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이 그림 이전에 유디트를 그린 화가들은 두 순간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목을 베기 전의 연회, 또는 이미 잘린 머리를 든 승리의 초상. 카라바조는 그 사이를 골랐습니다. 칼날은 목의 중간까지 들어가 있고, 머리는 몸에서 막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피는 아직 뿜어져 나오는 중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순간입니다. 이 화면 안에서 유디트는 영원히 목을 베고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카라바조 (Caravaggio)
- 제작 연도: 1598~99년경 (1602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145 × 195 cm
- 미술 사조: 바로크 (Baroque)
- 소장처: 팔라초 바르베리니, 로마 (국립 고전 미술관)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유디트는 흔한 주제였습니다. 도나텔로, 보티첼리, 조르조네, 크라나흐가 모두 그렸습니다. 그러니 여성이 적장을 죽이는 장면 자체가 새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새로웠던 것은 카라바조가 고른 시점입니다. 앞선 화가들이 피한 그 한순간을 정면에서 그렸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유디트의 얼굴입니다. 흔히 이 표정을 냉정한 결의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눈썹은 찌푸려져 있고, 상체는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그녀는 칼을 밀어 넣으면서 동시에 그 결과로부터 몸을 빼고 있습니다. 결단과 혐오가 한 얼굴 위에 겹쳐 있습니다. 이 심리적 이중성이야말로 후대의 어떤 화가도 재현하지 못했다고 평가되는 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몸입니다. 유디트는 젊고, 가늘고, 이 일을 하기에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카라바조는 그녀를 영웅적으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팔의 각도와 어깨의 긴장은 무리한 동작을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
이 그림은 제노바 출신 은행가 오타비오 코스타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코스타는 카라바조의 초기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이 사실은 동시대 전기 작가 조반니 발리오네의 기록에 근거합니다.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1950년에야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제작 시기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오랫동안 1598~99년으로 여겨졌지만, 2017~18년 밀라노 왕궁에서 열린 《카라바조의 내부》 전시는 1602년을 제안했습니다. 화면 아래에서 발견된 밑그림 방식이 초기작에는 없고 후기작에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이유였습니다.
1599년이라는 연도에는 로마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겹칩니다. 그해 9월 11일,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젊은 귀족 여성 베아트리체 첸치가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로마 전체가 지켜본 사건이었고, 카라바조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그림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방식과 목이 잘리는 과정의 묘사는 그날의 관찰에서 왔다는 것이 오래된 추정입니다.
배경에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의 쇄신 운동이 있습니다. 교회는 신자를 압도할 강렬한 이미지를 원했고, 카라바조는 성인과 영웅을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 사람의 몸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 직후 그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콘타렐리 예배당 연작을 맡으며 로마에서 결정적인 위치에 오릅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빛입니다. 배경은 완전한 어둠이고, 세 인물만이 왼쪽 위에서 들어오는 날카로운 빛을 받습니다. 이것이 카라바조의 명암법이며, 특히 어둠의 비중이 극단적인 이 방식을 테네브리즘이라 부릅니다. 이 그림에는 방도 가구도 거의 없습니다. 붉은 휘장과 침구, 그리고 세 사람의 몸이 전부입니다.
다음은 유디트의 팔과 손입니다. 왼손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뒤로 당기고 있고, 오른손은 그의 칼을 쥐고 있습니다. 자기 무기가 아니라 상대의 칼로 상대를 베고 있다는 점은 성경 본문 그대로입니다.
화면 오른쪽의 늙은 하녀 아브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머리를 담을 천을 들고 기다립니다. 젊은 유디트의 매끄러운 얼굴과 하녀의 깊게 팬 주름이 정면으로 맞붙어 있고, 두 얼굴 사이에 잘려 나가는 남자의 얼굴이 놓입니다. 세 개의 표정이 한 줄에 배치된 구성입니다.
유디트를 모델로 선 사람은 로마의 쿠르티잔 필리데 멜란드로니로 추정됩니다. 그녀는 이 무렵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에도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성경의 정숙한 과부를 그리는 데 카라바조가 데려온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그가 어떤 화가였는지를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X선 조사 결과, 카라바조는 작업 도중 홀로페르네스의 머리 위치를 옮겼습니다. 몸통에서 조금 더 떼어내고 오른쪽으로 밀었습니다. 그리기 시작한 뒤에 절단을 더 진행시킨 것입니다.
카라바조에 대하여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문이 베르가모 인근의 카라바조 마을 출신이어서 그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의 삶은 그림만큼이나 격렬했습니다. 폭행과 소송이 끊이지 않았고, 1606년에는 로마에서 라누초 토마소니를 죽인 뒤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를 옮겨 다니면서도 그는 계속 그렸습니다. 오히려 이 도피 시기의 작품들이 가장 어둡고 가장 강렬합니다. 1610년, 교황의 사면을 기대하며 로마로 향하던 길에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숨졌습니다. 서른여덟 살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하나의 시각 언어였습니다.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비, 거리에서 데려온 모델, 미화하지 않은 몸. 이 세 가지가 17세기 유럽 회화의 문법이 되었습니다.
유산과 영향
가장 직접적인 후계자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입니다. 그녀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이 구도를 이어받되 전혀 다른 결론을 냅니다. 그녀의 유디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팔을 뻗어 체중을 싣고, 하녀가 홀로페르네스를 눌러 붙듭니다. 물리적으로 더 그럴듯하고, 감정적으로 더 격렬합니다. 다만 카라바조가 붙잡은 유디트의 망설임은 사라집니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장면이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테네브리즘은 알프스를 넘어갔습니다. 『야간 순찰』에서 렘브란트가 어둠 속에서 인물을 끌어내는 방식은 이 계보 위에 있습니다. 오늘날 영화 조명에서 인물의 절반만 밝히는 방식도 같은 뿌리를 갖습니다.
두 번째 유디트를 둘러싼 논쟁
1607년 6월 카라바조가 나폴리를 떠나면서, 그는 플랑드르 화가 루이 핀손과 아브라함 핀크가 함께 쓰던 작업실에 두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디트를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2014년, 프랑스 툴루즈의 한 저택 다락에서 같은 주제의 대형 캔버스가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매물로 나왔습니다. 여러 전문가가 카라바조의 진작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전문가들은 핀손이 그린 초기 판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폴리 팔라초 제발로스에는 핀손이 그린 것으로 인정되는 판본이 따로 있습니다.
바르베리니의 이 그림을 볼 때 기억해 둘 만한 사실입니다. 카라바조가 이 장면을 한 번만 그렸는지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그림은 로마의 팔라초 바르베리니에 있습니다. 국립 고전 미술관의 두 거점 가운데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트라스테베레의 갈레리아 코르시니입니다. 두 곳을 함께 볼 수 있는 통합권이 있습니다.
지하철 A선 바르베리니 역에서 걸어서 5분입니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료는 10유로대이고 시기와 특별전에 따라 달라집니다.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요금과 예약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건물에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와 한스 홀바인의 헨리 8세 초상이 있습니다. 카라바조를 더 보고 싶다면 미술관보다 성당 쪽이 낫습니다. 도보 15분 거리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콘타렐리 예배당에 성 마태오 연작 세 점이, 포폴로 광장의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 『성 바오로의 개종』과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이 있습니다. 둘 다 카라바조가 그 자리를 위해 그린 그림이며, 입장은 무료입니다. 조명 작동을 위해 동전을 준비해 가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보르게세 미술관에도 카라바조가 여럿 있지만, 바르베리니에서 걸어갈 거리는 아니고 시간 지정 예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같은 날 묶으려면 미리 표를 끊어 두셔야 합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잔혹함이 아니라 어색함입니다. 유디트는 이 일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것은 영웅이 아니라,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지: Judith Beheading Holofernes – Caravaggio (1599).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