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쾌락의 동산
지옥 패널에는 악보가 있습니다. 거대한 류트에 깔린 벌거벗은 남자의 엉덩이에 음표가 적혀 있습니다. 2014년 한 음악 전공 학생이 그 음표를 옮겨 적어 연주했고, 녹음은 인터넷에서 널리 퍼졌습니다. 오백 년 동안 아무도 연주하지 않은 곡이 그 화면 안에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그림은 그런 식으로 계속 무언가를 내놓습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 약 1450~1516)
- 제작 시기: 1490년대 (프라도 기준 1490~1500년)
- 기법: 오크 패널에 유채, 세 폭 제단화 형식
- 크기: 205.5 × 384.9 cm (펼쳤을 때). 중앙 패널 폭 231.9cm, 좌우 날개 각 76.5cm
- 미술 사조: 북방 르네상스
- 소장처: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해석이 닫히지 않습니다. 오백 년 동안 도덕적 경고로, 잃어버린 낙원의 환영으로, 연금술적 알레고리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답을 주지 않는 화면으로 읽혀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학계의 합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계속 새로운 것을 내놓습니다. 화면에 그려진 인물은 수백 명이고, 각 인물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관람으로 다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화면입니다.
흥미로운 관찰이 하나 있습니다. 중앙 패널에는 아이도 노인도 없습니다. 모두 젊은 성인이고, 아무도 일하지 않으며, 아무도 나이 들지 않습니다. 시간이 정지한 세계입니다.
역사적 배경
보스는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15세기 말 유럽은 인쇄술로 지식이 빠르게 퍼지고, 종교개혁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습니다. 구원과 심판에 대한 불안이 사회 전반에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개인의 상상만으로 나온 작품이 아닙니다. 프라도의 최신 연구는 제작 시기를 1490년대로 보고, 그에 따라 주문자를 나사우의 엥헬베르트 2세로 특정합니다. 브뤼셀 쿠덴베르흐 궁전에 걸기 위한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그의 조카 헨드릭 3세를 주문자로 보던 견해는 작품을 보스의 만년작으로 여기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17년 7월 30일입니다. 추기경의 비서로 저지대를 여행하던 안토니오 데 베아티스가 나사우 궁전에서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보스가 죽은 이듬해였습니다.
이후 헨드릭 3세, 르네 드 샬롱, 오라녀 공 빌럼을 거쳤고, 알바 공작의 서자였던 페르난도 수도원장의 유산 경매에서 펠리페 2세가 사들였습니다. 1593년 에스코리알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1939년 프라도에 위탁되었습니다.
화면 읽는 법
닫힌 상태 — 창조 사흘째. 먼저 이 그림은 닫혀 있었습니다. 두 날개를 접으면 회색조로 그린 세계가 나타납니다. 투명한 구 안에 평평한 대지가 있고,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왼쪽 위에 작게 신이 있습니다. 위쪽에는 시편의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사흘째, 식물이 생긴 날입니다. 색이 없는 이 세계에서 문을 열면 안쪽의 색채가 쏟아집니다.
왼쪽 — 에덴동산. 신이 이브의 손을 잡아 아담에게 데려옵니다. 배경에는 분홍빛 생명의 샘과 이국적인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나무 주위를 뱀이 감고 있습니다. 이 낙원은 처음부터 순수하지 않습니다.
가운데 — 쾌락의 동산. 수백 명의 나체 인물이 거대한 딸기와 새와 유리 방울 사이에서 움직입니다. 중앙의 연못을 도는 기마 행렬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과 낙타와 상상의 동물에 올라탄 사람들이 방향 없이 원을 그립니다. 도착지 없는 순환입니다. 사람들이 갉아 먹는 딸기는 이 화면에서 반복되는 소재이고, 나중에 이 작품의 별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른쪽 — 지옥. 색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위쪽 도시가 불탑니다. 악기가 고문 도구가 됩니다. 사람이 하프의 줄에 꿰이고, 거대한 류트에 깔립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엉덩이에 악보가 적혀 있습니다.
같은 패널에서 두 가지를 더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거대한 두 개의 귀입니다. 그 사이에 칼날이 박혀 있고, 귀는 앞으로 굴러가며 사람들을 짓뭉갭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 인간입니다. 속이 텅 빈 껍질 같은 몸통, 배 위에 얹힌 썩은 나무 다리, 그리고 화면 밖을 돌아보는 얼굴. 많은 연구자가 그 얼굴을 보스의 자화상으로 봅니다.
해석을 둘러싼 오백 년
가장 오래된 해석은 1605년에 나왔습니다. 에스코리알의 사서였던 프라이 호세 데 시구엔사는 이 그림을 상세히 기록하면서, 보스가 이단이라는 비난에 맞서 그를 옹호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딸기 그림’이라고 불렀습니다. 중앙 패널에 반복해서 나오는 그 과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육체의 쾌락이 딸기의 향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경고였습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독해는 이 순서를 따릅니다. 왼쪽에서 인간이 창조되고, 가운데에서 타락하며, 오른쪽에서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론도 있습니다. 중앙 패널의 인물들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폭력도, 위계도, 강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화면을 타락이 아니라 타락 이전의 세계, 곧 인류가 잃어버린 상태를 그린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연금술적 알레고리로 읽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제목도 보스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스페인 목록에서 이 작품은 ‘세상의 다양함을 그린 그림’으로 불렸습니다. 오늘날의 제목은 20세기에 붙은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하여
본명은 예룬 판 아켄입니다. 약 1450년 스헤르토헨보스에서 태어나 평생 그 도시를 거의 떠나지 않았고, 15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스’라는 이름은 고향 지명에서 온 것입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성모 형제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단자나 광인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지만, 생전에 그는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유복한 시민이었습니다.
남긴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확실한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회화는 스물다섯 점 안팎이며, 서명이 있는 것은 일곱 점뿐입니다.
유산과 영향
가장 직접적인 후계자는 피터르 브뤼헐입니다. 그는 경력 초기에 출판업자 히에로니뮈스 코크를 위해 보스풍의 판화 밑그림을 그리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코크는 그 작품들에 보스의 이름을 붙여 팔기도 했습니다. 『눈 속의 사냥꾼들』의 화가는 보스를 흉내 내며 출발했습니다.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은 보스를 무의식을 그린 최초의 화가로 재발견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와 호안 미로가 그를 선구자로 꼽았습니다. 다만 보스 자신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고, 그가 그린 괴물들은 당대의 종교적 상징 체계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2016년 보스 사후 500주년에는 스헤르토헨보스와 프라도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렸습니다. 그에 앞서 진행된 보스 연구·보존 프로젝트는 여러 작품의 귀속을 다시 판정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습니다. 실물은 도판보다 훨씬 큽니다. 폭이 거의 사 미터에 이르고, 인물 하나하나는 몇 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멀리서 전체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세부를 하나씩 찾는 순서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넉넉히 잡으시기 바랍니다.
프라도는 월요일에도 문을 엽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이며, 성인 입장료는 15유로 안팎, 18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폐관 전 마지막 두 시간가량은 무료 입장 시간대이지만 그만큼 붐빕니다. 요금과 전시실 배치는 바뀌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미술관에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와 『나체의 마하』가 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기괴함이 아니라 밀도입니다. 보스는 관람자가 한 번에 다 볼 수 없는 화면을 만들었고, 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엉덩이의 악보처럼요.
이미지: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 Hieronymus Bosch, 1490년대, 프라도 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