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r at the Folies-Bergère by Édouard Manet, 1882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화면 맨 왼쪽, 붉은빛 액체가 담긴 병의 라벨에 마네의 서명과 제작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화가는 자기 이름을 상품들 사이에 숨겨 놓았습니다. 이 그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짐작하게 하는 첫 번째 단서입니다. 바 위에 진열된 것은 술과 과일만이 아닙니다.

기본 정보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어긋납니다. 바 뒤에 선 여성 쉬종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배경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은 오른쪽으로 크게 밀려나 있습니다. 그 옆에서는 실크해트를 쓴 남자가 그녀와 마주 서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의 병들 역시 거울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어긋나 있습니다. 어느 한 인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사 전체가 밀려 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마네가 물리 법칙을 일부러 어겼다는 것입니다. 백 년 넘게 비평가들은 그가 원근법을 몰랐다고 비난하거나, 혹은 의도적인 파괴라고 옹호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 미술사가 맬컴 파크가 이 장면을 실제로 재현해 세워 놓고 특정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결과는 마네가 그린 화면과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파크의 결론에 따르면 관람자는 거울에 비친 그 남자가 아닙니다. 오른쪽에서 접근하는 다른 사람, 그래서 거울에 잡히지 않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점은 거울 속 남녀 사이의 거리를 실제보다 좁혀 보이게 만들어, 존재하지 않는 친밀함을 만들어 냅니다. 불가능한 그림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도록 계산된 시점입니다.

그 계산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그림이 보는 사람을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배경

폴리베르제르는 1869년 문을 연 뒤 십여 년 만에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직홀이 되었습니다. 이름 자체가 이 장소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폴리’는 18세기에 귀족이 저녁 여흥을 위해 지은 유흥용 별채를 가리키던 말이고, ‘베르제르’는 근처 거리 이름입니다.

마네는 친구들과 이곳을 드나들며 현장에서 스케치했습니다. 그러나 완성작은 전적으로 작업실에서 그려졌습니다. 쉬종이라는 이름의 실제 종업원이 작업실로 와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앞쪽의 인물과 정물은 눈앞에 두고 그린 것이고, 거울 속 군중과 샹들리에는 기억과 스케치를 조합한 것입니다. 관찰과 재구성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지점에 저 어긋난 반사가 놓여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마네는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오래 서 있기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는 1882년 살롱에 이 작품을 출품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대작입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먼저 바 위의 병들을 하나씩 보시기 바랍니다. 샴페인, 포도주, 초록빛 페퍼민트 리큐어, 그리고 붉은 삼각형 라벨이 붙은 영국 배스(Bass) 맥주가 있습니다. 배스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양조장이었고, 저 붉은 삼각형은 브랜드 로고입니다. 프랑스 술집에 독일 맥주가 아닌 영국 맥주가 놓여 있다는 사실은, 1871년 프로이센에 패한 뒤의 감정을 읽는 단서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수입 주류를 파는 이런 바를 당시 파리에서는 ‘아메리칸 바’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쉬종의 가슴에 꽂힌 꽃을 보시기 바랍니다. 꽃들이 이루는 형태는 역삼각형입니다. 양옆 병에 붙은 붉은 삼각형과 방향만 뒤집힌 같은 모양입니다. 이 대응 때문에 많은 해석자가 그녀 역시 이 카운터에 진열된 것들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고 읽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이 그림의 정지점입니다. 뒤편 거울에서는 발코니의 군중이 웅성이고 샹들리에가 빛나며, 화면 왼쪽 위 구석에는 초록색 부츠를 신은 공중 곡예사의 다리가 걸려 있습니다. 그 모든 소란 한가운데에서 그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보고 있지만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 눈입니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 병의 라벨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마네의 서명과 1882이라는 연도가 있습니다. 화가는 자기 이름을 액자 구석이 아니라 상품 라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하여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파리의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법을 공부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흔히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인상주의 그룹전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인정받고자 한 곳은 끝까지 파리 살롱이었고, 그 과정에서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의 방식은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가깝습니다. 빛의 순간을 좇는 대신, 동시대 도시인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납작하게 처리한 색면, 중간 톤을 생략한 대비, 과감한 붓자국. 이 어법이 뒤에 오는 회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같은 시기 파리의 여가와 군중을 다룬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나 『수련』과 나란히 놓으면, 같은 도시가 얼마나 다르게 그려질 수 있는지 보입니다.

유산과 영향

이 그림은 미술사보다 오히려 이론에서 더 자주 인용됩니다. 시선, 반사, 관람자의 위치라는 문제를 다루는 글에서 이 화면은 거의 표준 사례입니다. 영화 이론과 사진 이론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소유의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가진 사람은 마네의 절친한 친구였던 작곡가 에마뉘엘 샤브리에였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피아노 위에 걸어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1926년에는 영국의 수집가 새뮤얼 코톨드가 22,600파운드에 사들였습니다. 수수료 1,500파운드가 별도였고, 이는 그가 평생 지출한 두 건의 최고액 구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르누아르의 『특별석』인데, 그 그림도 지금 같은 갤러리에 걸려 있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이 작품은 런던 서머싯 하우스 안에 있는 코톨드 갤러리에 있습니다. 스트랜드 거리에 면해 있으며, 지하철 템플 역이 가장 가깝고 홀본이나 코번트 가든 역에서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같은 갤러리 안에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르누아르의 『특별석』이 함께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는 런던에서 손꼽힙니다. 이 한 곳만으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주요 지점을 훑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합니다. 오전 시간대가 가장 한산합니다. 도보 15분 거리에 내셔널 갤러리가 있어 하루에 묶기 좋습니다. 테이트 모던도 갈 수 있지만 강을 건너야 하고 30분 가까이 걸리므로, 같은 날 계획한다면 시간을 넉넉히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자기 위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거울 속 남자가 나인지, 아니면 나는 그 옆 어딘가에 서서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는지. 마네는 답을 주지 않았고, 그 미결정 상태가 백사십 년 동안 이 그림을 살아 있게 했습니다.

이미지: A Bar at the Folies-Bergère – Édouard Manet (1882).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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