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 지평선을 지운 그림
이 그림에는 하늘이 없습니다. 지평선도, 물가도, 다리도 없습니다. 화면에 있는 것은 수면뿐입니다. 모네는 1897년부터 연못을 그렸지만, 1903년에 시작한 이 연작에서 처음으로 주변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남은 것은 물에 비친 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꽃입니다. 위를 보는 그림인지 아래를 보는 그림인지 알 수 없게 만든 것이 이 연작의 발명입니다.
기본 정보
- 작가: 클로드 모네 (1840~1926)
- 제작 연도: 1906년. 1903~1908년에 그린 연작에 속합니다
- 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89.9 × 94.1 cm (거의 정사각형)
- 첫 전시: 1909년 5월 6일~6월 5일, 파리 뒤랑뤼엘 화랑. 도록 번호 15번, ‘1906년 연작’
- 미술 사조: 인상주의
- 소장처: 시카고 미술관 (1933년 라이어슨 유증)
백내장에 관한 오해
먼저 시기를 정리해야 합니다. 모네가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은 1912년, 일흔두 살 때입니다. 시력 저하가 그보다 몇 해 앞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1906년의 그는 잘 보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속한 연작은 1903년에 시작해 1908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모네는 그해 말 베네치아를 다녀온 뒤에야 이 그림들을 완성으로 인정했습니다. 더 맑은 눈으로 자기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었습니다.
백내장이 그의 화면을 실제로 바꾼 것은 1912년 이후, 특히 1918년 이후입니다. 수정체가 노랗게 흐려지면서 파랑과 보라가 걸러졌고, 그 시기 그림들은 붉고 탁해집니다. 1922년의 『일본식 다리』에서는 다리 자체가 형태를 잃습니다.
1923년 그는 오른쪽 눈 수술을 받습니다. 수술 후 그는 그동안 보지 못하던 파랑과 보라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몇몇 그림을 다시 칠했습니다.
즉 시력과 화풍의 관계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이 그림보다 십여 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지베르니의 연못
모네는 1883년 지베르니의 집을 빌렸고 1890년에 사들였습니다. 물의 정원은 그 뒤의 일입니다.
1893년, 그는 인접한 땅을 사서 엡트강의 지류를 끌어와 연못을 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래종 수생식물이 강물을 오염시킬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1895년에는 일본식 목조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 정원은 그린 대상이 아니라 그리기 위해 만든 대상입니다. 모네는 화폭에 옮길 풍경을 직접 설계하고 조성했고, 정원사를 여러 명 고용해 관리했습니다.
1897년부터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초기작에는 다리와 둑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1903년부터의 연작에서 그것들이 사라집니다.
감상 포인트
방향이 없습니다. 이 화면에는 위와 아래를 구분해 줄 단서가 없습니다. 물에 비친 구름은 아래에 있고, 잎은 그 위에 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은 연못을 내려다보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풍경화의 표준인 가로로 긴 화면이 아닙니다. 이 비율은 특정 방향으로의 시선 이동을 막고, 시선이 화면 안을 맴돌게 만듭니다.
물의 색. 초록과 파랑과 보라와 분홍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물 자체의 색이 아니라 물에 비친 하늘과 나무의 색입니다.
붓자국. 가까이서 보면 물감이 두껍게 얹혀 있고 붓질이 거칩니다. 몇 걸음 물러서면 그것들이 합쳐져 수면이 됩니다. 이 거리에 따른 전환이 인상주의의 작동 원리입니다.
꽃의 배치. 수련은 화면 전체에 흩어져 있지만 어느 것도 정확히 정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불규칙성이 화면을 정지하지 않게 합니다.
클로드 모네에 대하여
모네(1840~1926)는 파리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해안에서 자랐습니다. 『인상, 해돋이』가 인상주의라는 이름의 출처가 되었고, 그는 평생 같은 대상을 조건을 바꿔 반복해서 그리는 방식을 밀어붙였습니다.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그리고 수련입니다.
수련은 그가 삼십 년 가까이 붙들었던 주제이며, 남긴 작품은 약 250점입니다.
오랑주리의 대장식화
이 연작에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1918년 11월 12일, 제1차 세계대전 휴전 협정이 체결된 바로 다음 날, 모네는 대형 수련 패널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를 평화의 기념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일을 성사시킨 사람은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였습니다. 앞서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배치』를 국가가 사들이도록 밀어붙인 그 인물입니다.
패널들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타원형 전시실 두 곳에 설치되었습니다. 모네는 관람자가 그 안에 둘러싸이도록 배치를 직접 설계했습니다. 개관은 1927년 5월, 그가 세상을 떠나고 다섯 달 뒤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오랫동안 무시당했습니다. 사후 비평은 이것들을 장식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재평가된 것은 195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이 대형 화면과 색면의 몰입 효과에 주목하면서였습니다.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이 자주 함께 언급됩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1906년의 이 작품은 시카고 미술관에 있습니다. 미시간 애비뉴와 먼로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 밀레니엄 파크 옆입니다.
- 개관 요일과 시간, 요금은 자주 바뀌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오전 개장 직후가 가장 한산합니다.
- 모네의 작품은 인상주의 전시 구역에 모여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프랑스 밖에서 가장 큰 모네 컬렉션 가운데 하나를 보유하고 있어, 건초더미 연작 등 여러 점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 같은 미술관에 반 고흐의 『침실』과 쇠라의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있습니다.
다른 판본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파리 오랑주리의 대장식화,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입니다. 다만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은 다른 곳에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림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둘러싸이도록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베르니의 정원도 4월부터 10월까지 개방합니다.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입니다. 다만 그곳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림의 원본이 아니라 그림의 재료입니다.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고요함이 아니라 방향의 부재입니다. 어디가 위인지 알 수 없고, 어디에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모네는 풍경에서 지평선을 지웠고, 그 순간 회화가 무엇을 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래된 전제 하나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미지: Water Lilies – 클로드 모네, 1906년, 시카고 미술관 소장(1933.1157).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