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증기 그리고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가 열리기 직전, 아홉 살이던 조지 던롭 레슬리는 바니싱 데이에 터너가 캔버스에 마지막 손질을 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일흔 해가 지난 뒤 회고록에 그는 터너가 자신에게 선로 위를 달리는 작은 산토끼를 가리켜 보였다고 적었다. 제목의 ‘속도’가 가리키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 그 토끼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내셔널 갤러리에서 원본 앞에 서면 토끼는 보이지…
1844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가 열리기 직전, 아홉 살이던 조지 던롭 레슬리는 바니싱 데이에 터너가 캔버스에 마지막 손질을 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일흔 해가 지난 뒤 회고록에 그는 터너가 자신에게 선로 위를 달리는 작은 산토끼를 가리켜 보였다고 적었다. 제목의 ‘속도’가 가리키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 그 토끼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내셔널 갤러리에서 원본 앞에 서면 토끼는 보이지…
2005년 BBC 라디오 4 『투데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인들은 이 그림을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뽑았다. 후보에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도 있었지만, 10만 명이 넘는 참여자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표가 터너의 낡은 군함에 쏠렸다. 그런데 그 배는 그림 속 모습으로 템스강을 거슬러 오른 적이 없다. 실제 테메레르는 돛대도 삭구도 모두 뜯겨…
브뤼헐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장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탑은 이미 실패한 건물입니다. 어느 층도 수평이 맞지 않고, 아치는 기울어진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으며, 일부는 벌써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래층 기초가 끝나기도 전에 위층이 올라갔습니다. 신이 언어를 흩어놓기 전에, 이 탑은 스스로 무너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피터르 브뤼헐…
가장 좋은 농담은 그림 왼쪽 끝에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지나치는 여관의 간판은 한쪽 고리가 빠져 비뚜름하게 걸려 있고, 거기 그려진 것은 사슴, 곧 사냥꾼의 수호성인 성 후베르투스입니다. 그 간판 아래로 세 명의 사냥꾼이 여우 한 마리만 메고 돌아옵니다. 브뤼헐은 겨울의 가혹함을 비장하게 그리는 대신, 실패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머리 위에 삐뚤어진 수호성인을 걸어두었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피터르…
이 그림에서 뒤러는 자기 머리카락 색을 바꿨습니다. 다른 자화상들이 보여주듯 그의 머리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이었지만, 여기서는 갈색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묘에 남은 그의 코는 조금 비뚤었는데 이 화면에서는 반듯합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도상으로 그려 넣기로 한 화가는, 그 전에 먼저 자기 얼굴을 정돈했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제작 연도: 1500년 초 (29세 생일…
이 그림 이전에 유디트를 그린 화가들은 두 순간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목을 베기 전의 연회, 또는 이미 잘린 머리를 든 승리의 초상. 카라바조는 그 사이를 골랐습니다. 칼날은 목의 중간까지 들어가 있고, 머리는 몸에서 막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피는 아직 뿜어져 나오는 중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순간입니다. 이 화면 안에서 유디트는 영원히 목을 베고 있습니다. 기본 정보…
화면 오른쪽에서 뻗어 나온 그리스도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신의 손이 아니라 아담의 손입니다. 방향이 뒤집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시스티나 천장에서 아담은 생명을 받고, 여기서 그리스도는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이 인용을 한 화가의 세례명은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안목 있는 관람자라면 곧바로 알아챘을 농담이자 선언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카라바조 (Caravaggio) 제작 연도:…
화면 맨 왼쪽, 붉은빛 액체가 담긴 병의 라벨에 마네의 서명과 제작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화가는 자기 이름을 상품들 사이에 숨겨 놓았습니다. 이 그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짐작하게 하는 첫 번째 단서입니다. 바 위에 진열된 것은 술과 과일만이 아닙니다. 기본 정보 작가: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제작 연도: 1882년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96 × 130…
1863년 낙선전에 걸렸을 때 이 그림의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마네가 붙인 제목은 『목욕(Le Bain)』이었습니다. 화면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뒤편 개울에 있는 여성 한 명뿐인데, 정작 모두의 시선을 붙든 것은 앞쪽에 앉은 벌거벗은 여자였습니다. 마네 본인은 이 그림을 ‘넷이서(la partie carrée)’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제목은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에두아르…
이 그림에는 두 여성이 있고, 둘 다 이름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운 쪽은 빅토린 뫼랑, 훗날 살롱에 자기 작품을 출품한 화가입니다. 오른쪽에서 꽃다발을 들고 선 쪽은 로르입니다. 마네는 수첩에 그녀의 이름과 파리 뱅티미유 거리의 주소를 적어 두었고, 따로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그런데 백 년 넘게 미술사는 앞의 여성만 이름으로 불렀고, 뒤의 여성은 ‘흑인 하녀’였습니다. 기본 정보 작가:…
드가는 이 그림에서 존재하지 않는 방을 그렸습니다. 배경은 르 펠르티에 거리에 있던 옛 파리 오페라의 연습실인데, 그 건물은 1873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 그림은 그 이듬해에 그려졌습니다.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 장면은 관찰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 재구성한 무대입니다. 기본 정보 작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제작 연도: 1874년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83.5 × 77.2 cm 미술…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열네 명은 모두 실존 인물이지만, 그들이 그날 그 테라스에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르누아르는 샤투의 식당 발코니에서 작업을 시작한 뒤, 친구들을 한 사람씩 따로 불러 포즈를 취하게 하고 몇 달에 걸쳐 화실에서 화면을 조립했습니다.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사실 조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립 방식이야말로 르누아르가 순수한 야외 인상주의에서…