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ght Watch by Rembrandt, 1642

야간 순찰 – 1715년에 가위로 잘려 나간 그림

우리는 이 그림을 온전히 보고 있지 않습니다. 1715년, 이 작품을 암스테르담 시청으로 옮기면서 두 문 사이 벽에 걸려 했는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위로 네 변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가장 크게 잘린 것은 왼쪽입니다. 잘려 나간 조각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본 정보

잘려 나간 부분

완성 후 이 그림은 민병대 회관에 칠십삼 년 동안 걸려 있었습니다. 1715년 시청으로 옮기기로 결정되었고, 배정된 자리는 두 문 사이의 벽이었습니다. 그림이 너무 컸습니다.

옮기는 사람들은 자르기로 했습니다. 레이크스뮤지엄 관장 타코 디비츠의 표현대로, 그들은 정말로 가위를 들고 네 변을 모두 잘랐습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반닝 코크 대위가 1642년에서 1655년 사이에 헤릿 룬덴스에게 주문한 작은 모사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림에는 왼쪽 끝에 두 인물이 더 있고, 오른쪽에서는 북 치는 사람이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의 등장에 개가 짖고 있습니다.

2021년, 인공지능이 복원한 것

2019년부터 레이크스뮤지엄은 ‘오퍼레이션 나이트 워치’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조사와 보존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2021년, 이 팀은 잘려 나간 부분을 되살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인공 신경망에 렘브란트의 붓질과 색채를 학습시키고, 룬덴스의 모사본을 그 양식으로 번역하게 한 것입니다. 두 그림은 크기도 색조도 시점도 달랐으므로, 먼저 이미지를 같은 축척으로 맞추고 인물 위치의 미세한 차이를 보정해야 했습니다. 528장의 디지털 촬영과 스캔, X선 자료가 동원되었습니다.

결과물은 출력해 원작 주변에 걸었습니다. 원화에는 닿지 않도록 겹쳐 매다는 방식이었습니다.

효과는 분명했습니다. 화면 한가운데 있던 반닝 코크 대위가 중심에서 벗어나면서 구도가 훨씬 역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진의 잘린 부분을 되돌려 원래 촬영자가 의도한 프레임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복원이 아닙니다. 매우 정교한 추정이며, 인쇄해서 붙인 것입니다. 미술관도 이를 연구와 해석의 도구로 규정합니다.

최근 이십여 년 사이, 오래 연구되었다고 여겨지던 명화들에서 기술이 새로운 것을 끌어낸 사례가 잇따랐습니다. 나머지는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당시 네덜란드에서 단체 초상화는 하나의 상품이었습니다. 의뢰인들이 각자 돈을 내고, 낸 만큼 화면에 등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열여덟 명이 돈을 냈습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서른 명이 넘는 인물이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관행을 무시했습니다. 모두를 나란히 세워 얼굴이 잘 보이게 배치하는 대신, 행진이 막 시작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빛을 정면으로 받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깨에 가려 얼굴 반쪽만 보입니다. 돈을 낸 사람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만한 배치입니다.

제목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그저 민병대의 이름입니다. ‘야간 순찰’이라는 별칭은 18세기 후반에 붙었습니다. 그림 위에 쌓인 니스가 어두워지면서 밤 장면으로 오해받았기 때문입니다.

감상 포인트

두 주인공. 검은 옷에 붉은 띠를 두른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와 노란 옷의 빌럼 판 라위텐뷔르흐 부대위입니다. 대위의 왼손이 앞으로 뻗어 있고, 그 손 그림자가 부대위의 노란 상의에 떨어집니다. 그림 안에서 손이 다른 인물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세부는 자주 언급됩니다.

황금빛 소녀. 화면 중앙 왼편에서 빛을 받고 있습니다. 허리춤에 죽은 암탉이 매달려 있는데, 그 발톱이 이 민병대의 문장인 발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그녀는 민병대의 술잔도 들고 있습니다. 얼굴이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를 닮았다는 지적도 오래되었습니다.

빛. 광원이 어디인지 화면은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조명이 아니라 연출된 빛입니다. 이 방식이 이후 카라바조에서 시작된 테네브리즘의 북유럽 판본으로 이야기됩니다.

뒤쪽의 얼굴. 깃발 뒤에서 눈만 내밀고 있는 인물을 렘브란트 자신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렘브란트에 대하여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은 레이던에서 태어나 이십 대에 이미 암스테르담 최고의 초상화가가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완성한 1642년은 그의 삶에서 전환점이었습니다. 같은 해 아내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주문이 줄었고, 1656년에는 파산 선고를 받아 집과 수집품을 경매에 넘겼습니다.

흔히 이 그림이 혹평을 받아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되지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작품은 민병대 회관에 정상적으로 걸렸고 당대에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몰락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겪은 일들

1715년 — 네 변이 잘렸습니다.

1911년 — 실직한 제화공이 구두칼로 그었습니다. 두꺼운 니스층이 칼날을 받아내 물감층은 무사했습니다.

2차 대전 — 나치 침공을 앞두고 캔버스를 틀에서 떼어 말아 카스트리쿰의 벙커로, 이후 마스트리흐트 인근 동굴로 옮겼습니다.

1975년 — 빌헬뮈스 더 레이크라는 교사가 빵칼로 화면을 여러 차례 그었습니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긴 상처가 남았습니다.

1990년 — 한 남성이 산을 뿌렸습니다. 경비원이 즉시 물을 부어 니스층에서 멈췄습니다.

참고로, 2022년 이 그림에 토마토 수프를 뿌렸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으나 사실이 아닙니다. 수프 사건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반 고흐 『해바라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일

오퍼레이션 나이트 워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구 단계에서 나온 발견들이 있습니다. 물감층 아래에서 예상치 못한 납 성분 층이 확인되었는데, 암스테르담의 습기로부터 캔버스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빛 자수의 광택에는 웅황과 계관석 같은 비소 계열 안료가 쓰였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리기 전에 밑그림을 그렸다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2025년부터는 1975년 수리 때 덧바른 니스를 제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제를 적신 얇은 종이를 화면에 짧게 눌렀다 떼는 방식으로, 극도로 느리게 진행됩니다. 2026년 7월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작업이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전용 전시실 안에 유리로 만든 작업 공간이 있고, 보존가들이 현미경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뮤지엄의 전용 전시실에 있습니다. 뮈세윔플레인 광장에 면해 있으며 중앙역에서 트램으로 십오 분 거리입니다.

  • 입장료가 있으며 18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합니다.
  • 개관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개관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 보존 작업의 진행 상황에 따라 유리 구조물의 배치가 달라집니다. 시기에 따라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다르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상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같은 미술관에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과 『작은 거리』가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결손입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집단 초상화라고 부르는 이 화면은, 삼백 년 전 어느 날 벽에 맞추기 위해 가위로 잘려 나간 나머지입니다. 사라진 조각은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미지: De Nachtwacht – 렘브란트 판 레인, 1642년, 레이크스뮤지엄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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