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놀이 파티의 오찬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열네 명은 모두 실존 인물이지만, 그들이 그날 그 테라스에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르누아르는 샤투의 식당 발코니에서 작업을 시작한 뒤, 친구들을 한 사람씩 따로 불러 포즈를 취하게 하고 몇 달에 걸쳐 화실에서 화면을 조립했습니다.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사실 조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립 방식이야말로 르누아르가 순수한 야외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점입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 제작 연도: 1880년 말~1881년 3월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129.9 × 172.7 cm
- 미술 사조: 인상주의 (Impressionism)
- 소장처: 필립스 컬렉션, 워싱턴 D.C.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인상주의 회화에서 인물화와 정물화와 풍경화가 한 화면에 이 정도 밀도로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앞쪽 식탁에는 포도와 병과 유리잔이 정물화로 놓여 있고, 그 뒤로 열네 명의 인물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으며, 난간 너머로는 센강과 돛단배가 풍경으로 펼쳐집니다. 세 개의 장르가 겹쳐 있으면서도 화면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1882년 제7회 인상주의 전시에 걸렸을 때 세 명의 비평가가 이 작품을 전시 최고의 그림으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제작 방식에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실제 장소에서 시작했지만 인물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포즈를 잡게 했고, 나머지는 화실에서 몇 달에 걸쳐 맞췄습니다. 아를린 샤리고가 앉은 자리에는 원래 다른 여성이 그려져 있었는데, 르누아르가 그 모델에게 화가 나 지우고 다시 그렸습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화면은 계산된 결과입니다. 이 태도는 이후 그가 더 구성적이고 인물 중심적인 회화로 옮겨 가는 방향을 미리 보여줍니다.
역사적 배경
배경은 파리 서쪽 교외 샤투, 센강의 섬에 있던 메종 푸르네즈 식당의 발코니입니다. 이곳은 식당이면서 보트 대여소였습니다. 철도가 놓이면서 파리 시민들은 일요일마다 이런 강변 마을로 나가 노를 젓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새로 생겨난 도시 중산층의 여가라는 것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 그림은 그 자체로 기록입니다.
화면 안에 계급이 섞여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남작 출신 전직 기병 장교, 내무부 관리,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 신문 기자, 화가, 재봉사, 식당 주인의 아들과 딸이 한 테이블에 있습니다. 몇십 년 전이라면 한 화면에 들어올 수 없는 조합이었습니다.
이 시기 인상주의 그룹은 이미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참여자마다 방향이 달라졌고 전시 구성도 매번 바뀌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 작품으로 인상주의의 감각적 풍요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음을 함께 드러냈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빛. 차양 아래 그늘과 난간 너머의 강한 햇빛이 한 화면에 있습니다. 흰 셔츠와 식탁보는 반사광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물들고, 유리병과 잔은 그 빛을 다시 흩뜨립니다. 르누아르가 가장 잘하는 일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인물들의 신원은 1912년 미술사가 율리우스 마이어그레페가 정리했습니다. 왼쪽 앞에서 작은 개와 놀고 있는 여성이 아를린 샤리고,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됩니다. 오른쪽 앞에서 의자를 거꾸로 놓고 앉아 그녀 쪽을 바라보는 남자는 화가이자 인상주의의 후원자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입니다. 난간에 기대 선 건장한 남자는 식당 주인의 아들 알퐁스 푸르네즈 주니어, 난간에 팔꿈치를 올린 여성은 그의 누이 알퐁신 푸르네즈로 여겨집니다. 등을 보이고 앉은 인물은 전직 기병 장교였던 라울 바르비에 남작입니다. 그 밖에 르누아르가 자주 쓴 모델 앙젤, 기자 마지올로, 내무부 관리 레스트랭게즈, 화가 폴 로트, 배우 잔 사마리가 있습니다.
시선의 사슬. 인물들을 한 사람씩 따라가며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면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시선은 화면 안에서 서로 얽히고, 관람자는 그 바깥에 남습니다. 이것이 이 그림이 시끄러운데도 침입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구성. 난간의 수평선, 차양 기둥의 수직선, 그리고 인물들이 만드는 대각선이 교차합니다. 순간을 그렸으면서도 고전적인 균형을 놓지 않았습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에 대하여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리모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파리로 옮겼습니다. 열세 살에 도자기 공방에 들어가 접시에 꽃을 그리는 일부터 배웠습니다. 이후 샤를 글레르의 화실과 에콜 데 보자르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고, 그곳에서 모네와 시슬레를 만났습니다.
그의 화면에는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일관됩니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조건이나 도시의 소외를 다룰 때, 르누아르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장면으로 돌아왔습니다.
말년에는 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굳었고, 붓을 손에 묶어 그렸습니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는 말이 그의 것으로 전해지지만, 확실한 출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유산과 영향
여러 인물을 야외 공간에 흩어 놓으면서도 화면을 하나로 묶는 방식은 이후 인물 군상을 다루는 화가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대중문화에서도 이 이미지는 반복해서 인용되며, 미국 작가 수전 브릴랜드(Susan Vreeland)는 이 그림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소설 『뱃놀이 파티의 오찬』(2007)을 썼습니다.
보존 이력에도 한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1954년 화면에 생긴 들뜸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캔버스 전체를 세척했는데, 그 결과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색조는 그 작업 이후의 상태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워싱턴 D.C.의 필립스 컬렉션에 있습니다. 주소는 1600 21st Street NW입니다.
이 그림이 미국에 있는 경위는 그 자체로 이야기입니다. 처음 소유자는 르누아르의 화상 폴 뒤랑뤼엘이었습니다. 미국의 수집가 던컨 필립스는 1911년 유럽에서 이 그림을 본 뒤 손에 넣기로 마음먹었고, 십여 년 뒤인 1923년에 뒤랑뤼엘의 아들에게서 12만 5천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당시 인상주의 회화에 지불된 최고액이었습니다. 미술관이 문을 연 이듬해의 일이었고, 필립스는 이 한 점으로 워싱턴을 미술 지도에 올리려 했습니다.
방문에 참고할 사항입니다.
-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개관 시간과 요금은 바뀌므로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지하철 레드 라인 뒤퐁 서클 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입니다.
- 같은 미술관에 세잔, 반 고흐, 마티스, 브라크, 그리고 로스코만을 위한 작은 방이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가 높습니다.
-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를 함께 보실 계획이라면 이동 시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내셔널 몰까지는 도보 거리가 아니며, 지하철이나 다른 교통편이 필요합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흥겨움이 아니라 그 흥겨움이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르누아르는 즐거운 오후를 목격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오후처럼 보이는 화면을 몇 달에 걸쳐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낍니다. 그것이 이 작품의 성취입니다.
이미지: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 Pierre-Auguste Renoir (1881).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