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arry Night by Vincent van Gogh, 1889

별이 빛나는 밤 – 반 고흐는 이 하늘을 보면서 그리지 않았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창밖을 보면서 그리지 않았습니다. 생폴드모솔 요양원에서 그는 두 개의 공간을 썼습니다. 동쪽으로 난 창에 쇠창살이 달린 이층 침실, 그리고 작업이 허락된 일층의 작은 화실입니다. 침실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밤하늘은 낮에, 아래층에서, 기억과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기본 정보

실재와 발명이 섞인 화면

이 그림에는 실제로 본 것과 지어낸 것이 함께 있습니다.

실재하는 것. 동쪽 창밖의 지형입니다. 배경의 산줄기는 알피유 산맥이고, 앞쪽의 사이프러스도 실제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 오른편의 큰 별입니다.

그 별의 정체는 확인되었습니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아침 해뜨기 훨씬 전에 창으로 시골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는데, 아주 커 보이는 샛별 하나밖에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천문학자들이 1889년 6월 프로방스의 새벽 하늘을 역산한 결과, 금성이 유난히 밝았고 위치도 그가 적은 그대로였습니다.

지어낸 것. 아래쪽 마을입니다. 생레미의 실제 모습과 대응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의 뾰족한 첨탑은 프로방스 건축과 맞지 않고, 오히려 그의 고향 네덜란드의 교회에 가깝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의 밤 풍경 안에 네덜란드의 기억을 하나 심어 놓은 셈입니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이 그림의 하늘은 정지해 있지 않습니다. 붓질이 소용돌이를 이루며 화면을 가로지르고, 별들은 점이 아니라 퍼져 나가는 빛무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물리적으로 근거가 있습니다. 2004년, 연구자들은 이 화면의 밝기 분포가 난류를 기술하는 콜모고로프 모델과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2024년 9월에는 학술지 『피직스 오브 플루이드』에 더 정밀한 분석이 실렸습니다. 큰 규모와 작은 규모 양쪽에서 난류의 물리 법칙과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는 결과였습니다. 그 법칙이 정식화된 것은 이 그림이 그려지고 오십이 년 뒤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천문학에서 시상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연결합니다. 대기 중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면서 빛이 굴절되어 별이 반짝여 보이는 현상입니다. 반 고흐가 그린 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눈에 보이는 대기의 움직임이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가 물리학을 알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아주 오래, 아주 자세히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이런 뒤늦은 확인은 이 그림에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최근 이십여 년 사이, 오래 알려졌다고 여겨지던 명화들에서 해석을 바꾸는 발견이 잇따랐습니다. 나머지는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사이프러스. 화면 왼쪽에서 불꽃처럼 솟아 하늘로 뻗습니다. 유럽에서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묘지에 심는 나무였고 죽음과 연결됩니다. 반 고흐는 같은 시기 편지에서 사이프러스가 자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답다고 썼습니다. 이 나무는 화면에서 유일하게 땅과 하늘을 잇는 요소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창에서 이만큼 가까운 곳에 사이프러스가 서 있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화면 안으로 당겨온 것입니다.

마을의 불빛.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 사각형들은 화면에서 가장 조용한 부분입니다. 하늘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안 마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들어 있습니다. 이 대비가 화면의 긴장을 만듭니다.

파랑과 노랑. 색상환에서 거의 마주 보는 두 색입니다. 이 조합이 화면 전체를 지탱합니다.

초승달. 오른쪽 위에서 지나치게 밝게 타오릅니다. 실제 초승달보다 훨씬 강한 빛입니다.

반 고흐 자신의 평가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이 그림에 대해 열광적으로 쓴 적이 없습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것을 습작으로 언급했고, 같은 시기 요양원에서 그린 다른 작품들에 대해 더 만족스러운 어조로 적었습니다. 배경에는 그의 작업관이 있습니다. 그는 눈앞의 대상을 보면서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 그림은 그 원칙에서 벗어난 결과물이었습니다.

다만 그가 이 작품을 실패로 규정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아 있는 언급이 많지 않고, 당시 그는 자기 작업 전반에 대해 대체로 유보적인 어조로 썼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가, 정작 화가에게는 특별히 내세울 작품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배경

1888년 12월 아를에서 고갱과의 동거가 파국으로 끝나고 귀의 일부를 자른 뒤, 반 고흐는 1889년 5월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생폴드모솔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용은 동생 테오가 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 년을 지내며 백오십 점 가까운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듬해 초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린 『아몬드 꽃』도, 아를의 방을 기억으로 다시 그린 『침실』의 두 번째 판본도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밤하늘은 그가 오래 붙들었던 주제입니다. 아를에서 이미 『밤의 카페 테라스』『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습니다. 그는 밤이 낮보다 색이 풍부하며, 별은 검은 하늘 위의 흰 점이 아니라 노랗고 분홍빛이고 초록빛이라고 썼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

반 고흐(1853~1890)는 스물일곱에 그림을 시작해 십 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유화 약 900점과 소묘 1,100점 이상을 남겼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는 정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그림을 단 한 점만 팔았다는 말입니다. 1890년 안나 보흐가 『붉은 포도밭』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반 고흐 미술관은 이 숫자를 근거 없는 통설로 봅니다. 그는 다른 작품도 팔거나 교환했습니다.

1890년 7월,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작품은 1941년 릴리 P. 블리스 유증 기금을 통해 MoMA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들은 반 고흐의 감정 표현 방식에서 직접 출발했습니다. 뭉크의 『절규』가 자주 함께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하늘이 인물이나 풍경보다 격렬하게 움직입니다.

대중문화에서의 자리도 확고합니다. 돈 매클레인의 노래 「Vincent」, 무수한 영화와 광고, 그리고 세계 어느 미술관 상점에서나 팔리는 상품들이 이 이미지를 반복합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뉴욕 현대미술관 5층 소장품 전시실에 있습니다. 맨해튼 53번가에 있으며 지하철 E·M선 5번가-53번가역에서 도보 5분입니다.

  • 개관 직후 평일 오전이 가장 한산합니다. 이 그림 앞은 항상 사람이 많습니다.
  • MoMA 공식 앱을 미리 받으면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로 쓸 수 있습니다.
  • 같은 층에 모네의 『수련』 대형 삼면화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습니다.
  • 영구 소장품이지만 대여나 보존 작업으로 자리를 비울 수 있으므로, 이 그림을 목표로 가신다면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생레미의 생폴드모솔 요양원은 지금도 남아 있고 일부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의 방과 동쪽 창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창에서 이 그림과 같은 광경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위치입니다. 반 고흐는 그 하늘을 보면서 그리지 못했습니다. 낮에, 창이 없는 아래층에서, 기억으로 그렸습니다.

이미지: De sterrennacht –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6월,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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