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lothed Maja by Francisco Goya, 1805

옷을 입은 마하

이 그림은 원래 커튼이었습니다. 마누엘 고도이의 저택에서 『옷을 입은 마하』는 『벌거벗은 마하』 앞에 걸려 있었고, 도르래 장치로 옆으로 밀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옷을 입은 쪽을 보여주고, 원할 때 밀어내면 그 뒤에서 벌거벗은 쪽이 나타났습니다. 왜 같은 자세를 두 번 그렸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먼저 제목의 ‘마하’가 무엇인지 짚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름도 신분도 아닙니다. 18~19세기 마드리드 하층민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들 특유의 옷차림과 태도로 알아볼 수 있는 부류입니다. 즉 이 그림의 주인공은 여신도 귀부인도 아니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관람자를 정면으로 봅니다. 당시 이 자세로 누워 있는 여성은 대개 비너스였고, 비너스는 대개 시선을 비끼거나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신화라는 명분도 없이 눕고, 그 상태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구성은 예외적이었습니다.

많은 글이 이 그림이 누드 버전보다 더 관능적이라고 말합니다. 얇은 옷이 몸의 선을 가리면서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그림을 소장한 프라도 미술관의 평가는 조금 다릅니다.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누드 버전보다 훨씬 성기게 그려져 있고, 누드 쪽이 투명한 톤의 단계와 미묘한 계조에서 앞섭니다. 두 그림은 인물의 자세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18세기 말 스페인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국경을 넘었고, 카를로스 4세의 궁정은 불안정했습니다. 실권을 쥔 사람은 총리 마누엘 고도이였습니다.

『벌거벗은 마하』는 1800년 이전에 이미 고도이의 소장품이었습니다. 그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옷을 입은 마하』는 그보다 나중에 더해졌고,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08년입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지시로 프레데리크 키예가 작성한 고도이 재산 목록에서입니다. 두 그림은 그 목록에 ‘벗은 집시’와 ‘옷 입은 집시’로 기재되었습니다.

1808년 나폴레옹의 침공과 함께 고도이는 몰락하고 재산은 압수됩니다. 1813년 페르난도 7세의 몰수 목록에 두 마하가 다시 등장하고, 같은 해 종교재판소가 두 작품을 음란물로 판단해 압수합니다.

1815년 3월 16일, 종교재판소는 고야에게 출두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그림들이 자신의 작품인지, 누구의 의뢰로,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밝히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는 5월에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답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심각한 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종교재판소에 불려간 것은 이때가 두 번째였습니다. 첫 번째는 1799년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 때문이었고, 그때도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두 그림은 1836년에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로 돌아갔고, 프라도로 옮겨진 것은 1901년입니다. 나란히 걸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모델은 누구인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설은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카예타나 데 실바입니다. 고야와 그녀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졌고, 1797년 초상화에서 그녀가 낀 두 개의 반지에 각각 ‘고야’와 ‘알바’가 새겨져 있으며 손가락이 가리키는 모래에 ‘오직 고야’라고 적혀 있다는 점이 근거로 인용됩니다.

다른 설은 고도이의 연인이었던 페피타 투도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알바 공작부인 설을 ‘전설’이라 표현하며, 페피타 투도 설도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봅니다.

1945년에는 알바 공작부인의 유해를 발굴해 신체 비율을 비교하려는 시도까지 있었습니다.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조합한 인물일 가능성도 함께 열려 있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시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화면 밖을 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요소입니다.

손.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린 자세입니다. 이 동작은 몸을 활짝 열어 보이면서 동시에 편안함을 나타냅니다. 방어하지도 유혹하지도 않는, 판정하기 어려운 자세입니다.

옷. 짧은 볼레로 재킷과 밝은 드레스, 허리를 묶은 띠. 이 조합이 그녀를 ‘마하’로 식별하게 하는 표지입니다. 얇은 직물 아래로 몸의 윤곽이 비칩니다.

배경과 침구. 배경은 어둡게 처리되어 인물을 밀어냅니다. 그녀가 기댄 쿠션과 천의 주름은 굵고 빠른 붓질로 처리되어 있어, 가까이서 보면 옷과 살보다 훨씬 거칠게 칠해져 있음이 보입니다.

두 그림의 차이. 프라도에서 두 점을 나란히 볼 때는 자세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포즈로 보이지만 몸의 각도와 다리 위치에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두 그림은 동시에 그려진 것이 아니며, 뒤에 그려진 쪽이 앞의 것을 정확히 복제하지도 않았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하여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1746~1828)는 아라곤의 푸엔데토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의 밑그림을 그리며 밝고 화려한 장면을 다뤘고, 그 재능으로 궁정에 들어갔습니다.

1792년경 중병을 앓은 뒤 청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이후 그의 작업은 방향을 바꿉니다. 『로스 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그리고 만년에 자기 집 벽에 직접 그린 『검은 그림』 연작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셋이라고 말했습니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그리고 자연입니다.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되지만 그 틀에 온전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근대 회화의 문을 연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유산과 영향

가장 직접적인 후예는 마네입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올랭피아』의 원천으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함께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를 명시합니다. 신화의 명분 없이 누운 여성이 관람자를 마주 보는 구성은 이 계보를 따라 19세기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이 그림은 스페인 문화의 아이콘입니다. 다만 그 명성에는 검열의 역사가 붙어 있습니다. 종교재판소에 압수되었고, 오랫동안 아카데미 창고에 있었으며, 1930년대에는 스페인 우표에 실렸다가 미국 우편 당국이 배달을 거부한 일도 있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습니다. 『벌거벗은 마하』와 나란히 걸려 있으며, 두 점을 함께 보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개관 정보를 정정합니다. 프라도는 월요일에 휴관하지 않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과 공휴일 모두 문을 열며, 요일에 따라 폐관 시각이 다릅니다. 하루 중 마지막 두 시간 남짓은 무료 입장 시간대로 운영되는데, 그만큼 붐빕니다. 여유 있게 보려면 오전 개관 직후가 낫습니다. 개관 시간과 무료 시간대는 변동이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미술관에 고야의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8년 5월 3일』, 그리고 『검은 그림』 연작이 있습니다. 마하에서 검은 그림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잡으면 한 사람 안에서 무엇이 무너졌는지가 보입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관능이 아니라 용도입니다. 이 화면은 감상하라고 그려진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림을 가리라고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백 년이 지난 지금 두 그림은 나란히 걸려 있고, 가리는 쪽과 가려지는 쪽의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이미지: The Clothed Maja (La maja vestida) – Francisco Goya, 1800~1807년경, 프라도 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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