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 리자
모나 리자의 눈이 관람객을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2019년 독일 빌레펠트 대학 연구진이 이를 실제로 측정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일관되게 지목한 그녀의 시선 방향은 관람자 기준 오른쪽으로 약 15.4도, 대략 오른쪽 귀 언저리였습니다.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이 생기려면 각도가 0도에 가까워야 하는데, 15도는 그 범위를 한참 벗어납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모나 리자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하필 모나 리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본 정보
-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제작 연도: 1503~1519년
- 기법: 포플러 패널에 유채
- 크기: 77 × 53 cm
- 미술 사조: 르네상스
- 소장처: 루브르 박물관, 파리 (드농관 711호실)
이 작품이 잊히지 않는 이유
실물을 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대체로 ‘생각보다 작다’입니다. 77 × 53센티미터, A2 용지보다 조금 큰 정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이 정도 크기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미소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론이 없습니다. 다만 그 모호함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입꼬리와 눈가의 윤곽선을 또렷하게 긋지 않고 여러 겹의 얇은 층으로 흐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 보입니다. 정면으로 입을 응시하면 미소가 옅어지고, 눈을 보면 주변시로 잡힌 입이 더 웃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식이 변하는 것입니다.
회화사적으로 이 작품이 세운 것은 새로운 발명이라기보다 하나의 표준입니다. 사분의 삼 각도로 돌린 상반신, 화면에 함께 담긴 두 손, 뒤로 물러난 풍경. 이 구성 자체는 네덜란드 초상화와 레오나르도 자신의 앞선 작품에도 있었지만, 이 그림 이후 유럽 초상화의 기본형이 되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이 구도를 스케치해 두었다가 자신의 초상화에 그대로 썼습니다.
역사적 배경
레오나르도는 1503년 무렵 피렌체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델은 피렌체 비단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 리자 게라르디니이며, 이탈리아어 제목 『라 조콘다』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주문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패널을 놓지 않았고, 이후 십수 년에 걸쳐 손을 댔습니다. 루브르가 제작 연도를 1503년부터 1519년까지로 잡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말년에 프랑스로 건너갈 때도 그는 이 그림을 가져갔습니다. 초상화가 의뢰인의 집이 아니라 화가의 짐 속에서 십육 년을 보낸 셈입니다.
그가 1519년 앙부아즈에서 세상을 떠난 뒤 그림은 프랑스 왕실 소장품이 되었고, 그렇게 루브르에 이르렀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2005년에 확정되었습니다
모델의 신원은 사백 년 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후보는 적지 않았습니다. 아라곤의 이사벨라, 레오나르도의 어머니,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 그리고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설로는 여장한 레오나르도 본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2005년에 정리되었습니다.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사서가 한 일이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의 필사본 전문가 아르민 슐레히터가 1477년판 키케로 서한집 인큐내뷸러를 정리하던 중, 여백에서 1503년 10월이라는 날짜가 적힌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쓴 사람은 아고스티노 베스푸치, 피렌체 서기국의 관리이자 레오나르도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베스푸치는 레오나르도를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에 견주면서, 그가 당시 작업 중이던 것들을 나열합니다. 그중 하나가 리자 델 조콘도의 초상입니다.
이 메모는 동시대의 것이고, 그림에 관해 쓴 글이 아니라 곁가지로 적힌 것이며, 거짓을 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문제는 종결되었습니다. 다만 대중적인 서술 대부분은 아직 이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이십여 년 사이에 결론이 난 오랜 논쟁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나머지는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상징과 감상 포인트
- 스푸마토: 윤곽선을 긋지 않고 색과 색 사이를 연기처럼 번지게 하는 기법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완성 단계로 밀어붙인 방식이며, 눈가와 입꼬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가까이서 보면 어디서 피부가 끝나고 그림자가 시작되는지 짚을 수 없습니다.
- 어긋난 지평선: 인물 왼쪽과 오른쪽의 지평선 높이가 다릅니다. 왼쪽을 가리고 보다가 오른쪽을 가리고 보면 인물의 인상까지 달라집니다. 하나의 일관된 풍경이 아니라 두 개의 배경이 인물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습니다.
- 손: 왼손 위에 오른손을 얹은 이 자세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초상화에서 반복됩니다. 손이 화면 안에 들어오면서 인물은 흉상이 아니라 몸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 눈썹: 눈썹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유행이었다는 설, 세월과 세척으로 지워졌다는 설이 있었는데, 2007년 파스칼 코트의 고해상도 촬영에서 원래 눈썹과 속눈썹이 그려져 있었다는 흔적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시선입니다. 실제로 좌우로 움직여 보아도 그녀는 여러분을 따라오지 않습니다. 조금 비껴간 곳을 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따라온다고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설명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토스카나의 빈치 마을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가이자 해부학자, 기술자, 관찰자였습니다. 정규 학문 교육을 받지 못했고 라틴어도 뒤늦게 독학했지만, 그 결핍이 오히려 그를 책이 아니라 관찰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의 노트에는 비행 장치, 물의 흐름, 근육과 뼈의 구조가 빼곡합니다. 빛이 물체의 가장자리에서 어떻게 흩어지는지에 대한 관찰이 스푸마토가 되었고, 얼굴 근육 해부가 저 미소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그림은 관찰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완성한 회화가 스무 점이 채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주 다른 문제로 옮겨 갔고, 이 그림처럼 놓지 못한 것에는 몇 년씩 매달렸습니다.
밀라노에 남긴 『최후의 만찬』도 그의 작품입니다.
1519년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프랑수아 1세가 임종을 지켰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산과 영향
이 그림을 오늘날의 위치로 밀어 올린 결정적 사건은 도난이었습니다. 1911년 8월, 루브르 직원이었던 빈첸초 페루자가 그림을 떼어 옷 속에 숨겨 나갔습니다. 빈 벽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신문은 연일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2년 뒤인 1913년, 페루자가 피렌체의 화상에게 팔려다 붙잡히면서 그림은 돌아왔습니다. 도난 이전까지 이 작품은 루브르의 여러 걸작 가운데 하나였지만, 돌아온 뒤에는 전 세계가 아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예술가들은 그 유명세 자체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1919년 마르셀 뒤샹은 값싼 복제 엽서에 수염을 그려 넣었고, 앤디 워홀은 같은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반복해 찍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림이 아니라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는 지위를 다룬 것입니다.
1962년 미국 순회 전시를 앞두고 이 작품의 평가액은 1억 달러로 산정되었습니다. 다만 프랑스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보험료보다 경비를 강화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덜 알려진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모나 리자는 한 점이 아닙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오랫동안 후대 모작으로 취급되던 판본이 있습니다. 2011~12년 복원 과정에서 배경을 덮고 있던 검은 덧칠을 제거했고, 밑그림 분석 결과 이 그림의 수정 흔적이 레오나르도의 수정과 획 단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같은 공방에서, 같은 시기에, 옆 이젤에서 그려졌다는 뜻입니다. 사백 년에 걸친 니스 덧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레오나르도가 실제로 올린 색에 가장 가까운 상태를 보여 줍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현재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711호실, 이른바 ‘국가의 방(Salle des États)’에 있습니다. 방탄유리 안에 있고, 관람 동선은 그림에서 약 4미터 떨어진 곳까지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30초에서 1분 남짓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곧 바뀝니다. 2025년 1월 프랑스 정부는 ‘루브르 새로운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나 리자를 쿠르 카레 지하에 마련될 전용 전시실로 옮기겠다고 밝혔습니다. 독립된 출입구를 두고 별도의 입장권을 받는 방식이며, 목표 시점은 2031년입니다. 지금 계획된 공간은 현재 전시실의 세 배 규모이고, 그 방에는 이 그림 한 점만 걸릴 예정입니다.
방문 계획에 참고할 사항을 정리합니다.
- 2026년 1월부터 비유럽연합 국가 방문객의 입장료가 인상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신다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온라인 사전 예약을 강력히 권합니다. 현장 대기는 길고 예측이 어렵습니다.
- 오전 9시 개관 직후, 또는 야간 개장일인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5시 이후가 그나마 한산합니다. 10시 30분이 지나면 711호실은 계속 붐빕니다.
- 같은 방 정면에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 잔치』가 있습니다. 6.77 × 9.94미터로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이며, 1797년 나폴레옹 군대가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작품입니다. 모나 리자 쪽으로 몰린 인파를 등지고 돌아서면 이 거대한 화면이 통째로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같은 드농관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있습니다. 711호실을 오가는 길에 지나치게 됩니다.
- 플래시 없는 촬영은 가능하지만, 거리와 유리 반사를 감안하면 사진보다 눈으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가장 이상한 것은 그림이 아니라 방입니다. 수백 명이 같은 방향으로 팔을 들고, 30초를 보고, 빠져나갑니다. 정작 그녀는 그 사람들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15도쯤 비껴간 곳,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자리를 보고 있습니다.
이미지: Mona Lisa –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3~1519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라이선스: Public Domain. 출처: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