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년 낙선전에 걸렸을 때 이 그림의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마네가 붙인 제목은 『목욕(Le Bain)』이었습니다. 화면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뒤편 개울에 있는 여성 한 명뿐인데, 정작 모두의 시선을 붙든 것은 앞쪽에 앉은 벌거벗은 여자였습니다. 마네 본인은 이 그림을 ‘넷이서(la partie carrée)’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제목은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
기본 정보
- 작가: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 제작 연도: 1862~63년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208 × 264.5 cm
- 미술 사조: 사실주의
- 소장처: 오르세 미술관, 파리 (소장번호 RF 1668)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이 문제가 된 것은 여자가 벗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시 살롱에는 누드가 넘쳐났습니다. 다만 그 누드들은 비너스이거나 님프이거나 알레고리였습니다. 신화라는 포장지가 있으면 벗은 몸은 예술이 되었습니다.
마네는 그 포장지를 벗겼습니다. 그의 여자는 여신이 아니라 파리에 사는 사람이고, 옆에 앉은 두 남자는 당대의 옷차림을 한 젊은 남자들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옷이 화면 앞쪽 풀밭에 벗어 놓여 있습니다. 드레스와 모자가 바구니, 빵, 과일과 함께 정물처럼 놓여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벗은 존재가 아니라, 조금 전에 여기서 옷을 벗은 사람입니다. 신화가 아니라 사건입니다.
여기에 시선이 더해집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지도, 딴 데를 보지도 않습니다. 화면 밖의 우리를 정면으로 봅니다. 두 남자는 그녀를 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그녀를 보고 있는 사람은 그림 안에 없습니다. 오직 관람자뿐입니다.
크기도 한몫했습니다. 가로 264.5센티미터의 화면에서 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입니다. 살롱의 누드가 대개 아담한 화면 안에 담겼던 것과 달리, 이 여자는 관람자와 같은 크기로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봤습니다.
역사적 배경
1863년 살롱 심사위원단은 삼천 점에 가까운 작품을 낙선시켰습니다. 항의가 거세지자 나폴레옹 3세는 낙선작들을 따로 전시하도록 허가했고, 그렇게 열린 것이 낙선전입니다. 마네의 이 그림은 그 전시의 최대 화제작이 되었습니다. 웃음과 야유가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네가 전통을 등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을 끌어다 썼다는 점입니다. 세 인물의 배치는 라파엘로의 밑그림을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새긴 판화 『파리스의 심판』 오른쪽 아래 무리에서 가져왔습니다. 옷 입은 남자들과 벗은 여자가 야외에 함께 있는 설정은 루브르에 있는 『전원 음악회』에서 왔습니다. 이 그림은 마네 당시에 조르조네의 작품으로 여겨졌고, 오늘날 루브르는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봅니다.
즉 마네는 아카데미가 떠받드는 바로 그 거장들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 신화적 외피만 걷어냈습니다. 살롱이 화를 낸 진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형식이 그대로 남은 채, 그것을 정당화하던 명분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안토냉 프루스트가 전한 바에 따르면, 마네는 이 작품을 그리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들이 누드를 원하는 모양이니 하나 그려 주겠다고.
상징과 감상 포인트
중앙의 여성은 빅토린 뫼랑입니다. 마네가 가장 자주 쓴 모델이며, 『올랭피아』에도 같은 얼굴이 등장합니다. 다만 몸은 훗날 마네의 아내가 되는 쉬잔 레인호프가 모델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두 남자의 신원도 밝혀져 있습니다. 그녀 옆에 앉은 사람은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이고,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훗날 그의 처남이 되는 조각가 페르디낭 레인호프입니다. 낯선 모델을 쓴 것이 아니라 가족을 앉혀 놓고 그렸습니다.
빛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네는 중간 명암을 거의 생략하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바로 맞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몸은 조각처럼 둥글게 보이지 않고 납작하게 도려낸 것처럼 보입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것을 미완성이자 무능으로 읽었습니다. 오늘날 이 평면성은 현대 회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뒤편 개울의 여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앞쪽 인물들과의 거리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큽니다. 그래서 물속에 서 있다기보다 세 사람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네는 하나의 통일된 공간을 만드는 대신 요소들을 각각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화면 왼쪽 아래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풀숲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마네는 이런 작은 침입자를 좋아했습니다. 『올랭피아』에는 꼬리를 세운 고양이가,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에는 화면 위쪽에 곡예사의 다리가 걸려 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하여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파리의 부유한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바란 법률가의 길 대신 화가가 되었고,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육 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배운 곳은 루브르였고, 특히 벨라스케스와 프란스 할스를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인상주의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지만 인상주의 그룹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공식 살롱에서 인정받기를 원했고,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살롱이 거부한 작품들이었습니다. 1883년, 쉰한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대작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도 그는 다시 한번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여성을 그렸습니다.
유산과 영향
클로드 모네는 이 그림에 자극받아 같은 제목의 대작을 야외에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완성하지 못하고 잘라낸 그 화면의 조각들이 지금 오르세에 남아 있습니다. 실내에서 구성한 마네의 야외와, 실제 야외에서 그린 모네의 야외 사이에 『수련』으로 이어지는 길이 놓여 있습니다.
피카소는 1959년부터 몇 해에 걸쳐 이 구도를 집요하게 다시 그렸습니다. 유화만 스물일곱 점에 소묘와 판지 모형까지 남겼습니다. 하나의 그림을 이렇게 오래 붙들고 늘어진 사례는 드뭅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이 그림이 시선의 권력을 논하는 자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벗은 여자가 옷 입은 남자들 사이에 있고, 그녀를 보는 사람은 화면 밖에 있다는 이 배치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옛 기차역을 개조한 건물 자체가 볼 만합니다.
-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목요일은 오후 9시 45분까지
- 휴관: 월요일,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 입장료: 성인 16유로 안팎이며, 온라인 예매를 권합니다
- 가는 방법: RER C선 뮈제 도르세 역 바로 앞, 또는 메트로 12호선 솔페리노 역
이 그림과 『올랭피아』는 인상주의 전시관이 아니라 아래층 전시실에 함께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오르세는 전시실 배치를 종종 조정하므로, 방문 전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시는 편이 확실합니다.
비교 감상을 원한다면 루브르로 가시기 바랍니다. 마네가 참고한 『전원 음악회』가 그곳에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두 미술관은 센강을 사이에 두고 도보 15분 거리입니다. 라이몬디의 판화도 루브르 소장이지만 판화실 자료라 상설 전시되지는 않으므로, 도판으로 미리 보고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나체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두 남자는 대화를 멈추지 않고, 뒤편 여자는 물에서 몸을 씻고, 개구리는 풀숲에 앉아 있습니다. 이 평범한 오후에서 유일하게 어긋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시선이고,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그림 밖입니다.
이미지: Le Déjeuner sur l’herbe – Édouard Manet (1863).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