술이 단순한 수공예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펼 때 관습적으로 인용되던 소재였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 뒤에, 자신의 논거를 걸어 둔 셈입니다.

덧붙이면 화면 오른쪽 벽에도 여덟 점의 작은 그림이 격자로 걸려 있습니다. 각도 때문에 액자 틀만 보이지만, 이 역시 마소가 그린 루벤스 연작의 모사본으로 확인됩니다. 그림 속 그림들의 위치는 그 무렵 작성된 목록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거울을 둘러싼 논쟁

뒷벽의 작은 거울에 왕과 왕비가 비칩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봅니다. 문제는 그 거울이 무엇을 비추고 있느냐입니다.

첫 번째 해석은 왕과 왕비가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즉 화면 바깥에 실제로 서 있고 거울이 그들을 직접 비춘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관람자는 왕의 자리에 서게 되며,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대상도 그들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거울이 왕 부부 자체가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의 화면을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림의 반사이며, 구조는 한 겹 더 복잡해집니다.

이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그림이 수백 년간 논의되어 온 이유입니다.

구도상으로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소실점은 화면 정중앙이 아니라 더 안쪽, 거울 부근에 놓여 있습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끌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1734년, 그림에 일어난 일

1734년 크리스마스 이브,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전에 큰불이 났습니다. 『라스 메니나스』는 구조되었지만 무사하지는 않았습니다.

  • 화면 좌우 양쪽이 잘려 나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비율은 벨라스케스가 정한 비율이 아닙니다.
  • 공주의 왼쪽 뺨은 안료 손실이 심해 궁정 화가 후안 가르시아 데 미란다가 거의 새로 칠했습니다.

혼란은 그 뒤로도 이어집니다. 1747–48년 왕실 소장품 목록에서 중앙의 어린 인물은 마르가리타가 아니라 그녀의 이복 언니 마리아 테레사로 잘못 기재되었고, 1772년 새 왕궁 목록에서도 같은 오류가 반복되었습니다.

제목은 나중에 붙었다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을 『라스 메니나스』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17세기 목록에는 국왕 가족을 그린 그림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화재 이후에는 『펠리페 4세의 가족』, 나중에는 그냥 『가족』으로 불렸습니다. 이 작품은 1819년 프라도 미술관 개관과 함께 소장품이 되었고, 『라스 메니나스』라는 제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43년 페드로 데 마드라소의 프라도 도록에서입니다.

‘메니나(menina)’는 포르투갈어로 소녀를 뜻하는 단어로, 당시 스페인 궁정에서 왕실 자녀를 시중드는 귀족 출신 소녀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가슴의 붉은 십자가

벨라스케스의 검은 옷 가슴에 산티아고 기사단의 붉은 십자가가 보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656년에 그는 아직 기사단원이 아니었습니다. 서임을 받은 것은 1659년,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나중에 덧그려진 것이 확실하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벨라스케스가 죽은 뒤 국왕이 직접 붓을 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 일화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기록은 없고, 서임 이후 화가 본인이 그려 넣었을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의미는 같습니다. 궁정 화가가 귀족의 지위를 얻는 일은 당시 대단히 이례적이었고, 벨라스케스는 평생 그것을 추구했습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

『라스 메니나스』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의 벨라스케스 전시실에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작품입니다.

관람 요령 몇 가지. 온라인 예매를 권합니다. 여름 성수기 대기가 깁니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에 문을 엽니다.

실제로 앞에 서면 인물들이 거의 실물 크기라는 점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 세로 3미터가 넘는 화면이 방 하나를 대신하는 셈이라, 그림 안의 공간과 관람자가 서 있는 공간이 이어지는 듯한 착각이 생깁니다. 이 효과는 도판으로는 절대 재현되지 않습니다.

같은 미술관에 고야와 엘 그레코의 대표작이 있고, 도보 거리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1957년 피카소는 이 작품을 주제로 58점의 연작을 그렸습니다. 현재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을 이 그림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했습니다.

한 장의 궁정 초상화가 이렇게까지 확장된 이유는, 결국 이 그림이 무엇을 보여 주는지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를 묻기 때문일 것입니다. 벨라스케스는 관람자를 그림 바깥의 구경꾼이 아니라, 화면 안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자리에 서면 누구든 잠시 왕이 됩니다.

이미지: Las Meninas – Diego Velázquez (1656).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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