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 W.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1844), 메이든헤드 철도교를 건너는 파이어플라이 급 증기기관차

비, 증기 그리고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가 열리기 직전, 아홉 살이던 조지 던롭 레슬리는 바니싱 데이에 터너가 캔버스에 마지막 손질을 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일흔 해가 지난 뒤 회고록에 그는 터너가 자신에게 선로 위를 달리는 작은 산토끼를 가리켜 보였다고 적었다. 제목의 ‘속도’가 가리키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 그 토끼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내셔널 갤러리에서 원본 앞에 서면 토끼는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덧칠한 물감이 아래 물감층에 가라앉아, 오래전부터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되지 않는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이 있다. 산토끼는 처음부터 구상에 있던 요소가 아니었다. 이미 마른 선로 물감 위에 가볍게 붓질로 얹은 늦은 추가였고, 그 물감이 아래층으로 가라앉으면서 확대 촬영으로도 흐릿한 형체밖에 잡히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토끼의 모습을 아는 것은 1859년 로버트 브랜더드가 제작한 판화 덕분이다. 다만 브랜더드는 터너가 흐릿하게 남긴 것들을 또렷하게 정리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토끼에게 그림에는 없는 그림자까지 만들어 붙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토끼는 터너의 토끼가 아니라 판화가의 토끼에 가깝다.

물감에 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 사실은 농담이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1844년 『프레이저스 매거진』에 ‘마이클 앤젤로 팁마시’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 윌리엄 새커리는, 이 그림의 비가 흙손으로 캔버스에 철퍽 발라놓은 지저분한 퍼티 덩어리 같고 햇빛은 두껍게 뭉친 크롬 옐로에서 번쩍인다고 적었다. 이어 기관차의 불이 붉게 보이기는 하지만 코발트와 완두콩색으로 칠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시 도록에 실리는 ‘기법 노트’의 문체를 통째로 흉내 낸 풍자였다. 그런데 오늘날 적지 않은 글이 이 대목을 터너가 실제로 쓴 안료 목록인 양 옮긴다. 새커리는 물감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분석하는 글쓰기를 놀린 것이다.

실제로 확인되는 터너의 선택은 다른 쪽에 있다. 당시 대중 판화들은 기관차에서 거대한 증기 구름이 솟구치는 장면을 즐겨 그렸지만, 1844년 기관차는 그런 연기를 내뿜지 않았다. 터너는 굴뚝에서 나오는 작고 고르게 간격을 둔 세 줄기 연기만을 그렸다. 인상을 과장하지 않고 실제에 가깝게 옮긴 것이다.

역사적 배경

1840년대 영국은 이른바 ‘철도 광풍’의 한복판에 있었다. 1844년까지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만 해도 160킬로미터가 넘는 노선을 깔았다. 터너가 무대로 고른 곳은 아이삼바드 킹덤 브루넬이 설계한 메이든헤드 철도교다. 벽돌로 쌓은 두 개의 아치는 각각 39미터에 이르렀고, 당시로서는 가장 넓고 가장 납작한 벽돌 아치였다. 다리는 1838년에 완공되어 1839년 7월부터 사용되었다.

기관차는 ‘파이어플라이’ 급이다. 스물한 살에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의 기관차 책임자로 임명된 대니얼 구치가 설계했고, 1844년 무렵 62대가 운행 중이었다. 어느 개체인지는 특정되지 않지만, 1841년에 제작된 ‘익시온’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형식 판단은 2000년 내셔널 갤러리 공식 카탈로그에 근거한다. 1844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의 평균 속도는 시속 53킬로미터였고, 메이든헤드 구간처럼 평탄한 직선에서는 시속 96킬로미터까지 냈다. 전력으로 달리는 말보다 빨랐다.

기차가 끌고 있는 것이 객차가 아니라 지붕 없는 화물 貨車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장 싼 요금을 내는 승객들이 이 화차에 실려 다녔다. 터너는 철도의 화려한 면이 아니라 가장 낮은 등급의 차량을 골라 그렸다.

시점은 서쪽에서 런던 쪽을 바라보는 방향이며, 기차는 잉글랜드 서부를 향해 달린다. 왼쪽에 보이는 아치형 다리는 1770년대에 세워진 테일러의 도로교다. 실제 노선은 복선이었지만 터너는 이를 한 줄의 가느다란 선으로 줄여 그렸다. 원근의 급격한 단축과 맞물려 기차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속도감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터너가 이 그림을 직접 겪은 여행에서 착상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존 러스킨의 요청으로 기록된 회고가 하나 남아 있다. 1843년 6월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열여덟 살이던 제인 오미라는 그레이트 웨스턴 노선의 일등칸에서 노신사 두 명과 동석했다. 그중 한 사람이 브리스틀 정차 중에 창문을 내리고 십 분 가까이 폭우 속으로 몸을 내밀었다. 이듬해 왕립 아카데미에서 이 그림을 본 그는 그 승객이 터너였다고 확신했다. 본인의 추정일 뿐이지만, 러스킨은 이 증언을 신뢰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그림 앞에 서면 시선은 곧장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대각선을 그으며 돌진해 오는 기관차로 쏠린다. 이 구도는 즉흥이 아니다. 터너는 1811년부터 왕립 아카데미 원근법 교수로 강의했고, 푸생과 클로드를 연구하며 스스로 익힌 평행 원근법의 원리를 여러 작품에서 실험해 왔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고가교는 그 원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기계의 속도에 맞세워진 것은 셋이다. 선로 위의 산토끼, 왼쪽 강물 위의 작은 배, 그리고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겨우 보이는, 말이 끄는 쟁기를 모는 사람이다. 레슬리는 터너가 토끼를 그리는 동안 ‘Speed’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바로 아래 들판에 오래된 컨트리 댄스 곡명이기도 한 ‘Speed the plough’를 떠올리게 하는 오라비를 넣은 것이라고 적었다.

강변의 작은 인물들은 흔히 기차를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로 읽힌다. 그러나 원본에서 이들은 매우 흐릿하고, 브랜더드의 판화에서는 열두 명 남짓이 클로드 풍으로 정리되어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중 누구도 기차를 보고 있지 않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보일러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바깥의 부슬비와 이루는 대비는 당대에도 논란이었다. 『모닝 크로니클』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자리에서 기관차의 불이 타오른다며 의아해했다. 터너는 기계를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안쪽에 불을 품은 존재로 그렸다.

그래서 이 그림이 제기하는 물음이 남는다. 철도와 증기는 근대의 승리인가, 자연의 패배인가? 존 게이지는 제목이 이미 답을 준다고 보았다. 터너가 그린 것은 철도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관한 알레고리라는 것이다. 게이지는 토끼 역시 비장한 희생물이 아니라 ‘속도의 상징으로 가볍게 그려 넣은’ 것에 가깝고, 당시 기관차가 토끼를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반면 19세기 독자들은 정반대로 읽었다. 1860년 『아트 저널』은 토끼가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도망치고 있다고 썼고, 1878년 코스모 몽크하우스는 곧 짓밟힐 가련한 토끼의 공포를 이야기했다. 러스킨은 이 그림에 대해 끝내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왜 터너가 증기기관차를 그렸느냐는 질문에 추한 소재로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만 답했다. 두 독해는 지금도 나란히 살아 있다.

J. M. W. 터너에 대하여

조지프 맬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는 런던 코번트 가든의 이발사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왕립 아카데미 부속 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풍경화를 역사화와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린 화가다. 빛과 대기, 운동감을 탐구한 후기작들은 형태의 경계를 흐리며 뒤에 올 회화의 언어를 앞질러 구사했다. 『비, 증기 그리고 속도』를 그렸을 때 그는 예순아홉이었고, 동시대의 삶에서 눈을 돌린 적이 없는 화가였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대표하는 낭만주의의 숭고 개념이 여기서는 자연이 아니라 기계 쪽으로 옮겨 붙는다.

1851년 12월 세상을 떠나며 터너는 유화 약 300점과 3만 점에 가까운 수채화·스케치를 국가에 유증했다. 이것이 터너 유증(Turner Bequest)이다. 『비, 증기 그리고 속도』도 이 유증을 통해 1856년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이 되었다. 구입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판화, 보존, 그리고 인상주의로 이어진 길

브랜더드의 판화는 1859년부터 1861년 사이에 나온 『터너 갤러리』 연작의 일부다. 내셔널 갤러리 관장 랠프 워넘이 해설을 맡은 이 기획에서 브랜더드는 여덟 점을 배정받았는데, 그중에는 가장 어려운 대기 표현 작품 두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그림도 그중 하나였다. ‘불명료함이야말로 나의 장기’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는 화가의 그림을, 판화가는 명료하게 만들어야 했다.

1874년에는 프랑스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이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한 미완성 에칭을 파리의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터너에 의한 기관차』라는 제목으로, 네 점을 한 액자에 넣어 걸었다. 존 게이지가 1983~84년 파리 터너 전시 도록에서 기록한 사실이다. 인상주의와의 접점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로드 모네와 카미유 피사로는 1870~71년 런던 체류 중에 이 그림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고, 1875년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철교』는 구도에서, 1877년 『생라자르 역』은 대기 표현에서 이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모네 본인은 터너의 낭만주의적 과잉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수련』에 이르는 길이 터너에게서 곧장 뻗어 나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898년 런던을 찾은 폴 시냐크는 그 여정을 ‘터너 순례’라 부르며, 이 그림을 두고 더 이상 그림이 아니라 색의 집합체이자 보석의 광맥이라고 적었다.

보존 상태도 이 작품의 성격을 이룬다. 1856년 갤러리에 들어온 이후 표면 먼지 제거를 제외하면 한 번도 세척되지 않았다. 1966년에는 물감이 박리될 위험이 있어 캔버스 이면을 보강하는 라이닝 작업이 이루어졌다. 1857년 관장 찰스 이스트레이크는 기관차 뒤 세 줄기 연기가 흐려지고 있다며 ‘약간 보강’할 것을 권했지만, 실제로 손을 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표면에서 덧칠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오른쪽 위 하늘의 유약과 스컴블링 층에는 변색이 있었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비, 증기 그리고 속도』(소장번호 NG538)는 런던 트래펄가 광장 내셔널 갤러리 40번 전시실에 걸려 있다. 같은 방에 터너의 또 다른 대표작 『전투함 테메레르』(NG524)가 있어, 사라져 가는 것과 밀려오는 것을 다룬 두 그림을 나란히 볼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 상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시카고, 뉴욕, 토론토, 파리, 도쿄 등지의 대여 전시에 여러 차례 출품된 기록이 있고, 2020~21년에는 테이트 브리튼의 《터너의 근대 세계》에도 나갔다. 방문 전에 내셔널 갤러리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전시 여부를 확인하기를 권한다.

보이지 않는 토끼 앞에 서는 경험은 조금 이상한 종류의 것이다. 터너는 속도의 상징으로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골랐고, 그 선택은 물감이 가라앉으면서 지워졌다. 남은 것은 판화가가 정리해 놓은 또렷한 토끼와, 그 자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원본이다.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고 볼 때, 이 그림은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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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 J. M. W. Turner (1844).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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